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北이 노리는 구도, ‘기존 핵 불문, 현재 핵 활동 동결’ 2017년 12월호
특집 | 시계(視界)제로 한반도 … 돌파구는?
北이 노리는 구도, ‘기존 핵 불문, 현재 핵 활동 동결’
홍 민 /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지난 9월 23일 북한 평양에서 반미대결전 총궐기 집회가 열린 가운데 군중들이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을 타격하는 핵미사일 그림을 둘러싸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연합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북핵 로드맵을 추론해보면 핵 보유 상태에서의 북·미 평화공존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체제나 김정은 정권이 내부적으로 획기적인 질적 변화를 하지 않는 이상 현 체제와 정권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핵무기를 대체하는 ‘정권안보’ 대체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과의 동등한 핵보유국 지위 확보부터 살펴보자. 북한은 핵 능력 및 지위 측면에서 최대한 미국과 동등한 능력과 지위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고 이후 대등한 위상에서 협상에 임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여기서 동등한 능력과 지위는 핵·미사일의 양·질적 규모의 동등함이 아니라 북한의 핵능력을 전략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대등한 위상이란 핵보유국이라는 동질성에 기반한 위상을 의미한다. 핵 능력이 의심받고 위협이 저평가 받는 상태에서는 일방적인 핵폐기 종용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완성 및 보유를 인정할 때까지 ‘올인’하려는 것이다.
美와 ‘동등한 능력, 대등한 위상’ 확보 위한 핵 ‘올인’
다음으로 지금의 ‘선(先) 비핵화 조치’에서 ‘선(先) 대북적대시정책 전환’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이는 미국이 선 행동(조치)을 통해 북한에 신뢰성을 보이는 것에 따라 후속적으로 여기에 반대급부를 주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과거 9·19공동성명 체제는 북한의 선 비핵화 조치에 기반해 로드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나리오였는데 당시 능력과 지위에서 열세였던 북한은 이를 수용했고 당연히 이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평가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는 미국은 로드맵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북한은 9·19공동성명의 로드맵 진행 과정에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언제든 파행이 일어나고 불확실성을 해소할 통제 능력에 큰 한계를 느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북한이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대등한 위치에서 미국이 먼저 신뢰를 조성하는 우선적 조치를 취할 때 이에 입각하여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신뢰를 단계적으로 확인하면서 로드맵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 후 평화협정 체결 전략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인정을 받은 상태에서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핵·미사일 실험을 대폭 늘린 것은 ‘인정’을 종용하고 강제하는 일종의 투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평화협정 역시 기본적으로 북·미 간 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전술적으로는 제3자 또는 4자도 용인하는 체결 전략으로 나갈 수 있다. 북한에게 중요한 것은 협정의 다자구도 여부보다는 평화협정이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 수준의 ‘협정(agreement)’이 아닌 의회의 비준을 받는 ‘조약(treaty)’ 수준의 신뢰성을 갖는지 여부다. 즉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쉽게 파기할 수 있는 행정명령이 아닌 보다 지속성을 갖는 규범적 차원의 수준을 원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간 수교가 진행되고 나서 북한은 비핵화 회담이 아닌 핵군축 회담을 통한 군축 차원으로의 핵 문제 처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와 핵군축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북핵의 폐기를 목표로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다. 비핵화는 북한의 일방적인 핵 폐기만을 요구하는 구도라는 점에서 북한이 수용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핵군축은 상호 보유한 핵무기의 위협을 인식하고 객관화하여 관리 및 제한 협정을 통해 양적·질적으로 위협을 줄여가는 게 핵심이란 점에서 북한이 핵군축을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북한의 설득 논리는 당장의 비핵화가 어렵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핵군축을 통해 상호신뢰를 쌓자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래에 핵 폐기에 대해서는 이에 기초한 별도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제안을 할 수 있고, 신뢰 조성을 위해 상대에 대한 핵위협을 줄이는 조치를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핵무기관리협정이나 미사일제한협정 등의 제도적 장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핵군축과 병행한 재래식 군비통제를 요구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복구가능 핵능력 수준 동결, 기존 핵 보유’ 최상으로 판단
결론적으로 북한은 ‘복구가능한 핵능력’ 수준에서 핵을 동결하고 기존의 핵은 보유하는 것을 이상적 최종상태로 생각하고 있다. 완전한 핵능력 상실이 아닌 기존 핵은 불문에 부치고 ‘복구가능한 핵능력’ 수준에서 현재의 핵 활동을 동결하는 것을 최상의 상태로 보는 것이다. 미사일은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고도화를 중단하고 기존 ICBM을 제한하는 수준에서 봉합을 원할 가능성이 있으며, ICBM 고도화 중단 및 제한에 상응하여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과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력을 줄이는 것을 미국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같은 기구 및 체제보다는 남·북·미·중 정도의 다자가 맺는 ‘한반도 핵무기관리협정’이나 ‘미사일제한협정’ 등을 통해 지역 핵군축 레짐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핵군축 및 군비통제 레짐을 통해 느슨한 상호 감시·검증 시스템을 유지하길 원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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