이달의 인물 | 이근주, 앙리 모로 드 믈랑 2017년 11월호
이달의 인물
이근주, 앙리 모로 드 믈랑
항일역사서 편찬과 자결로 항거한 이근주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근주(李根周, 1860. 2. 3.~1910. 9. 23.) 선생을 2017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860년 홍성의 사족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업으로 한 선비였다. 부친에게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이후 독학으로 학문을 이루었다. 특히 맹자의 <웅어장>을 좋아하여 사생취의 정신을 숭상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김복한·안병찬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김복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에는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울분에 쌓여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을 얻었다.
선생은 을미의병 이후 홍주의병 기록인 <을미록>, <절의가> 등을 비롯한 여러 항일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이 외에도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민영환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와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리고 풀려난 직후인 1906년 순절한 홍주의병장 이설에 대한 만사에서 애국지사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선생은 1910년 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자결로 항거하였다. 선생의 죽음은 김복한이 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로움을 취했으며 인을 이루었다(取義成仁)’ 할 것이다. 따라서 선생의 순국은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후학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고 항일투쟁을 고취한 민족운동의 한 방략으로 후세에 기리 전해질 것이다. 정부는 1991년 이근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관직 내려놓고 전선으로! 앙리 모로 드 믈랑 소령
국가보훈처는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을 1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벨기에 상원의원이자 국방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앙리 모로 드 믈랑은 1950년 한국전쟁 지원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무회의에서 장비만 지원하자는 다수의 제안을 일축하고 파병을 주도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51년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통신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때 그의 계급은 소령에 불과했다. 앙리 모로 드 믈랑의 한국전쟁 참전을 위해 상원의원의 해외 참전을 금지한 당시 벨기에 법률이 개정되기까지 했다.
앙리 모로 드 믈랑은 1951년 2월 임진강 북쪽의 금굴산 진지를 방어하여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였고 이를 통해 영국 제29여단의 철수를 지원하였다. 1992년 영면한 그는 1988년 펴낸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했다. 전쟁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전쟁 한가운데서 전우를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물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은 채 더 큰 가치인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세계인의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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