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타고 세계여행 | 패권을 향한 끝없는 도전, 러시아 2018년 10월호
화폐타고 세계여행 19
패권을 향한
끝없는 도전 러시아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는 20세기 말기를 내부 혼란을 극복하면서 보냈다. 21세기 초기에는 강경 리더 블라디미르 푸틴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강대국으로 중흥을 꾀하기 시작하더니,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국제적으로 부상했다. 서방 국가들은 서둘러 대러제재를 강화하기 시작했지만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등의 전략을 펼치며 강대국으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호에서 한국과도 점차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러시아의 탄생과 성장을 화폐를 통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러시아 민족의 기원은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인 5루블에서 찾을 수 있다. 5루블 앞면에는 1862년 러시아 건국 1천년을 기념하여 만든 청동 기념비 ‘천년의 러시아(The Millennium of Russia)’가 있다. 862년, 북유럽에서 흘러온 바이킹족의 일파인 바랑기아인(Varangian)들은 류리크(Rurik) 왕자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첫 수도 벨리키 노브고로드(Velikiy Novgorod)에 노브고로드 대공국을 세웠다. 이로써 류리크는 러시아를 세운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러시아 민족의 역사는 류리크 왕조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다.
러시아 첫 차르 이반 4세, 아시아 진출 본격 시동
하지만 879년 류리크의 사망 이후 류리크 왕조의 내부 분열로 이 지역에는 여러 개의 대공국들이 생기게 되었고, 이 중에서 키예프 대공국이 10세기 이후 부상한다. 특히 1,000루블 앞면 동상에 보이는 야로슬라프 1세(Yaroslav Vladimirovich)의 통치와 함께 러시아의 중심축은 새로운 수도 키예프로 넘어갔다.
대공 야로슬라프 1세는 키예프를 러시아의 문화·군사·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루스카야 프라브다」라는 러시아 최초의 법전을 편찬해 고대 러시아의 국가체계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키예프 대공국은 강력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11~13세기 러시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전성기를 누렸다. 일례로 그 위세는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원정을 나설 정도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강대국 키예프 대공국의 명성은 1240년 몽골 제국에 정복당하면서 과거사로 남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작은 공국으로 분열된 러시아 민족은 약 200여 년 동안 몽골 제국의 후손 중 하나인 킵차크 칸국(Qipchaq Khanate)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분열된 러시아 대공국들을 직접 식민통치하려던 초기 계획과 달리 킵차크 칸국은 그중 한 대공국을 택해 러시아 지역을 다스렸다. 그 대리인 역할을 맡았던 모스크바 대공국(Grand Principality of Moscow)은 킵차크 칸국의 지원에 힘입어 점차 나머지 대공국들을 흡수통일 하다가 1480년에는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북유럽에서 어느 정도 패권을 얻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통치자 이반 4세(Ivan Ⅳ)는 1547년, 자신의 칭호를 대공에서 ‘차르(황제)’로 바꾸면서 러시아의 첫 공식 차르로 등극한다. 칭호까지 바꾸며 위엄을 높이던 러시아는 이 시점부터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진출을 시도하며 세력을 키워갔다. 그러나 통치 후반기 아내의 죽음 이후 폭정을 펼치던 이반 4세 차르가 후계자인 아들을 지팡이로 두들겨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9세기 중반부터 이어온 류리크 왕조는 러시아의 역사 무대에서 강판 당했다. 결국 한동안 차르의 부재로 혼란기를 겪은 러시아 차르국은 로마노프 가문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금 안정을 찾아갔다.
표트르 대제의 해군 개혁과 현대화 … 강대국 도약 계기
로마노프 왕가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현재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푸틴의 통치 모델이자 500루블에 그려진 동상의 주인공 표트르 1세다. ‘표트르 1세 대제’ 혹은 ‘미친 표트르’로 불릴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표트르 1세는 대제였다고 생각한다. 표트르 1세는 2가지 큰 업적을 이뤘다. 해양 영향력 확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해군을 육성한 것과 러시아를 현대화한 것이다. 그는 스웨덴에 빼앗긴 지역에 완전한 유럽 스타일로 도시를 만드는가 하면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기도 했다. 실상 러시아가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1689년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의 등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반 4세 시대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은 표트르 1세의 해군 개혁으로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중국과 일본에 맞서는 아시아 강대국이 된 시점은 언제일까? 최고액권인 5,000루블에 힌트가 있다. 5,000루블 앞면에 실린 동상의 주인공 니콜라이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Nikolai Nikolaevich Amurski)는 1847~1861년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총독을 맡아 헤이룽 강 북부, 사할린, 캄차카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니콜라이 총독의 활약으로 러시아는 그 시점부터 동북아의 세력으로 인정받았고, 그를 상징하듯이 화폐 속 동상도 현재 러시아 극동부의 행정중심도시 하바로브스크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의 외교적 ‘꼼수(?)’를 밝히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러시아는 2017년 200루블과 2,000루블, 2장의 신권을 발행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0루블 앞면에 보이는 침몰선 기념탑이다. 이 건축물은 1856년에 끝난 크림전쟁을 기념하는 것으로 크림반도의 대도시인 세바스토폴의 랜드마크로 알려져 있다. 1783년 크림반도를 점령한 러시아는 1853년 발발한 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과의 크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크림반도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즉, 200루블 신권은 러시아의 크림반도에서의 패권을 공고히 한 2014년과 1856년을 동시에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화폐의 국내 반입을 금지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크림반도를 방문하고자 한다면 200루블 뒷면에 보이는 케르소네소스(Chersonesos)를 추천한다. 케르소네소스는 세바스토폴 근처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으며 크림반도의 3대 유적지 중에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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