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北, 장성택 숙청 불구 남북관계 정상적 운용 모색 2014년 1월호
기획 | 장성택 숙청 … 안개 속 북한
北, 장성택 숙청 불구 남북관계 정상적 운용 모색
북한의 경제문제를 총괄지휘했던 장성택의 처형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북한과 같은 유일영도체제하에서 장성택은 그런대로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어떤 피치 못할 이유가 있어 고모부를 죽이면서 ‘패륜아’라는 말을 듣고 있을까? 현재로서는 북한이 발표한 ‘국가전복음모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반당·반혁명·종파 행위’는 사형에 처해진다. 이것은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온 불문율이다. 그러나 과연 장성택이 북한의 발표대로 그런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몄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장성택은 매우 신중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모를 꾸몄다는 것은 왠지 믿기지 않는다.
北, 경제·핵 병진하에 인민경제발전 우선
이유야 어디에 있든 장성택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장성택이 없는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우리의 주관심사이다. 다행히 북한은 장성택을 처형하는 날인 지난해 12월 12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제4차 회의를 19일 개최하자고 제의하였고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예정대로 회의가 개최되었다. 회담에서 북한은 장 전 부장의 처형과 관련해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내부정치 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한다는 입장이 확인됐다. 장성택 숙청과 관계없이 남북관계가 정상적으로 운용되었으면 하는 내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12월 19일 회의에서 남북한은 개성공단이 정상화된 뒤 남북 간 합의 이행상황을 평가하고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등 관심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전자출입체계(RFID) 공사 및 일일단위 상시통행의 조속한 실시, 인터넷 개통 등 3통(통신·통관·통행) 관련 문제와 출입 체류 부속합의서 채택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 사안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남한은 1월 말에 개성공단 공동투자 설명회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체불된 임금의 지급 등을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같은 날 주요 20개국(G20)과 국제 금융기구 대표단도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G20 서울 콘퍼런스’에 참석중인 G20 국가 재무부·중앙은행 관계자와 국제기구 소속 직원 등 총 25명으로 이뤄진 방문단은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에서 현황 브리핑을 받고 정·배수장 등 기반 시설과 입주 기업을 둘러봤다. 이것 역시 북한이 개성공단 발전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건이다.
위와 같은 전향적인 북한의 행보는 김정은이 장성택 사건과 관계없이 향후 ‘경제발전과 핵무력발전 병진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북한은 핵보유를 통해 안보는 확보했으므로 향후 내각중심의 인민경제발전에 매진하겠다는 지난해 3월 31일 노선을 밀고 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제발전과 관련하여 북한 윤영석 조선경제개발협회 국장이 장성택 사태 이후 처음으로 2013년 12월 15일 통신에 “경제정책에 어떤 변화도 없다.”고 밝혔다. 이것은 북한이 장성택 처형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쳐일 수도 있지만 근본을 따져보면 경제발전 우선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은은 부족한 카리스마를 인민경제 발전을 통해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국가건설을 했고 김정일은 수령국가체제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거의 무임승차로 후계자가 되었다. 아무래도 최고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장성택이 김정은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경제성과를 통해 사후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김정은은 앞으로 주민들은 물론 관료들로부터도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둘째, 노동당이나 군부가 주도해 왔던 경제운용 시스템을 내각이 중심이 되어 실천하는 시스템으로 정상화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 이유가 내각중심제 정신을 훼손했다고 주장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은은 이미 내각 중심의 인민경제발전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핵무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미국이 함부로 북한을 침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 개발은 줄이고 그 비용을 내각에 주어 인민경제 발전에 투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구상이다. 비정상적인 경제운용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전략인 것이다.
김정은, 천안함 폭침 사과? … 쉽지 않아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북한경제가 수령경제, 당경제, 군경제, 내각경제, 암시장경제 등으로 나뉘어져 운용되어 왔다. 따라서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이 이를 바로잡겠다고 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한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지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는 것이다. 남한과는 핵문제뿐만 아니라 2010년 3월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과문제가 걸려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작동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은 과연 남한의 도움을 받기 위해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를 하고 남한으로부터 ‘5·24 조치’ 해제를 받아낼 것인가?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군부의 강한 반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군’ 김정은도 보수적인 북한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또한 북한의 사과 없이 ‘5·24 조치’를 일방적으로 풀고 남북경협을 재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장성택 처형 사건’과 무관하게 2014년에도 남북관계가 그렇게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월등한 국력을 가진 남한이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대전략을 세우고, 대북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북한 개방파들의 입지가 강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개방파의 입지가 커져야 ‘제2의 장성택’과 같은 고급관료가 나타날 것이고 북한 민주화도 촉진될 것이다. 2014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작동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현준 /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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