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 조선을 이끌 사공은 오직 한 사람? 2014년 1월호
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10 | 아홉명의 배사공
조선을 이끌 사공은 오직 한 사람?
사공이 많으면 배는 어떻게 될까? 사공이 많다고 해서 배가 빨리 가지 않는다.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사공은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한다. 2008년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만화영화 〈아홉명의 배사공〉이라는 작품의 주제이다. 이 작품은 런닝타임이 26분이다. 일반적으로 아동영화의 런닝타임이 대개 10분 내외인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긴 분량이다. 그렇게 길게 만들어야 할 주제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사공은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한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험 많은 뱃사공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이어 받아 키를 잡아야 한다.’, ‘한 배를 탄 사람들은 사공에게 키를 맡기고 그를 따라야 한다.’ 〈아홉명의 배사공〉을 이끄는 키워드이다.
최근의 북한 정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제작시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된 2008년에 제작되었다. 김정일 추모 1주기인 2012년 12월에도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 몸소 들려주신 옛 이야기에 기초한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후계 구도의 정당성을 복선으로 깔고 아동영화를 통해 폭넓게 선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아동영화가 직접적으로 후계 이양에 동원된 것이다. 정치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만큼 후계세습의 정당성 확보가 시급했던 모양이다.
최근 북한 정치 고스란히 녹아있어
바닷가 기슭에 살고 있는 곰나루 사람들과 거북나루 사람들이 각자 배를 타고 마을로 가고 있었다. 곰나루 사람들이 탄 배에는 경험 많은 늙은 뱃사공이 키를 잡았고, 거북나루 사람들이 탄 배에는 늙은 뱃사공의 손자인 뱃사공 바우가 키를 잡았다. 바우는 나이도 어리고 아직은 경험도 없었다. 나란히 마을로 향해 갈 때였다.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본 뱃사공 노인은 배에 실었던 물건들을 바다에 버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돛대를 찍어 버렸다. 그리고는 손자인 바우에게도 “물건을 버리고 돛대를 찍어 내라.”고 알려주었다. 바우가 배에 탔던 사람들에게 물건을 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한 약재와 물건을 아까워하며, 바다에 버리지 않았다. 마음 약한 바우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거센 파도가 배를 덮쳤다. 배는 산산히 부서지고, 배에 실었던 물건과 사람들은 바다 속으로 대동댕이 쳐졌다. 다행히 사공 노인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폭풍이 지나가고 배를 탄 사람들은 무인도로 피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수리하였다. 배의 파손된 부분을 고치고, 숲에서 큰 나무도 베어서 돛대도 만들기 시작했다. 돛대로 쓸 나무를 다듬고 있을 때였다. 곰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바람에 노인 사공이 부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돛대가 세워지고 배는 다시 바다로 나갔지만 키를 잡아야 할 사공 노인은 기력이 다하여 키를 잡을 수 없었다. 노인은 바우에게 키를 잡도록 하였다.
“나이가 어려도 사공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어린 바우를 본 사람들은 각자 자기 동네로 먼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마을로 먼저 가야 한다면서 싸우기 시작하였다. 짙은 안개가 끼고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서로가 길을 안다고 나섰다. 나중에는 사공인 바우 대신 키를 잡겠다고 서로 나섰다. 이렇게 배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었다. 짙은 안개가 걷히고 도착한 곳은 결국 처음 출발한 무인도였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싸우느라 정작 중요한 계획을 다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들은 사공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운 것을 후회하였다.
사공 할아버지는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 나이가 어려도 사공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라며 바우에게 단단히 일렀다. 바우도 자기가 사공이었으면 끝까지 키를 잡아야 했었는데 양보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후회하였다. 사공 노인은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가리키면서 저 기러기떼도 맨 앞에선 길잡이를 따라간다고 하였다. 배에 탄 사람들은 “사공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면서 배에 탔던 사람들도 제작기 바우에게 키를 양보하였다.
사공 할아버지와 젊은 바우의 관계는 흥미롭다. 바우는 곰나루의 사공 할아버지 손자이다. 거북나루에 사공이 없어서 바우를 데리고 왔다. 사공 할아버지는 바우의 배에 오른 거북나루 사람들에게 “바우가 비록 젊지만 경험이 많은 뱃사공이므로 오직 바우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홉명의 배사공〉은 아동영화이지만 목적의식도 분명하다. 초기의 자막도 그렇지만 영화 전반의 내용 자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후에 우려했던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배에 탔던 아홉 명의 사람들이 제 각각 사공이 되려다가 결국 무인도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바우에게 키를 양보하는 설정이나 폭풍우 속에서 신속한 판단으로 배와 사람들을 지켜낸 사공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우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결론의 이야기 구조에서 후계 이양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린 후계자가 키를 잡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우려했을까? 후계 구도의 내면화 작업은 꽤나 일찍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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