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 – Movie | 분단의 경계 ‘존넨알레’ … 젊음과 자유는 함께 흐른다 2018년 11월호
Uni – Movie | <태양의 거리(Sonnenallee)>
분단의 경계 ‘존넨알레’
젊음과 자유는 함께 흐른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존넨알레(Sonnenallee)’는 독일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약 4Km 길이의 도로 이름이다. 과거 동서독이 분단되면서 이 도로가 나누어졌다. 대부분이 서독 지역에 속해있었고 약 60m 정도만 동독에 속하게 되었는데, 영화 <태양의 거리>의 배경은 분단 당시 바로 그 60m 동독 지역이며 ‘존넨알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존넨알레는 동베를린 국경도시로 서독과 접해있기 때문에 서독 물건도 밀수로 다량 유입되었고 서독 TV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동베를린 지역 검문소가 있기 때문에 ‘태양의 거리’라는 밝은 이름과는 반대로 서독으로 탈출하다 사살된 사람들이 많았던 암울한 기억도 간직한 곳이다.
1970년대 후반 동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태양의 거리>는 일종의 성장영화의 색채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토마스 브루시히가 지은 동명의 소설 『존넨알레』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스토리 라인은 소설과 다르다. 고로 별개의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주인공은 팝스타가 되고 싶은 17세 청소년 미햐(Micha)다. 비틀즈 멤버 존 레논 등 많은 팝스타 사진들이 미햐의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줄거리
영화는 주인공 미햐(Micha)의 방에서 시작한다. 영국과 미국의 유명 팝 가수들 포스터가 도배하다시피 붙어있는 방이 암시해 주듯이 미햐의 꿈도 언젠가는 팝스타가 되는 것이다. 미햐의 집은 서베를린이 바라다 보이는 국경선 존넨알레에 위치해 있다. 타 동독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경마을이다.
서베를린 국경선에는 서독 사람들이 동독 마을을 넘어 볼 수 있게 망루를 만들어놓았는데 건너편으로 보이는 동독 사람들을 향해 “동무”나 “동독인” 등으로 소리치며 손을 흔든다. 일종의 조롱이다. 주인공은 늘 담벼락 밑을 지나다 이 말을 듣지만 아무런 대꾸 없이 지나간다. 실상 서독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미햐의 가족은 아버지와 서독인 오빠를 둔 엄마, 누나로 단출하다. 아버지는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고 엄마의 오빠인 하인즈 삼촌은 일주일에 몇 번씩 밀수품을 몰래 숨겨서 미햐의 집을 방문한다. 스타킹, 커피 등 일상용품이 부족했던 동독에서 삼촌의 밀수품은 소중한 자산이었다. 미햐의 누나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일주일에 한번 꼴로 새로운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온다. 거실에는 항상 누나와 새로운 남자친구가 붙어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공산주의 동독의 가정 모습이다.
미햐의 동네 친구들도 팝스타를 꿈꾸는 고등학생이다. 다들 모여 짬짬이 디스코텍에 놀러 가서 당시 동독에서 불법이었던 팝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
존넨알레의 시민들은 자유진영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악과 카피판 앨범을 구매하려고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미햐의 엄마도 서독문화를 동경하며 서독 쇼프로그램과 드라마에 빠져있다. 가끔 하인즈 삼촌이 찾아오면 아버지와 서로 다른 의견으로 티격태격한다. 아버지는 미햐가 모스크바로 유학 가기를 바라고 삼촌은 영국 옥스퍼드나 프랑스 소르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팝 아티스트를 꿈꾸는 미햐의 삶은 우연히 보고 반하게 된 미리암(Miriam)이 나타나면서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미리암은 짧은 숏팬츠를 잘 입고 다니는 다소 개방적인 여성이다. 어느 날 미리암은 디스코 클럽에서 서독인 남자친구와 진한 키스를 하다 발각되어 자아비판장에 서게 된다. 미햐는 그런 미리암과 친해지기 위해 자신도 일부러 사고를 쳐 자아비판장에 섰다. 동독 공산주의 청년단 자아비판장에 선 미햐는 유려한 말솜씨(?)로 자아비판을 하는데 이 모습을 본 미리암은 미햐에게 호감을 느낀다. 본격적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친구 아파트에서 열린 파티에 미리암을 초대하는 미햐. 하지만 마약에 취한 미햐를 본 미리암은 나가버리고 미햐는 홧김에 아파트 창문을 열고 서독 방향을 향해 ‘절친’과 소변을 본다.
문제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터졌다. 이 모습이 찍힌 사진이 서독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것이다. 학감에게 불려간 미햐. 연인에게 버림받을 위기와 학교에서 징계 받을 위기에 처하며 우울감에 젖어든다. 하지만 이내 절친과 함께 롤링스톤즈의 음악을 듣다가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미햐를 따라 길거리의 시민들도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존넨알레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진다.
감상포인트
영화 <태양의 거리>는 1970년대 동독과 서독이 마주 보고 있는 존넨알레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영화에서 구현된 동독의 1970년대 모습은 그다지 촌스럽지 않다. 통일 전 동독의 모습을 그린 영화 <굿바이 레닌>이나 <타인의 삷>에서도 느꼈지만 동독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생각해 왔던 ‘못사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은 아니었다.
1970년대는 비틀스(The Beatl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등 대중적 팝 아티스트들의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다. 당시 동독에는 서방세계의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팝 아티스트들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물론 이 음악을 동독 당국에서는 금지했다. 하지만 지역경찰이 회식 때 앞에 나가 팝송을 부르다 상관에게 징계를 당하는 등 국경도시 존넨알레는 동독에서 해방구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1970년대에는 이미 자유를 희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레코드판 하나 가격이 250동독마르크, 일반 노동자의 3달 치 월급임에도 불구하고 미햐의 친구는 기어코 롤링스톤즈의 더블 앨범 ‘Exile on Main St’ 구입한다.
우리는 과거 분단 독일과 같은 분단국가임에도 아쉽게도 ‘존넨알레’를 연상시킬만한 장소가 없다. 오히려 중국의 ‘단둥-신의주’ 라인이 ‘존넨알레’에 가까운 분위기다. 그만큼 남북한은 독일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단절되어 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롱테이크(long take)로 동독 지역 ‘존넨알레’ 거리가 멀어지며 서독 지역으로 들어가는 샷으로 처리하면서 동서독 분단체제의 통일 방향을 암시하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2018년 한반도는 지금 통일의 길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