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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G2, 영향력 경쟁 본격화 한국, 세계경제 플랫폼 기능 확보해야 2014년 12월호

특집 | 한·중 FTA 타결 … 세계경제 플랫폼을 향해!
G2, 영향력 경쟁 본격화 | 한국, 세계경제 플랫폼 기능 확보해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월 1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월 1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서 현란할 정도로 각종 이름을 가진 지역경제 협력 방안이 만개했고,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한·중 FTA 타결과 곧이어 보도된 중국·호주 간 FTA, 그리고 한국·뉴질랜드 FTA로 인해 바야흐로 FTA 전성시대가 열린 듯하다. 한편 미국 주도로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아직 물밑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세계 무역 및 투자 질서를 지키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은 어디 가고,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크고 작은 지역경제 협력 방안이 대세를 이루게 됐을까.

이와 같은 흐름은 크게 봐서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와 중국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아·태 전략에 기인한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산업의 확장과 다국적기업의 글로벌경영, 그리고 인터넷혁명으로 가능해진 세계 자본시장 통합으로 인해 자본과 상품의 공급과잉을 초래했고, 급기야 ‘세계의 공장’ 중국과 세계금융위기를 탄생시켰다. 시장 확보가 경제적 생존의 기준이 됐으며, 그동안 무차별 원칙에 의한 무역 투자 자유화를 지향했던 WTO의 보편성을 넘어서, 이제 세계 각국은 이해관계를 감안한 전략적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바로 2000년대 들어 선택적으로 경제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FTA가 만발하게 된 배경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지난 35년 동안의 경제성장이 가져다 준 자신의 ‘힘’에 대해 자부심을 가짐과 동시에, 그 힘을 이용해서 미국이 주도해 왔던 세계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집권 후 시진핑이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의 꿈’을 앞세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북경 APEC 정상회의에서 그 꿈은 ‘아시아·태평양의 꿈’으로까지 확대됐다. 중국은 힘의 투사를 위해 부쩍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해 왔다.

G2, 전략적 파트너와 FTA 통한 시장 확보에 전력투구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힘이 ‘일방적인’ 것이 아닌 외부 세계에 대한 의존적 힘이며, 특히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안다. 신형대국관계는 G2가 서로의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말고,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자는 얘기다. 중국의 영향력을 확산하고, 특히 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국을 구심점으로 하는 경제질서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중국의 FTA 전략이다. 힘에 비례하여 중국의 구상은 확대돼 왔으며, 처음에는 아세안(ASEAN)·중국 FTA로부터 출발해서 ASEAN+3(한·중·일), RCEP(ASEAN+한·중·일+호주·뉴질랜드·인도)로 확장한 다음,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는 급기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에까지 이르렀다.

미국 역시 세계경제 구조 변화와 중국의 부상에 발 빠른 대응을 보였다. 미국은 자국 경제의 외연을 확장하고, 경제대국 중국을 ‘관리’하기 위해 경제와 군사, 그리고 정치 및 제도가 결합된 복합적인 세계전략을 구사했다. 21세기는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선언이나, 재균형(re-balancing), 그리고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TPP는 미국의 복합전략이 응집된 구상이다. 단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아닌 것이다.

어찌보면 중국이 앞세우는 FTAAP가 전통적인 자유무역과 투자를 지향하는 아날로그식 구상이라면, 미국의 TPP는 정치, 법·제도, 군사 전략으로 뒷받침하는 디지털식 미국의 세계경영 전략이다. 요약하면 TPP의 제도적 틀 속에서 미국 기업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미국 국내와 유사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무역투자 장벽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베이징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중 FTA 타결에 조급증을 가졌던 이유도, 또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시키려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국제질서 속에서의 ‘영향력 게임’과 무관하지 않다. 또 미국이 굳이 AIIB를 부정적으로 보고, 중국이 신개발은행(NDB)이나 위기대응기금(CRA) 출범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TPP 구상이 서서히 환경요인의 성숙을 기다리는 장기 전략이라면, 중국의 동시다발적 구상은 다분히 ‘중국의 힘’을 보여주려는 포장 전략에 가깝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미국과 중국의 세계전략 경쟁 와중에 한국의 입지는 어떤 것일까. 이 시점에서 자원이나 경제규모가 부족한 대신 풍부한 인적 자원과 경제성장 경험을 갖추고, 또 쉽지 않은 정치민주화까지 동시에 달성한 한국으로서는 결국 ‘낮은 단계의 실질적 타결’로 결론이 난 한·중 FTA를 어떻게 봐야할까.

미·중 갈등 속 국익 차원 경제전략 기교 펼쳐야

아직 시장경제로 전환 과정을 겪고 있는 중국 경제제도의 불투명성과 양파 껍질과도 같은 다층 구조를 감안할 때, 한·중 FTA의 타결은 종점이 아니라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선 형국이다. 단지 중국과 경제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구축됐고, 이로써 세계 주요경제와 모두 FTA를 맺게 된 한국 경제는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 확보를 통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은 단지 한국이 체결한 FTA협정 수에 비례하여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교한 중국시장 전략과 함께, 무엇보다도 FTA와 TPP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협력과 갈등에 함몰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의 파도를 가르는 절묘한 윈드서핑의 전략적 기교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한·중 FTA를 국내 정치 셈법으로 해석하지 말고, 장기적 국익 차원에서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오승렬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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