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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 | ‘1호’ 김정은, 이미지 정치는 계속된다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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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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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김정일의 죽음 직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된 김정은의 집권 기간이 어느새 7년을 넘어가고 있다.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웬만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와 비교해봐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는 곧 김정은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 매체를 통해 처음 공식 등장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할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한다’고 지적했다. 권력 이양의 정당성을 ‘백두산 핏줄’에서 찾기 위해 북한 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힌 김일성의 겉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일리가 있는 것이 유럽에서 생활하기도 한 젊은이가 밀짚모자를 쓰고 속옷 차림으로 인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면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는 아직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김일성의 모습만 따라 하고 있는 것일까?

지도자는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필자는 김정은의 모습이 어느 순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들은 사진과 영상 등 이미지를 잘 이해하고 정치에 활용한다. 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현장에 오지 못한 지지자들을 만족시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미국에서는 이미 1900년대 초부터 대통령 선거에 마케팅 기법들이 접목되기 시작했고, 100여 년 가까이 축적된 미국의 이미지 정치 기법은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도 활용되고 있다. 트럼프의 사진은 ‘선전효과를 노린 미장센’이 많다는 점에서 그전의 대통령 사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정치적 메시지와 정책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난 11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옐로스톤 국제공항에서 중간선거 지원 유세를 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면, 저 멀리 눈 덮인 산과 대통령 전용 비행기는 그가 가진 권력 크기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항 활주로에는 시민들이 들어와 트럼프를 영접하고 있는데, 누군가 사전에 배경과 등장인물을 고려하여 동원하고 연출하지 않는다면 이런 장면은 나오기 어렵다. 이런 연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미국의 대통령 사진을 위해서만 이 정도의 연출과 인원 동원이 가능하다. 활주로에 있는 지지자들이 골고루 카메라에 잘 잡히기 위해 트럼프의 참모들은 계단을 설치했을 것이고 트럼프와의 간격을 두기 위해 라인을 쳐두었다. 성조기 모양의 라인이라 거부감은 줄어든다. 트럼프의 사진을 위해 사전에 준비된 ‘촬영용 계단’은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그 규모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소품이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의 집단기념사진에도 ‘연단’이 등장한다. 아마 김정은 사진에 등장하는 연단은 김정은을 전담하는 소위 ‘1호 촬영가’ 팀과 함께 분리와 조립이 반복되며 트럭에 실려 북한 전역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사진 촬영 과정이 미국의 사진 촬영법이 비슷하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김정은은 지난 2013년 3월 서해 연평도 앞 북한의 섬인 장재도를 방문했을 때, 허름한 목선(木船)을 탔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을 무릅쓰고 적대국가 한국의 군대 바로 앞까지, 그것도 금세 침몰할지도 모를 목선을 탔다는 것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때 배 위에 북한의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 사장이 함께 탑승한 것이 사진에서 확인된다. 기자가 아니라 언론기관 사장이 직접 김정은의 스토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전문가를 ‘스핀닥터(spin-doctor)’로 부른다. 해당 정치인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나쁜 내용은 숨겨 정치인을 우호적이고 좋게 보이도록 선전하는 역할이다.

북한의 사진 표현 방식도 서구화되어 가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 ‘1호 사진’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처럼 여전히 최고지도자를 가장 우월하고 특별한 존재로 표현하지만 북한식 사진 촬영법만 고집하지 않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령 이전 지도자들 사진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든지 배경의 인파 모습이 포커스 아웃되어 흐릿하게 보이는 사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촬영법은 서양 사진계의 트렌드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닮은 듯 다른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 컷

물론 표면적으로 비슷하다고 해서 미국과 북한의 정치 사진이 똑같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시 장재도를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을 보면 미국과 북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날 섬에 살고 있던 북한 주민 전체는 흔쾌히 엑스트라가 되어 화면 구성에 협조한다. 카메라의 촬영이 시작되자 김정은을 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이 단적인 예다. 인민들은 다 같이 김정은 위원장이 주인공인 영화 같은 스토리의 한 장면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구체적인 지시인지 자발적 행동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 매체가 반복적으로 보여온 화면 속 스테레오 타입에서 지도자를 만난 인민들은 저런 표정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카메라가 앞에 있으면 ‘V’나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웃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사진과 이미지 정치가 갖고 있는 특징을 설명하고,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이미지 정치의 폐해에 대해 비판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 평론가가 북한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가 북한 사진을 15년째 연구하면서도 북한 사진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일한국> 편집자들과 약속했던 총 10회의 연재가 이번 글로 마무리된다. 북한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방식이 있는 만큼 다음 필자를 위해 이 코너를 넘기고자 한다. 10개월의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보여주는 모습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다. 2018년 최대의 화두였던 ‘변화’와 ‘새로움’이 북한 사진에도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사진의 변화는 실제 사회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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