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2월 1일

Zoom In | 아라비아 반도의 각축전 … 내우외환 사우디의 도전은? 2018년 2월호

Zoom In

아라비아 반도의 각축전 … 내우외환 사우디의 도전은?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의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그간 금기시되어 온 형제 계승 전통을 깨고 부자 계승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차기 사우디 권력의 1인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이다.  ⓒ연합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의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그간 금기시되어 온 형제 계승 전통을 깨고 부자 계승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차기 사우디 권력의 1인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이다. ⓒ연합

중동의 최대 경제대국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초 사우디 정부는 왕자 11명과 전·현직 관료 및 경제인사 30여 명을 체포했다. 대대적인 숙청작업이었다. 주변국과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카타르에 대한 집단 단교 조치를 주도했고 2016년 1월에는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2015년 3월에는 예멘 내전에도 개입해 현재까지 매일 2억 달러의 전비를 지출하고 있다.

사우디의 급작스럽고 돌발적인 국내외 정책의 배경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 우선 2016년 1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의 복귀가 대외적 변수다. 국내적으로는 왕위 부자계승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형제계승의 전통을 현 국왕 집안이 바꾸려하고 있다. 다른 왕자들의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요 왕족을 체포하고 권력을 집중화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도출해내기 위해 경제개혁도 추진하고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는 등 사회개방 정책도 내놓고 있다.

수니시아파 간 갈등 격화에 신냉전 구도까지

2003년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그리고 IS(이슬람국가)의 발호와 격퇴 작전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종파 간 갈등의 확산이다. 특히, IS 격퇴 작전을 거치면서 중동 내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 종파 간 갈등구도가 고착화되는 상황이다. 특히 수니파 무장세력 IS의 부상과 격퇴 작전에서 종파 간 충돌구도가 등장했다. IS 급부상의 기저에는 이라크 내 시아파 중앙정부 부상 이후 수니파에 대한 차별, 배제, 그리고 억압이 있었다.

이후 IS는 투쟁의 명분과 존립의 선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아파에 대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였고 이라크 정부를 이란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종파 간 물리적 충돌을 주도하였다. 이에 대해 이란이 시리아 및 이라크 정부의 IS 격퇴 작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약 1,500년 이슬람 역사에서 최대 규모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이란의 행보로 인해 결국 사우디를 축으로 하는 아랍-수니파 국가와의 대립전선이 명확히 설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종파 간의 갈등 확대와 더불어 IS 격퇴를 둘러싸고 강대국 러시아가 중동 지역 개입을 다시 추진하면서 미국과의 경쟁구도도 형성되고 있다. 2015년 9월 러시아의 본격적 군사 개입으로 알-아사드 정권의 유지 가능성이 고조됐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이어 2017년 3월 리비아에 2∼3기의 Mig-23 전투기를 제공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이집트에서 공군기지 사용권을 확보하는 등 북아프리카까지 군사적 거점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이란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이란의 평화적 원자력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리아 내 IS 격퇴 작전의 개입을 통해 러시아는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을 축으로 하는 기존 중동의 패권벨트에 병립하는 새로운 냉전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종파 간의 갈등 확산과 신(新)냉전 구도 형성의 기저에는 이란의 부상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016년 1월 이란이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나기 2주 전, 사우디는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제재 해제 이후 중동의 정치 및 경제 행위자로서 이란이 복귀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다. 37년간의 제재 아래 이란의 경제와 국력은 쇠락했다. 이 기간 동안 사우디가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이제 제재를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사우디 등 주변 수니파 아랍 국가는 긴장하고 있다. 이란이 가진 잠재력 때문이다.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이란이 중동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산악 국가인 이란은 석유와 가스 외에도 구리, 철광석, 아연 등 각종 부존자원의 보고(寶庫)다. 수자원도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풍부하고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최대 라이벌, 시아파 맹주 이란이 기지개 켠다

사우디의 인구가 약 2천만 명인 것에 비해 이란은 8천만 명 이상으로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고 터키와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에서 세 번째 군사대국이다. 정규군 40만 명 그리고 공화국수비대 12만 명과 더불어 100만 명 이상의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다. 전투기와 잠수함을 조립하여 배치하고 있으며 중장거리 미사일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란의 영향력은 아라비아 반도 남부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란은 사우디 남서부의 예멘 북부 시아파 후티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이바디(Ibadi)파가 주축이 된 오만과의 선린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사우디 등 아라비아 반도 수니파 국가들에 대한 ‘샌드위치 압박’을 전개하고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우디는 종파 간의 갈등을 이용해 수니파와 시아파의 간극을 넓히고 있다. 이란과의 직접적인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열을 이용해 수니파 아랍국가의 수장 역할을 지속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동남쪽 끝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 카타르가 독자적인 외교 행보를 펼치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 주도의 수니파 국가들은 이른바 카타르 ‘길들이기’에 나섰다. 사우디는 수니파 우방국 11개 국가를 설득해 2017년 6월 카타르에 대한 집단 단교와 경제봉쇄 조치를 취했다. 이들 수니파 국가들은 카타르에 대한 단교의 표면적 이유로 ‘이란과의 협력’과 ‘테러리즘·극단주의 지원’을 내세웠다. ‘적성국’ 이란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등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포기하고 사우디 중심의 패권에 재편입하라는 압박이다.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수니파 아랍 국가들에게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지상과제가 되었다. 2011년 시민 혁명으로 4개국 정권이 무너지고,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자국 내 정치적 도전을 종파 갈등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종파 갈등을 이용해 정권 생존을 위한 내부 결속 및 역내 동맹 강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역내 종파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 등 주요 수니파 국가들에게 카타르가 ‘눈엣가시’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타르의 개방 및 온건주의 노선이 주요 수니파 권위주의 정권에 불편한 역내 정치 환경을 조성해 왔다. 특히 중동의 유일한 자유 언론 <알자지라> 방송의 권위주의 체제 비판 보도 내용이 주요 수니파 국가에서 심각한 민심 이반을 가져오고 있다. 때문에 사우디 등 주요 수니파 권위주의 국가들은 자국 도전 세력의 배후를 카타르로 지목하고 있다. 이번 조치를 주도한 사우디, UAE, 이집트 그리고 바레인 정부는 카타르의 내정 간섭을 단교의 더욱 중요한 배경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편 2017년 11월 4일 사우디에서는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진행됐다. 부패척결위원회를 설립하자마자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및 경제계 인사 30여 명을 체포했다. 구금된 왕자 중에는 전 국왕의 아들이자 국가방위군 사령관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도 포함됐다. 무타입은 사우디의 3번째 군 조직인 국가방위군 사령관이었다. 아버지 압둘라 전 국왕은 국가방위군 사령관을 30여 년 지냈다. 27만 병력의 국가방위군이 이후 현 국왕과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4개월 전인 7월에는 내무부 개혁을 위한 국왕의 칙령이 발표됐다. 내무부의 대테러, 정보, 그리고 치안 업무를 왕실 직속 기관으로 이관했다. 경찰과 치안 병력을 모두 국왕 권력 아래 둔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5년 살만 국왕이 즉위할 때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바 있다. 결국 국방부, 내무부, 그리고 국가방위군 3대 군 조직을 모두 장악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준비를 모두 마쳤다. 부자 계승 발표 시 발생할 수 있는 쿠데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중동의 워렌 버핏이라 불리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도 체포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사우디 최대 경제 거물을 체포함으로써, 현 국왕과 왕세자가 국가 경영 주도권도 장악했다. 사우디 최대 민간기업 킹덤홀딩스를 설립한 알-왈리드 왕자의 재산은 18조 원이 넘는다. 현재 사우디 정부는 석방을 조건으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왕세자가 추진하는 경제개혁 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정치, 금기 깨고 부자 계승 치열한 이권 다툼

2018년 초를 기준으로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제 경제 권력도 사실상 모두 장악했다. 아버지가 즉위하자마자 그는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사우디 최대 국영기업 아람코(Aramco)와 최대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의 회장직도 맡았다. 주요 경제부처 장차관도 왕세자 인사들로 교체됐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4월에는 사우디의 탈석유화 경제사회 개혁 프로그램인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왕세자가 실질적으로 경제 운용 실권을 쥐었다는 신호탄이었다.

왕세자는 또 2017년 10월 564조원을 투자하는 미래 첨단도시 네옴(NEOM)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사막 지대에 서울의 44배에 달하는 ‘자유로운’ 첨단과학 허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홍보 영상에는 히잡을 벗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과 서구식 파티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한 달 전인 9월 국왕이 칙령을 통해 여성 운전을 허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뒷받침 하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네옴 프로젝트 발표 한 달 후에는 여성의 스포츠 관람 및 여학생 체육수업도 허용했다.

32세의 젊은 왕세자가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다각적인 개혁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왕위 형제 계승을 부자 계승으로 전환하는 것이 민감한 정치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932년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 아지즈 선왕은 방대한 영토를 통합하고 정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여러 주요 부족의 여성과 전략적으로 결혼했다. 24명의 부인을 두었고, 45명의 왕자가 태어났다. 따라서 자신의 사후 권력다툼을 우려해 형제 간 계승을 유언으로 남겼다.

실제로 현재까지 모두 형제 간 계승이 이뤄졌다. 이를 부자 계승으로 전환하는 것은 수십 년의 정치 전통을 바꾸는 것이다. 이는 또 현재 6천∼7천 명에 달하는 다양한 집안의 왕자들이 정치 및 경제 이권을 잃게 됨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어느 집안의 자손도 왕이 될 수 있기에 군사, 정치, 경제 등의 권력이 나름 여러 가문에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부자 계승이 실현될 경우 대부분 주요 권력이 현 국왕과 아들 왕세자의 직계 자손으로 집중될 것이 자명하다.

사우디를 둘러싼 종파 간의 갈등 확산과 신냉전 구도 형성의 기저에는 이란의 부상 및 권위주의 국가의 정권 생존이라는 두 변수가 깔려있다. 이 두 변수의 작용으로 중동 역내 정치 불안정 그리고 수니파 중동 국가 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왕위 부자 계승을 추진하고, 개혁 작업을 펼치면서 현 왕실은 많은 적을 양산하고 있다. 군부, 부족세력, 왕족, 이슬람 보수주의자 등을 적으로 만들었다. 암살과 정변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우디 내 정변 발생은 국제유가의 급등을 의미한다. 석유 가격의 안정화가 절실한 우리에게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