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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 남한 패션 트렌드, 북한 시장을 흔들다 2018년 2월호

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마지막회

남한 패션 트렌드, 북한 시장을 흔들다

정은이 /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북한 주민에게 쌀은 여전히 중요하며 상품가치의 척도가 된다. 예를 들어, 노동자 한 사람이 비공식 부문에서 하루 고용되어 버는 소득은 쌀 1kg이다. 북한의 4인 가정 1달 생활비도 약 50달러 수준인데, 이 또한 쌀을 기준으로 측정한 것이다.

즉, 북한에서 성인 1명이 하루 필요로 하는 쌀 수요량은 500g으로, 1달이면 15kg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이 총 4인이라면 60kg의 쌀을 필요로 한다. 시장에서 쌀 1kg 가격이 북한 돈 6천원이라면, 4인 가정 1달 쌀 구입비는 총 36만원이다. 현재 환율이 1달러에 북한 돈 약 8천원 수준이기 때문에 최소 4인 가족의 1달 생활비는 45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물론 옥수수를 먹는다면 생활비는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한 드라마 CD 1장이 쌀 1kg 보다 더 높게 책정되어 팔린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상황이다. 게다가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여전히 내화로 가치 측정이 가능한 반면, 남한 상품은 달러로 환산되어 판매되는 상황도 독특한 점이다.

최근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남한산 의류다. 북한 주민의 남한 옷에 대한 욕구는 대단한 수준이다. 북한의 한 회사 무역대표부 인사는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왔다가 단둥의 상점에 한국산 의류가 새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여 단둥행 기차표를 구입해 달려갈 정도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친지들의 옷까지 구입해오며 심지어 집에 여러 벌을 수집해 놓을 정도로 남한 옷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가 단둥까지 가는 이유는 베이징보다 남한산 의류의 종류도 많고 특히 신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한때 북한을 휘저었던 남한산 쌍방울내의

남한 상품에 대한 소비욕망은 비단 상류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남한 상품은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북한의 전국 각지로 퍼진다. 예를 들어 한 때 북한 사람들은 ‘쌍방울’ 브랜드의 메리야스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정도로 남한 브랜드 속옷의 인기가 높았던 적이 있었다.

‘쌍방울’은 남한 브랜드이지만 중국 옌지나 훈춘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중국산으로 북한에 유입되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북한에 들어간 ‘쌍방울’ 브랜드 제품은 시장을 통해 순식간에 전국 각지로 퍼졌다. 옷 뒤에 ‘쌍방울’ 라벨만 붙어 있을 뿐 여타 제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얀색 속옷이었지만 ‘쌍방울’이 남한산인 것만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쌍방울’의 유행은 3~4년 동안 지속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조했다.

더욱이 북한에서 중국산은 값싼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남한산은 세련되고 고상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북한 선수들은 중국에 갔다가 백화점을 둘러보고는 남한산 옷만 골라 사왔다. 이유는 장사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치마 한 벌에 10~15달러라면 남한산은 50~100달러로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다. 당시 비행기를 타고 남한산을 공수해 왔다고 하여 주민들은 이러한 선수들을 ‘비행기족’으로 불렀다.

그 당시 선수들이 가져온 제품 중에서도 특히 원피스가 제일 인기가 높아 평양에서 대대적으로 팔리기도 했다. 원래 북한에서는 원피스를 입는 문화가 없었고 모두 투피스 식으로 입고 다녔다. 중국산도 원피스 식으로 시장에 나온 적이 없었다. 따라서 당시 남한산 원피스의 인기는 엄청났다. ‘정보가 곧 돈’이라고, 한국산 원피스가 나오고 인기를 끌자마자 바로 이를 모방한 중국산 원피스가 대대적으로 시장에 풀리기도 했다.

북한 사람들의 남한산 옷에 대한 동경은 갈수록 강해졌다. 심지어 최근에는 북한의 의복 문화 측면으로 보면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K2나 블랙야크, 콜핑 등의 브랜드에서 나온 화려한 색깔의 등산복이 시장에 많이 풀리고 있다. 중국 단둥에 출장 나온 무역대표부 인사 중 많은 이들이 남한산 등산복 차림으로 다녀 남한 사람과 구분이 가기 어려울 정도라고 현지인들은 말할 정도다.

최근 북한 시장의 유행은 화려한 색깔의 등산복

등산복은 초기에는 개성공단의 일부 제품이 시장으로 유출되어 팔리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임가공을 북한에 의뢰하는 과정에서 유출되어 나오고 있다. 북·중 접경지대의 남한 상품을 파는 상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어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모방 제품도 많이 팔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착용한 옷과 액세사리, 헤어스타일 등은 북한 주민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는 바로 모방 제품으로 만들어져 북한 내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와 함께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 북한에서의 변화를 파악해 볼 때 북한 주민 사이의 유행과 무역 종사자들의 상품 유통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더욱이 북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보급해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면 북한 주민의 남한화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고 파급효과 역시 클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성공단 같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둥, 옌볜 등 남북의 문화가 공존하는 제3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나갈 것인지 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시의적절한 고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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