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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가 숨 쉰다 | 파랑새, 잡히지 않는 행복의 상징 2014년 9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11 | 파랑새, 잡히지 않는 행복의 상징

TS_201409_67 녹두장군 전봉준의 이야기가 각인된 상태에서 바라본 파랑새의 의외의 모습 때문에 한동안 혼란을 겪었다. 슬프고 실패한 이미지의 파랑새는 나의 청년시절까지 시대적인 아픔과 함께하고, 그 노래를 읊조리기도 했다. 어느해 5월쯤 참 날씨가 좋던 저녁 무렵 큰 날개를 너울너울 거리며 날던 파랑새를 만났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때는 작고 온몸이 뭉툭한 듯 보이던 그 새가 민족적 애환이 서린 시대에 불리던 파랑새라는 것에 놀랐다.

대중가요에서 나오던 애잔함과 그리움을 말해주던 파랑새를 피터팬이 되어 민통선을 헤매며 찾아다녔다. 물론 ‘삐릿삐릿~’ 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드디어 파랑새가 모여 있는 곳에 찾아냈다. 그곳은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있는 세월천 상류였다. 비무장지대에서부터 출발한 세월천 주변은 숲이 잘 발달한 곳이다. 귀룽나무와 신나무, 산벚나무 등 습지수목과 평지수목들이 어우러진 원시숲 같은 곳에 둥지를 튼 파랑새는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파랑새는 높은 가지 끝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 100m정도 거리를 두면서 가깝게 다가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진정한 행복은 꿈꿀 때만 존재한다”

파랑새과는 전 세계적으로 12종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중에서 파랑새(a broad-billed roller) 1종만 있다. 파랑새는 우리 땅이 고향이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새끼를 양육하고 숲을 풍성하게 하는 파랑새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1회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크기가 30cm 정도이며 몸은 선명한 청록색이고, 머리와 꽁지는 검은색을 띤다. 날 때는 날개의 흰색무늬가 아주 선명하게 눈에 띈다. 부리와 다리는 산호색을 띤 붉은색이다. 낮은 산지 숲을 선호하며 나무구멍에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부리가 단단해서 전주에 구멍을 뚫고 둥지를 틀기도 한다. 꾀꼬리와 비슷한 시기에 번식하는 파랑새는 딱정벌레, 매미, 나비 등을 즐겨 먹기 때문에 연일 큰소리로 울면서 텃새들과도 힘찬 경쟁을 한다. 올해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찰된 파랑새는 통일촌과 수내천 인근 초평도에서 주로 번식하고 민통선 전역을 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한다.

모리스 마테를링크(1862~1949)는 <파랑새>란 몽환적 작품에서 “파랑새가 상징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밤의 궁전 파랑새처럼 우리가 꿈꿀 때, 소망할 때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꿈꾸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파랑새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또 파랑새는 마테를링크의 시극에서 잡히지 않는 행복의 상징이다.

이미지와 달리 전투력 강한 철새

털빛이 파란 빛깔을 띤 새. 영조(靈鳥)로서 길조(吉兆)를 상징한다고 한다. 파랑새는 꿈꾸고 소망할 때 존재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다. 그런데 DMZ일원에서 본 파랑새는 좀 더 공격적이고 사납기까지 했다. 문학작품에서 본 파랑새와는 이미지가 달라서 의아했다. 둥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고 까치둥지를 빼앗아 제 번식둥지로 쓰기도 하는 파랑새는 까치와 싸워서 이기는 몇 안되는 전투력 강한 여름철새였다.

우리 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서 정부의 지원도 민간의 지원도 없이 정말 고독하게 활동을 한다. 주 수입원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생태학교가 전부다. 그것도 최근에는 DMZ와 관련한 정부의 각종사업으로 진행되는 무상체험 프로그램이나, 관광공사의 안보관광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이 몰리고 있어서 우리처럼 비정치적이고 자발적인 집단은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 한편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우리에게 경영 기법을 도입하라고 친절하게 권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태를 지키는 데 경영을 도입하는 방식은 생명의 상품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연구소는 파랑새처럼 꿈을 꾼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연구소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차라리 가난하고 작은 연구소로 남아서 순수한 가치를 지닌 조직이고 싶다.

그런데 우리가 혹시 장래의 행복만을 몽상할 뿐 현재의 일에는 관심도 없는 파랑새증후군이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발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피터팬증후군, 모라토리엄 인간과 같은 류의 조직일까? 아니다. 적어도 생태를 보고 지키려고 하는 우리는 작지만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임을 확신한다. 유약해 보이는 파랑새가 존재를 확인시키는 행동이 힘차게 보인다. DMZ생태를 지키는 우리가 그러하다.

생태를 지키는 데 경영을 도입하는 방식은 생명의 상품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연구소는 파랑새처럼 꿈을 꾼다. 차라리 가난하고 작은 연구소로 남아서 순수한 가치를 지닌 조직이고 싶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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