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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북한식 글로벌 외교’ 외교적 협상 전기로 만들어야 2014년 10월호

시론 | ‘북한식 글로벌 외교’ 외교적 협상 전기로 만들어야

소위 집권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김정은 리더십이 최근 보이고 있는 흥미로운 변화의 하나는 북한식 ‘글로벌 외교’이다. 전통적으로 국제무대에서 독특한 외교전략을 구사해 온 북한이기에 ‘글로벌 외교’라고 해봐야, 미국과 유럽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생존전략의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보여 온 일련의 긴장고조 정책들을 고려해 볼 때, 다소 이례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올 하반기를 중심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중요한 모멘텀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어서, 북한 행동 변화에 더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이다.

구체적으로 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유럽 순방과 연이은 몽골 및 중국 방문을 통해 북한의 대외관계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아직까지 강석주의 중국 방문 성과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유럽국가 순방의 경우 특별한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북한이 보인 대외 행보와 비교할 때, 이례적인 일이며 ‘외교’라는 보편적인 정책수단에 북한이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북한 외무상 리수용의 유엔 총회 참석은 단연 이목을 끌고 있는데, 북한 외무상의 유엔 총회 참석은 15년만의 일일뿐만 아니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리수용은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되면 리수용은 중국이 아닌 미국과 러시아를 핵심 외교 파트너로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게 되는데, 북한의 외교적 셈법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외교적 시도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불구하고 어쨌든 나름대로의 로드맵을 가지고 정책적 완결성을 높여가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집권 직후 3차 핵실험을 포함하여 독자적 군사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대외에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고, 다음으로는 장성택 숙청을 포함하여 대내적으로 대대적인 권력 재정비 단계를 거친 바 있다. 군부세력의 중심축을 이동시켰고, 대중국 무역을 담당하는 인사들도 대부분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사강국 그리고 권력재정비 단계를 건너 온 김정은이 이제는 대외관계 강화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왼쪽)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9차 유엔 총회 일반토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의 기조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왼쪽)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9차 유엔 총회 일반토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의 기조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김정은,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외교 공간 선택

이러한 북한의 국가 정비를 위한 단계적 노력이 얼마나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정은 집권 이후 시도한 일련의 획기적인 선택들을 통해 리더십의 대내적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는 판단 위에, 이제는 대외적인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가설은 나름 의미 있어 보인다.

둘째, 또 다른 관점의 하나는 위에서 설명한 방식과 달리 최근의 북한 외교관계 강화는 오히려 불안함과 초조함의 증거라는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엔 총회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의결의 대상이 되고 논의의 초점이 된 것은 최초의 일이다. 북한으로서는 글로벌 외교무대의 심장인 유엔에서 자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상대로 시도한 경제적 제재조치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과 고립감을 안겨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북한이 펼친 소위 북한식 글로벌 외교는 이러한 불안감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설명방식은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보이고 있는 대북정책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속내를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근 중국의 대북한 전략을 관찰해 보면 이런 저런 대목에서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관계개선 시도, 러시아라는 전통적인 우방국, 상대적으로 외교적 중립성을 보이려고 애쓰는 유럽 등을 상대로 북한이 외교적 숨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처럼 북한의 최근 외교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김정은이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외교라는 새로운 공간을 선택했다면, 그러한 시도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즉, 결국 남과 북이 해결의 당사자로 무한 책임을 가지면서도, 그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국제행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외교적 노력과 선택은 한반도 평화를 확보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외교라는 수단은 상대방이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북한의 새로운 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규범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 노동당 비서 강석주는 공교롭게도 지금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4년 미국을 상대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낸 주역이다. 제네바 합의 이후 20년의 세월 동안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와 평화통일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협상의 주역이었던 강석주가 다시 북한 외교의 전면에 나서는 듯한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신감의 표현인가? 불안감의 표현인가?

20년 전 북한을 상대로 한 외교적 타협이 의도와는 달리 북한에 시간을 벌어준 결과로 이어졌다면, 지금부터 전개될 새로운 외교적 타협은 북한을 궁극적인 변화의 길로 이끄는 새로운 역사가 되기를 기원한다. 북한이 전개하는 ‘북한식 글로벌 외교’가 북한의 자신감의 표현이든 혹은 불안감의 표현이든,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외교적 협상의 모멘텀을 찾아가는 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시 우리의 전략적 사고와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박인휘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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