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 – Movie | 나는 북파 공작원이었다 2018년 10월호
Uni – Movie | <공작(The Spy Gone North)>
나는 북파 공작원이었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2018년 8월은 111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무더위만큼이나 한국 영화의 흥행으로 뜨거웠던 한 달이었다. 특히 1990년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공작>의 인기는 단연 8월의 백미였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을 사용했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북파 공작원의 행적을 다룬 영화 <공작>은 이미 개봉 전부터 기대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기는 했지만, 개봉 후 인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지난 9월 말에는 관객 490만명을 훌쩍 넘으며 그동안 제작된 분단영화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받았던 <쉬리>의 5백80만명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모아지기도 했다.
첩보영화는 액션이 필요하다는 공식을 깨고, 인물 간 고도의 심리전만으로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이 ‘한국형 첩보물’은 느닷없이 우리 사회를 1990년대 북핵위기 가운데 벌어졌던 첩보극 속으로 빠뜨렸다. 한편 그 파장력으로 실존인물인 박채서 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보도매체에서 인간 ‘박채서’ 인터뷰에 열을 올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줄거리
영화 <공작>의 배경은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3~1997년이며, 주인공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소속의 공작원 ‘흑금성’이다. 영화는 흑금성 실존인물인 박채서 씨의 회고록 『공작』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주인공인 박석영(황정민 분)이 극중 박채서 씨다.
이야기는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시작한다. 극중 주인공인 박석영은 당시 위기감이 커지고 있던 북한의 핵개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국군 정보사령부 소령 출신에서 안기부로 소속을 바꾸고,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 고위층 내부로 잠입한다. 암호명 ‘흑금성’. 북핵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박석영은 중국에서 활동 중인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박석영은 북한 측 요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보사에서 예편하는 과정의 알리바이를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가짜 ‘폐인’ 생활까지 감수했다. 행실 불량자로 군에서 쫓겨났다는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다.
북한 요원들은 박석영을 시험하기 위해 몇 가지 상황을 만들어 내다가 끝내 박석영에 대한 의심을 거둬드린다. 보다 고위층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 이때 박석영의 파트너가 바로 ‘이철’(이석민 분)이다. 영화에서는 경제무역 관련 부서의 처장으로 설정되어 있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아직까지도 그 소속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한 인물이다.
박석영의 카운터파트인 이철은 박석영을 통해 북한의 개발과 외화획득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반대로 박석영은 어떻게 해서든 북한 내부로 들어가 핵개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박석영은 북한 내부를 배경으로 광고를 촬영하겠다는 명분을 갖고 북한 내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박석영의 공작은 성공을 향해 한발씩 다가서고 있던 찰나 국내에서 변수가 발생한다. 바로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 것이다.
국내에서 박석영의 공작과 신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직속상관인 최학성 실장(조진웅 분)과 안기부장, 그리고 대통령뿐이다. 그만큼 박석영의 공작은 극비사항이었다. 하지만 박석영의 임무는 국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공작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정치적 공작이 인물 간 욕망과 이해관계 속에서 개인의 것으로 변모하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감상포인트
영화 <공작>은 웰메이드 영화임에 분명하다. 윤성빈 감독의 완성도 높은 연출력과 스토리를 떠받치는 베테랑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등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선방했다. 관람 후 온·오프라인에서 시시각각 퍼지는 관객평도 좋은 편이다. 또한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된 분단영화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한국형 첩보물 및 분단영화의 새 역사를 쓴 영화라 할 만하다.
다만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다 보니 <공작>은 개봉 이후 영화 그 자체보다는 시대적 배경인 북풍공작과 인간 ‘박채서’에 대해 더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지적해야 할 부분은 영화가 박채서 씨 ‘개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즉, 박채서 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영화적 설정과 팩트는 구분해야 하며, 박채서 씨의 진술 내용과 그에 반박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 핵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한 1990년대의 공작은 실패로 끝났고 2018년 현재 북한의 핵무장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그 해결을 위해 한반도 정세는 오늘도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영화 <공작>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직면한 현재 상황을 환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또 한 가지 생각거리를 남긴다. <공작>에는 어떤 치열한 ‘몸부림’이 있다. 실존인물인 박채서 씨의 프로파일을 보면 군내에서 열심히 경력관리를 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소령 계급을 마지막으로 군복을 벗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당시 군대에는 특정학교 출신이 아니면 진급이 안 되는 ‘벽’이 존재했었고, 인간 ‘박채서’는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공작원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씁쓸하게 다가왔다. 과거 정부의 만행을 성토하려는 정치적 평가나 공작원 신분을 망각하고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비판보다는 특정학교 출신이 아니면 진급이 안 되었던 당시 상황이 현재에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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