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인터뷰 | “<로드스(Roads)>, 진솔한 이야기 들으며 치유의 ‘길’ 함께 걸어요” 2018년 12월호
통통인터뷰 | 정경희 국민대 공연예술학부 교수
“<로드스(Roads)>, 진솔한 이야기 들으며
치유의 ‘길’ 함께 걸어요”
조두림 / 본지기자
Q.반갑습니다. 탈북청년의 경험을 담은 창작뮤지컬 <로드스(Roads)>가 지난 5월 통일교육주간과 10월 공연되어 주목을 받았고, 12월에도 공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품을 기획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2012년부터 창작뮤지컬 기획을 시작했는데요. 사실 저는 국민대 공연예술학부에서 노래와 발성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통일과 관련한 공연 기획은 제 주전공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2011년 저희 가족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를 후원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후원인을 초청한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준비한 연극 공연을 관람하는데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환경도 많이 열악했고 서툰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교장선생님께 ‘제가 연극학과 교수인데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제안했고, 2012년부터 국민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생 2명을 합류하도록 해서 탈북학생들이 연극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죠.
효과는 상상이상이었어요. 사선을 넘어온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말로 꺼내기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반면 연극을 매개로 하니 탈북 학생들이 진솔하고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펑펑 울더라고요. 마음 속의 상처를 하나둘 꺼내면서 학생들이 치유되고 회복과 변화가 생기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희망적이었고, 여건이 된다면 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후 학교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학생들은 1년 동안 쌓아온 본인들의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였는데요.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선을 넘은 탈북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100여 명에 가까운 관람객들 모두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이 설립될 시점에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통해 회복된 탈북학생들과 공연 사례를 발표하게 되었고, 예산을 지원할 테니 극을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2014년부터 학생들과 본격적으로 탈북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올해 <로드스(Roads)> 기획까지 이어진 것이죠.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은 2014년부터 3년간 수정·보완을 거쳐 매년 공연된 <달콤한 철쭉>, 2016년 한꿈학교와 함께한 <랭강>, 2017년 하늘꿈학교와 만든 <우연의 바다>가 있는데요. 특징은 모두 탈북민이 출연해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전한다는 점입니다. 남한 사회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거짓없이 부풀리지도 않고, 누가 대신 말해주지도 않은 채 오롯이 본인의 입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요. 상업적 공연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죠.
극적으로 대단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나 작품성, 완성도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전달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거든요. 애당초 2014년부터 뮤지컬이 제작된 목적이 공연 자체가 아니라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탈북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준비부터 공연까지의 모든 과정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진솔함이 전달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뮤지컬 제목 ‘로드스(Roads)’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더불어 창작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A. 집을 찾으러 떠나는 ‘길’을 의미합니다. <로드스(Roads)>의 줄거리는 한 소녀가 집에서 나와 또 다른 집을 향해서 간다는 내용인데요. 그 길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하죠. 핑크빛 꽃길이 아니라 현실의 냉혹함이 서려있는 길입니다.
창작 과정은 먼저 지난 2017년 하늘꿈학교 탈북학생 10명과 <우연의 바다> 공연 이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시 참가자 전원의 이야기로 10개의 에피소드가 포함된 공연을 해봤으니 이번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해보자는 취지로 <로드스(Roads)>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이후 주인공이 될 탈북학생을 섭외해야 했는데 사실 이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다행히도 국민대 탈북학생 동아리와 연결되어 본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 한 명을 소개받게 되었는데요. 공연을 해보겠다고 승낙해 올해 초 극작가 선생님과 만남이 시작되었죠.
그 친구의 스토리를 듣고 극을 쓰기 위한 작업이 진행됐고, 전문 배우가 아닌 상태에서 뮤지컬 공연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발성과 연기연습, 배우 훈련도 병행했습니다. 다만 <달콤한 철쭉>의 경우 기본기가 갖춰진 뮤지컬 배우 지망생인 탈북 학생이 출연해서 뮤지컬의 비중이 높았던 반면, <로드스(Roads)>는 노래 대신 연극 비중을 더 높인 경향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작품을 만들어주신 분은 대학로에서 상업연극을 하는데요. 이미 탈북 연극을 가지고 영국 에든버러에 다녀오신 오신 분이세요. 당시는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꾸몄는데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반응이 뜨거웠고 무척 흥미로워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실제 탈북 학생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완성하셔서 개인적으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Q. 작품을 준비하시면서 애로사항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물론 있었죠. 각양각색의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큰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 바로 주인공인 탈북 학생이 공연을 불과 한 달 여 앞두고 못하겠다고 했던 일입니다. 이미 공연 포스터가 인쇄된 것은 차치하고라도 <로드스(Roads)>의 극 자체가 이 학생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뮤지컬의 내용을 전부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거죠. 그 짧은 시간 안에요.
그 친구가 대외적으로는 굉장히 밝은 성격으로 탈북한 지 5년여 남짓 지났지만 적응을 무척 잘해서 남한 정착에 성공적인 사례로 보였고, 본인도 처음에는 거리낌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극작가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이끌어 낼수록 많이 아파했어요. 탈북의 상처가 치유된 줄 알았는데 그저 묻어뒀던 것이더라고요. 사선을 넘는 순간 그 동안의 일은 다 잊기로 했는데 자꾸 물어보니 숨기려고 하고 작품 제작에 진척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본인의 이야기가 무대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것에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았어요. 결국 다른 사람 이야기로 바꿔달라고 하고 못하겠다고 말했죠.
거듭된 설득의 과정을 거친 결과 다행히 예정대로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는데요. 대신 그 친구의 충격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해 극의 설정을 조금 바꾸게 되었습니다. 한 소녀의 이야기에서 흑백의 옷을 입은 두 소녀의 이야기가 됐는데요. 남한에 잘 적응한 흰색 소녀와 “넌 좋겠다. 그렇게 맘이 편해서”, “너는 두고 온 부모님 생각 안 나니?”라며 그 소녀에게 비아냥거리며 부적응하는 흑색 소녀요. 그런데 사실 그 흑색 소녀는 다른 인물이 아니라 이 친구가 숨기고 싶었던 아픔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다른 인물로 등장시킨 것이었죠.
그렇게 5월 통일교육주간에 결국 자기 이야기로 본인이 첫 공연을 마쳤는데요. 그 학생이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회복과 치유가 되는 것이 한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공연 이전에는 이름도 밝히기를 꺼리고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 5월 공연만 우선 가까스로 출연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지난 10월 공연도 직접 출연했고, 오는 12월에도 그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로 무대에 오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로드스(Roads)> 주인공 학생이 이번 가을학기에 제 가창 수업도 들어오고 배우 훈련도 받았는데요. 가창 수업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저는 탈북학생”이라며 너무 편안하게 이야기를 잘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학생들이 오히려 놀라며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곧 친해져서 그 친구가 무대 준비하는 것도 도와주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 흐뭇했습니다.
Q. 공연을 기획하며 보람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요?
A. 공연에는 제가 수업을 맡고 있는 국민대 공연예술학부 1학년 학생들이 협업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이 이 공연 준비를 통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배척하거나 편견을 갖고 있었던 대상의 스토리를 또 다른 타인에게 전달하면서 스스로 내면에서 느끼더라고요. ‘아, 다르지 않구나!’ 울림 같은 게 있었다고 했어요. 다른 게 통일교육이 아닌 것 같아요.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자기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통일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은 공연을 관람한 남녀노소 관객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한꿈학교 학생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갔는데요. 탈북학생이 대학에 가면 어떤 일이 있는지 몰랐는데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또 힘과 위로를 많이 얻고 가고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점들이 저한테는 가치 있고 보람 있었던 부분입니다.
Q. <로드스(Roads)>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소회가 들었는지 궁금하고, 향후 작품 계획은 무엇인지요?
A. 저의 길, 제 ‘로드스(Roads)’의 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to be continued’처럼 에피소드가 계속되는데 한 작품이 끝난 느낌이고, 예산부터 뮤지컬 제작 및 공연에 이르기까지 든든한 조력자들 덕분에 공연이 잘 마무리되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내년에도 탈북을 주제로 한 창작뮤지컬 예산이 책정되어 이미 차기작 준비 미팅에 돌입했는데요.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작한 탈북학생 연극 지도가 대중 앞에 오르는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너무 나서게 된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은데요. 탈북학생들이 뮤지컬, 연극, 노래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한부모, 다문화가정 등에도 종합예술인 뮤지컬을 통해서 치유와 희망,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 꿈이 생길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면 성취감과 자존감이 생기는 것은 분명해요. 그걸 맛보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조력자들로부터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 경험도 함께 말이죠. 그러고 나면 본인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그것이 좋은 에너지로 바뀌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퍼질 것이고, 이것이 지속되면 바로 선순환 작용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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