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1월 1일

통일을 향한 발걸음 | 민과 관이 함께 만들어온 통일 외길 30년 2013년 11월호

IPA·월간 <통일한국> 30주년 기념

통일을 향한 발걸음 | 민과 관이 함께 만들어온 통일 외길 30년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1983~2013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1983~2013

평화문제연구소는 1983년 3월 26일 설립되어 북한 및 한반도 문제를 전문적인 연구영역으로 삼고 있다. 1980년대는 동서진영의 대결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었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치열한 냉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더욱이 80년 초 5공화국 출범 직후의 분위기에서 북한 연구나 통일운동은 매우 큰 제약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세계적 해빙무드와 남북 간의 대결구도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찾는 일은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였다.

1980년대 민간 통일운동 한 축을 형성

통일운동은 정부의 일방적 추진보다는 민·관이 역할을 분담,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해 나아가야 한다는 판단 아래, 당시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에 함께 몸담았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통일원 출신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시작되었지만, 이후 교육계·경제계·언론계 등 각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합류하여 민간 통일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연구소로 발전하였다.

연구소는 급변하는 주변정세와 이에 따른 남북관계 변화로 혼란을 겪고 있는 분위기에서 한반도 정세와 북한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학자, 정책 담당자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 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그 결과물을 교육 및 홍보사업으로 확장하였다.

월간 <통일한국>을 창간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인쇄물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 언론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있었던 터라, 새로운 매체를 허가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남북관계, 북한의 현실, 주변정세에 대한 정확한 동향을 알림으로써 올바른 통일관과 통일의지를 형성해 나가고, 통일시대를 이끌어 나갈 다음세대에게 바람직한 통일교육을 실행하고자 <통일한국>을 창간했다. 이렇게 탄생한 <통일한국>은 꾸준히 발간되어 현재 창간 30주년을 맞이했다.

차세대를 대상으로 한 통일교육도 같은 맥락이었다. ‘반공교육’이 주류였던 당시 상황에서 ‘통일교육’이라는 용어는 아예 사용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통일안보’라는 용어로 대체해 ‘통일안보 독서 감상문 및 교사 연구논문’을 공모하는 형태로 통일교육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통일교육사업은 현재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여 ‘SNS를 활용한 통일교육’으로 발전하였으며, 블로그 방문자가 일 평균 2천~3천명, 뜨거운 이슈가 생길 때는 하루 5만~6만명에 달하기도 한다.

1990년대 해외사업 확대, 한민족 통일네트워크 구축

1990년대 들어서면서 평화문제연구소는 사업의 범위를 해외로 넓히기 시작했다. 통일문제는 남북한 당사자뿐 아니라 국제적 성격을 가진 문제라는 점에서 국제사회, 특히 주변 4강에 거주하는 동포사회의 역할을 중시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한 ‘한민족 통일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이민 4세대까지 내려오게 된 역사적 배경에서 이들에 대한 올바른 통일홍보작업은 동포사회는 물론, 거주국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제적 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월간 <통일한국> 해외배포는 무엇보다 서방세계에 대한 동경과 정보에 목말라 있던 중국과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거주동포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들은 가슴 저린 가족사로부터 삶의 변화에 대한 희망과 고국의 통일과정에서 해외동포인 자신들의 역할에 대한 의지, 당 연구소에 대한 감사의 목소리 등을 수많은 편지에 가득 담아 끊임없이 전해왔다.

한편, 한·중학술회의와 미주세미나도 시작되었다. 한·중학술회의는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과 한족 그리고 우리 국내 전문가들과 관련 정부인사들이 모여 북한과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1990년부터 시작하여 한·중 간, 때로는 북한도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미주세미나는 국내전문가와 북미주 지역의 재외동포들이 폭넓게 참가하는 세미나로 통일외교의 기반을 확장하면서 한·미관계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분단독일은 한반도보다 불리한 여건에 있어 모두들 한국이 먼저 통일을 이룰 것으로 생각했지만, 독일은 냉전체제 해체와 더불어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다음해 통일을 이루었다. 이 무렵 평화문제연구소는 독일 한스자이델재단과 공동사업 협정을 맺고 협력사업을 전개하게 되었다. 1989년을 시작으로 28차례를 개최한 한·독워크숍과 한·독심포지엄은 지금까지 100여 명의 독일인사들이 한국을 방문, 한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교환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고, 통일독일 현장연수는 독일현지에서 분단과 통일의 역사적·상징적 현장과 관련 기관들을 견학하면서 독일이 겪은 분단과 통일 그리고 통일 후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분야별 통일역량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하고 있다.

한편 1994년, 통일분야 최초의 학술지로 통일부에서 발행해 오던 <통일문제연구>지가 평화문제연구소로 이관되었다. 연구소는 통일·북한문제 연구가 그 특성상 이론뿐 아니라 정책적 함의 또한 커야한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사회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통일과 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발표하는 장이 되도록 하였다.

이념이나 정치, 군사분야 외에 남북한 복지문제, 북한의 식생활정책, 북한이탈주민여성의 취업문제 등 실사구시적 문제들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통일과정 및 통일 후를 대비, 각 분야 정책입안에 참고할 수 있는 연구지가 되도록 했다. <통일문제연구>지는 통일·북한관련 학술지 가운데 최초로 2006년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통일문제연구>지를 통해 발표된 논문편수는 총 500여 편에 이른다.

2000년대 남북 공동출판과 DB구축 … 대북지원 확대

2000년대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펼쳐지던 시대였다. 일찍이 중국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연구소는 이 시기 최대의 사업을 벌이게 된다. <조선향토대백과> 출판은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20주년에 즈음, 남북한 정부의 공식승인을 받아 5년에 걸쳐 이루어 낸 분단사상 처음 있는 명실상부한 남북 공동편찬사업이다. 이 대백과 편찬사업은 우리나라 출판사상 최초로 남북의 지식인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 남북 공동작업으로 자료를 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배가됐다.

<조선향토대백과>는 인터넷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국가적 주요자료를 DB화해 보존·관리·이용하는 시대적 추세에 따라 2006년 당시 정보통신부의 ‘국가지식정보관리사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6개년 사업으로 진행된 ‘북한자연·인문지리 DB구축사업’은 닷넷(.NET)을 기반으로 북한의 지역정보를 행정구역별, 주제별로 각각 구축하여 검색의 편리성을 도모하고, 지역별·주제별로 정보를 세부 카테고리로 분류해 구축함으로써 정보의 분포도와 함께 통계수치까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이후 인터넷(http://www. cybernk.net)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일반국민들도 북한지역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게 되었다.

남북협력사업을 함께 추진한 북한측 지식인들의 궁핍한 생활을 목도하며 시작된 대북지원사업은 규모가 더욱 커졌다. 사업파트너에 대한 순수한 인간애로 시작된 지원사업이 확대된 데는 국제봉사단체와의 연계 덕분이었다. 이 단체는 미국의 인터내셔널에이드(International Aid)라는 의약계 기독교인들의 봉사단체로 한국에 지부(IAK)가 만들어지면서 우리 연구소를 통해 대북지원을 펼치게 된 것이다. 통일이란 문제가 북한의 동포들을 안아야 하는 문제인 만큼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동포를 돕는 일은 피할 수 없는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진행된 인도지원은 2013년 현재 10차례에 걸쳐 30억원 상당이 된다.

2010년대 국내외 협력 네트워크와 통일교육 기능 강화

2010년대에 들어 평화문제연구소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국내외 기관들과 협력하여 국제학술회의, 워크숍, 포럼, 관련자료 출판사업을 전개하였다. 국내의 정부기관들이나 국책연구기관과는 각기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연계, 협력을 통해 상호 유익을 취하는 관계로의 발전을 도모했다. 해외 기관들 중에는 중국 길림성사회과학원과 연변대학, 조선민족문화연구소,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SNS를 통한 청소년·대학생 통일미래비전 그리기’는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미래세대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과 현실감을 갖도록 하는 일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더욱이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일은 미래지향적 연구소로서 중요한 부분이다. 연구소 고유의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 보완할 때 연구결과가 확대·재생산되고, 연구소 본연의 목적을 이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화문제연구소는 활동의 지평을 넓히면서도 질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구소의 부단한 노력이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로 학술지 <통일문제연구>가 2005년에는 ‘우수학술지’로, 2006년에는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어 있다. 또한 월간 <통일한국>은 2010년, 2012년 연속으로 문화부의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되었다. 현안 문제들을 적실성 있게 분석하고 통일의 비전과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다룸으로써 차세대 통일교육의 방향을 잡고 교육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교육 교사들의 참고자료로 지원되는 한편,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는 우수한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어 국내외 기관들에서 한반도 통일관련 동향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로 기능하고 있다.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던 시대에 민족의 문제와 국가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실천적 활동을 선도했던 30년의 역사는 포기할 수 없는 사명감과 이로 인한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하였다. 그 이면에는 민간차원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 물심양면으로 협조한 정부의 많은 공무원들과 이 분야의 연구자들, 월간 <통일한국>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온 기업들이 있었다.

수많은 연구소나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한국의 풍토 속에서 민간 연구소가 30년의 역사를 만들어왔고 지속적으로 확대발전해 왔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평화문제연구소의 향후 30년도 주목되고 기대된다. 이는 배턴을 이어받고 새로운 주자가 될 다음세대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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