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조선어대사전〉 편찬으로 민족을 지키다 2014년 10월호
이달의 인물 | 이달의 독립운동가 한징
<조선어대사전> 편찬으로 민족을 지키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효창(曉蒼) 한징(韓澄, 1886.2.20~1944.2.22) 선생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한징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1893년에서 1921년까지 한학과 국학을 전공했다. 그 덕분에 사서삼경에 정통했으며, 아울러 우리말과 글 연구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1922년부터 1935년까지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강압정치를 비판했다.
한편 1927년 계명구락부가 추진하던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였다가 사전 편찬이 중단되자, 조선어연구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 활동에 합류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이윤재 등과 조선어사전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했고,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후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표준어의 제정과 우리말사전의 편찬에 헌신했다.
선생은 조선어학회가 1934년에 조직한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의 사정위원과 수정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표준어 사정 독회에 모두 참여했다. 제1독회와 제2독회에서는 수정위원에 선정되어 활약했다.
또한 선생은 1936년 4월부터 1942년 9월까지 <조선어대사전> 편찬 전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조선어학회의 월급이 박봉이어서 저녁에는 인쇄소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선생은 언제나 쉴 새 없이 사전 원고를 쓴 것으로 유명했다. 선생은 조선말 큰 사전을 빨리 세상에 내놓아 우리말이 보존되어 우리 민족이 영구히 유지되기를 바랐다.
한징 선생은 “말과 글은 민족정신의 가장 중요한 소산인 동시에 민족정신이 거기에 깃들이는 둥주리다. 민족 문화의 창조 계승 발전은 그 말과 글의 의지에 있다.”라고 동지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어말살정책 일환으로 조선어학회 인사들을 체포했다. 한징 선생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1944년 일제의 갖은 고문으로 옥중 순국했다. 이에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평생 우리말과 글을 지키다 순국하신 선생의 뜻을 기려 10월 31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하고, 10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사진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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