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백두산이 갈라놓은 절친 2014년 10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44 | 백두산이 갈라놓은 절친
북한에선 주(週) 생활총화라는 걸 한다. 한 주간 생활에서 있던 이러저러한 결함들을 회의에서 적나라하게 내놓고 비판하고 다음 주부터는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진행한다. 조직생활총화는 1968년 김정일이 정계에 등장하면서 발기한 것인데 지금까지 당의 방침으로 시종일관 변함없이 진행해 왔다. 형식은 자기비판과 함께 반드시 상호비판을 병행해야 한다.
북한에서 당원은 당 조직, 청년동맹원은 청년동맹조직, 어린이는 조선소년단 조직 그 외 조선직업총동맹(직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등 계층별 조직에 어느 누구든 다 망라되어 조직생활을 한다. “생활총화에서의 상호비판은 발전의 무기”라고 노동당은 가르치고 장려했지만 실제 그럴까?
“정수가 기숙사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있던 일이다. 학과에 영남이와 정수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생활총화 시간에 정수가 먼저 일어나 강의 시간에 졸았다는 둥, 딴 생각했다는 둥, 자기비판을 한 다음 상호비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상호비판이라는 게 자칫하면 불화를 빚곤 해서 누구나 꺼리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조직원칙에 의해 반드시 해야만 자기총화를 끝낼 수 있기에 안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정수는 생각다 못해 절친인 영남이를 대놓고 강의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거리했다고 간단히 비판했다. 친구니까 이해해 주겠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영남이는 그걸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그런 영남의 마음이 다음 주 생활총화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기숙사 뒤울안에서 정수가 담배를 피운 것을 놓고 아주 심각하게 비판한 것이다. 북한 대학생들은 당시 김정일의 방침에 의해 담배를 피우면 안 되었다.
“‘대학생들은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설사 전부터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라 하여도 대학생이 되었으면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하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치셨는데 김정수 동무는 뭡니까! 그러고도 당의 붉은 대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 되어도 아주 잘 못된 일입니다. 전 김정수 동무의 조직문제를 볼 것을 제기합니다!”
말 그대로 비수 같은 비판이다. 정수는 자기가 한 짓이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다. 물론 담배를 피운 것으로 하여 조직문제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정수의 속은 불씨를 집어넣은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데 복수의 기회는 우연하게 다시 찾아왔다.
북한 대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학교로 등교할 때 모두 군대처럼 줄을 지어 다닌다. 그날 아침, 지하도 옆을 지날 때다. 밤사이 어떤 사람이 변을 본 것이 꽁꽁 얼어 있었다. 그걸 본 영남이가 얼결에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어떤 자식이 여기다 백두산을 만들어 놨어?” 물론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명심해 들은 사람은 바로 정수다. 그날이 마침 생활총화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생활총화 시간에 영남은 아무 생각없이 아침에 한 말은 까맣게 잊고 1주일간 이러저러 나타났던 결함에 대해 비판하고 앉으려는데 정수가 벌떡 일어났다. 시작은 차분하게 했지만 비판 속엔 아주 예리한 칼이 숨겨져 있었다.
“오늘 아침 여러 동무들도 들었겠지만 영남 동무는 지하도 옆길에서 어떤 사람의 배설물을 보고 그걸 백두산에 비유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키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정수의 격앙에 찬 다음 말에 그 웃음소리는 빗물 잦아들 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동무! 백두산이 어떤 산인데 더러운 배설물에 비교하는 겁니까! 동무는 백두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위업을 개척하시고 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탄생한 혁명의 성산이라는 걸 몰라서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저 동무는 원래 사상적으로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그렇게 비하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영남이는 혁명성산 백두산을 배설물로 비하했습니다!”
지난 번 자기가 당한 복수를 아주 시원하게 한 셈이다. 주 조직생활총화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는 거의 상급조직에 보고된다. 영남의 발언은 수령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보고되었고 점차 눈덩이 같이 커졌다. 우연한 실수의 말 한마디 때문에 영남은 이후 몇 달씩이나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비판서를 썼다. 출학(퇴학)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용서되었다.
물론 이후부터 둘은 완전히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김정일이 내놓은 주 조직생활총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단합하는 것이 두려워 서로 떨어져 물고 뜯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은 하게 된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