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일관성·지속성 유지해야 대북정책 효력 발휘 2014년 11월호
시론 | 일관성·지속성 유지해야 대북정책 효력 발휘
지난 10월 4일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해 직항로를 통해 남한을 방문하였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이자 최근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황병서 차수를 단장으로, 장성택 처형 이후 실질적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측근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 그리고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인 김양건 비서 등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용기를 타고 오전 9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만 13시간 동안 체류하였다. 이들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측 고위 인사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으며 폐막식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와도 2차례 회동하는 등 화기애애 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모처럼 조성된 남북 고위급 회동에서는 지난 2월에 개최되었던 제1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이어 제2차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그동안 단절되었던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재개하고 관계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朴 대통령, “5·24조치 문제 논의할 수 있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방남 이후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와 5·24조치 등의 해제를 통해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반전에 호응하듯이 박근혜 대통령도 제2차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북고위급 회담이 재개되면 5·24조치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전향적인 입장을 처음으로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측 고위급 방문단의 방남과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연이은 대남 도발과 비방으로 남북관계는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다. 북한의 경비정이 의도적으로 NLL을 침범하고 이로 인해 양측 간 교전이 벌어지는 등 갈등 상황이 발생하였다. 비무장지대 전역에 걸쳐 북한 군인들의 도발적 행동으로 양측 간 총격전이 발생하는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이같은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자 남북 고위 군사접촉이 이루어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나아가 탈북민 단체를 중심으로 사전 예고 하에 대북 전단을 실은 풍선들이 대량 살포되자 북한은 대북 선전활동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며 민통선 인근에까지 고사총을 발사하는 등 극도로 반발하며 우리측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남북 간 합의에 따라 10월 30일로 예고했던 남북 고위급 대화는 북측의 일방적인 대북전단 중단 요구와 회담 개최에 대한 무응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의 전격적인 방남으로 물꼬가 트이는 듯 싶던 남북대화 분위기가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로 인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 또 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대남정책 이중성과 내부 혼선은 그동안 북한이 사용해 온 강온양면 전술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결과이자, 군사안보적 측면과 경협 및 인도적 지원 등 의제의 다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표출된 일종의 정책 혼선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선군정치로 비대해진 군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김정은 체제하에서 군부가 일련의 대남도발을 지속함으로써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이중성과 정책 혼선 등은 지난해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중심의 친정체제가 공고해지기는 하였으나 김정은 정권의 대내외 정책 방향과 내용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40여 일간 칩거하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건강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북한은 대외정책에서도 적극성을 보였으나 북핵문제와 폐쇄체제의 경직성으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대화의 문호를 열어놓은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대화를 준비하면서도 실제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의도적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위급 회담 세분하고 총괄 회담 재구축해야
북한의 전략적 도발이든 정책적 혼선이든 집권 중반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공세적 대남정책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여야 대북정책으로서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이자 기조인 북핵불용과 튼튼한 안보를 위해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한다는 원칙을 실제로 입증하여야 원칙으로서의 의미와 정책기조로서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 대북정책의 원칙과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정책의 이행 전략을 상황 변화에 따라 조율해나간다면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며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향후 남북 고위급 회담이 재개될 경우, 박 대통령이 언급한 5·24조치를 포함하여 이산가족 상봉, 비방 중단, 인도적 지원, 금강산관광 및 인적 교류, 북한 경제특구 등에 참여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되, NLL과 평화체제 문제 등은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북핵문제 해법과 병행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남북 고위급 회담을 단계별로, 분야별로 세분화, 구체화하고 이를 총괄할 수 있는 당국 간 고위급 회담을 재구축하여 대화와 협상을 정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호열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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