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빚 내고 뇌물 바쳐 해외 파견 나가도…” 2015년 4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 이승주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빚 내고 뇌물 바쳐 해외 파견 나가도…”
Q.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진 이유?
A. 북한 사회 안에서 일반 인민들이 겪는 인권침해, 그 상황이 심각한 건 맞아요. 그런데 북한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특히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침해 상황이 심각하다? 이게 저에겐 오히려 더 큰 충격적으로 다가왔거든요. 파견되었다면 파견된 국가, 즉 파견수용 국가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파견수용 국가의 법률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인데 어째서 이 분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했어요.
Q. 북한 해외노동자들 규모?
A. 전 세계 40여 개국에 약 4만6천명 가량 된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2013년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나온 자료에 따른 것이죠. 2년이 지난 상황이니 이미 5만~6만명을 넘어서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자세히 보면 러시아에 2만여 명, 중국 1만9천여 명, 쿠웨이트 5천여 명,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2천여 명 등 중동과 동남아, 아프리카 곳곳에 분포해 있어요. 특히 러시아의 경우에는 임업지에 파견된 노동자, 흔히 벌목공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유형이 대다수이고요. 중동 국가의 경우에는 건설쪽, 중국은 식당 같은 곳에서 서비스업 하는 사람도 많고요. 매우 다양한 직무에 종사하고 있죠.
Q.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선발 요건?
A. 파견 선발 요건은 꽤 까다로운 단계를 거치는데요. 본인을 포함해서 가족, 친척들이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는지, 아니면 정부에 반하는 정치적인 과오가 있는지, 이런 토대나 배경을 조사하는 기초 문건 검토단계를 거치죠. 이 과정에서 면접도 병행하고요. 보통 6개월에서 1년여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이게 실은 해외에 파견되는 노동자들이 현지 사업장에서 무단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죠.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고, 매우 강력한 조직의 통제 아래 놓여 있죠. 그런데도 북한 주민들은 상당수가 해외 파견을 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해외 파견 공고를 비공식적인 경로로 접한다고 해요. 면접 조사를 해보면, 주위에 알음알음 아는 사람을 통해 파견 소식을 접한다고 해요. 그 다음에 개인적인 연줄이나 뇌물을 주면서 파견 자격을 얻고 있죠.
Q. 뇌물을 주면서까지?
A. 그렇죠. 그렇게 해서라도 나가려는 거에요. 능력이 없고, 기회가 닿지 않아서 못 가는 것이지 안 가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받는 아주 낮은 수준의 임금도 북한 내부의 처참한 식량사정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북한에서 해외 파견에 대한 지원자가 많은 것은 자신의 직업적 발전이나 자아실현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만큼 북한 내부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현상이라 봐야죠.
Q.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는지?
A. 그것이 제일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 중 하나라고 봐요. 임금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파견되기 전에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일과 관련한 정보를 거의 받지 못해요. 근로 조건, 임금 수준, 이런 것 전혀 모른 채로 파견된다는 거에요. 저희가 조사한 20명의 증언자 중에서 파견 경험을 가진 18명 전부 근로계약서를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죠. 그럼 언제 아느냐, 첫 월급 받는 순간 자신의 임금 수준을 알게 된다는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일단 북한 당국 및 파견현지 기관 몫으로 70%를 떼어 가요. 남은 30% 중에서 숙박료나 식비 명목으로 또 공제하거든요. 그러면 총액에서 10% 정도 남아요. 그런데 이 남은 10%도 현장 관리자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야금야금 갈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큰 돈을 송금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그 열악한 환경을 견디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그렇게 뭉텅뭉텅 떼어 가면 사기 당했다 생각 안 하겠어요? 그런데 일단 몸은 해외에 있지, 돈은 부쳐야겠지, 그러니 부업을 뛰려고 하고요. 무단으로 현지 사업장을 이탈하는 겁니다. 또 이러다 걸리면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바치고요. 계속 악순환이죠.
Q. 생활환경은?
A. 매우 열악한 것으로 보여요. 러시아에 벌목하러 파견된 한 증언자는 현지에 도착한 뒤에 옷이라고 받은 것은 작업복 단 한 벌이라고 하고요. 그렇게 추운 곳에서 일하는데, 제대로 된 작업 도구도 별로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부상자가 속출해도 별다른 개선 조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인근에 기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어요. 그런데 큰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현지 병원을 이용하도록 하고요. 거기서 나오는 비용은 파견 노동자가 스스로 부담하도록 한다고 해요. 실제로 부상을 입은 노동자는 아예 북한으로 송환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고요. 방금 말씀드렸지만 이 사람들, 해외 파견 한 번 나가보겠다고 빚 내서 뇌물 바친 경우 많거든요. 그런데 작업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는데도 별다른 조치 없이 강제로 북한에 송환을 당하니 정말 가혹한 상황이죠. 현지에서도 반드시 공동생활을 해야 하고요. 증언을 들어보면 작업 현장 인근에 나무집이나 컨테이너 같은 임시 거처를 마련해서 단체로 숙식을 한다고 해요. 먹는 것은 파견 국가나 회사마다 조금씩 사정은 달랐어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수준이 매우 떨어진데다 심지어 이 부분에서도 관리자가 배급 음식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Q.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감시당하는 정도?
A. 기본적으로 외부와 접촉을 철저히 차단 당하고 있죠. 사업 현장 외부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해요. 관리자가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2~3인이 조를 이뤄 서로 감시하는 체제로 움직인다고 하고요. TV나 라디오 같은 방송매체, 접할 수 없고요. 현지 사업장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없도록 통제한다고 해요. 또 심각한 처우 중 하나가 바로 현지에서 구금시설이 운영된다는 건데요.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기 바로 전 단계에서 구금시키기 위한 것이죠. 문제는 구금을 시킬지 아닐지는 보위원과 같은 현장관리자가 임의적으로 판단해서 처분 해버린다는 거죠.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상황의 축소판이 아닐까 생각되죠.
Q. 개선을 위한 방향?
A.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어요. 규모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거든요. 북한 노동자들이 해외에 파견된 현장에서 여러 인권침해가 빚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됩니다. 해외 노동현장은 해외 현지 국가와 북한 당국 또는 소속 기관이 맺는 계약이에요. 계약사항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점검이 뒷받침되어야 하고요. 무엇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러한 계약 내용을 인지한 채 북한 노동자가 파견되는 것이 중요해요. 이러한 과정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북한 내부는 접근자체가 불가능하죠. 하지만 해외 파견 현장은 국제사회의 접근이 가능하잖아요. 지금부터라도 보다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최소한 다른 나라로부터 파견된 노동자들과 동등한 수준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잖아요.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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