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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러시아, 신동방정책 추진 … 미·중 경쟁 균형자 될 수도 2014년 10월호

<편집자주>

동북아 지정학의 부활, 세 번째는 옛 소련의 영화를 꿈꾸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다. 2012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신동방정책’을 내세워 극동개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후 극동·바이칼 지역 개발펀드 설립, 극동개발부 신설, 극동·바이칼 지역 국가 프로젝트 등을 추진 중이다. 푸틴의 동진은 극동지역 개발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동북아지역 패권경쟁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력 회복을 통해 외교 활력을 되찾아 가는 러시아의 움직임에 능동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기획 | 동북아 지정학의 부활 – 러시아
러시아, 신동방정책 추진 … 미·중 경쟁 균형자 될 수도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지금까지는 자신의 존재감 유지에 급급해왔던 러시아가 동북아를 비롯한 아태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미·중 경쟁구도에서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떠맡을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웅크리고 있던 북극곰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힘자랑을 시작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러시아가 글로벌 정치무대의 중심에 재등장한 것이다. 그 서막을 알린 것이 2008년 8월의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이라면, 2014년 크리미아 반도의 러시아 병합은 글로벌 파워로 복귀하려는 모스크바의 거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공산체제의 붕괴 이후 러시아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그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1990년대를 통틀어 경제적으로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었으며 범죄 집단이 사회 곳곳에 손을 뻗치는 등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경험했다. 혼란과 침체는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점차 잦아들었고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국제 석유가격 급등이라는 외적인 요소들의 덕도 보았다. 그러나 정치 및 사회의 안정과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는 ‘강한 러시아’를 국정목표로 내걸고 국가권력의 강화와 사회적 질서의 회복을 위해 법과 제도의 정비, 개혁조치를 밀어붙인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

국내에서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얻은 푸틴은 집권 2기가 시작된 2004년 무렵부터 국제무대에서도 러시아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옛 소련 공화국들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 자국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경제적으로는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를 만들어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 사이에 자신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제협력체를 지향했다. 군사·안보적으로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창설해 역내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외부로부터의 영향력을 차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 있어서 모스크바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려고 했다.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중국으로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기공식이 극동 야쿠티야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열렸다. 사진은 행사에 참석한 알렉세이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장가오리 중국 부총리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중국으로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기공식이 극동 야쿠티야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열렸다. 사진은 행사에 참석한 알렉세이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장가오리 중국 부총리

글로벌 파워 복귀 프로젝트 본격화

유라시아지역에서 영향력의 교두보를 확보한 푸틴의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21세기판 동방정책, 즉 ‘신동방정책’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동방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첫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서구와 구분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적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독특한 문명적 정체성, 소위 ‘유라시아주의’를 내세웠다. 둘째, 지정학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유럽연합(EU)의 세력 확장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러시아는 아태지역으로의 협력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과 아태지역에서 중국이 급속하게 세력을 팽창하고 있는 상황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셋째, 경제적 요소를 들 수 있다. 에너지 강대국 러시아는 이러한 에너지 자원을 주로 유럽으로 수출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기침체로 인해 유럽의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데에다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정치적 갈등까지 겹쳐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시장을 다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러시아는 아태지역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던 것이다. 넷째, 서부지역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극동 및 시베리아지역을 개발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목적 하에 아태지역과의 교류확대에 나서게 되었다. 특히 최근 러시아 정부는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시베리아와 극동에 대한 투자를 유치해 이 지역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수립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신동방정책 양날의 칼

이러한 신동방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러시아 연방정부는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푸틴 3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극동지역의 개발을 전담하는 ‘극동개발부’가 신설되었다. 또한 모스크바는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해 신동방정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 무렵 러시아 연방정부는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해 6천억 루블을 투자했으며 향후 수조 루블을 추가 투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러시아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증진을 위해 노력해왔다. 예컨대 푸틴 대통령은 2013년 11월 서울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갖고 나진·하산 물류협력에 합의하는 등 남·북·러 3각협력의 중요한 밑그림을 마련했다. 2014년 5월에는 푸틴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갖고 4천억 달러 규모의 러·중 가스협력을 타결시켰다. 또한 푸틴 정부는 일본의 2013년부터 아베 정부와 에너지 협력을 비롯한 경제협력과 양국 간 전략대화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러시아는 동북아를 비롯한 아태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존재감 유지에 급급해왔던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미·중 경쟁구도에서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떠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의 전도가 반드시 밝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추진에 있어서 양날의 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는 그것이 추진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다. 유럽과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러시아는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협력확대를 통해 지정학적, 지경학적 손실을 만회하려 들 것이다. 둘째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빚어진 미·러 대결구도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 일본 등 우방국들에 대러 제재조치에 동참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는 이들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의 협력을 증대시켜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대외정책의 주요 기조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경제영토를 넓히고 외교적 역량을 증대시키며 궁극적으로 통일한국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중장기적인 비전을 위해 한국은 미·러 갈등국면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파트너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장덕준 /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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