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1월 1일 0

DMZ, 평화가 숨 쉰다 | 남북을 넘나드는 가을의 평화전령사 2013년 11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비둘기조롱이

남북을 넘나드는 가을의 평화전령사

올해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어서인지 가을을 무척 기다렸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가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을을 가슴 저리게 기다리는 이유는 항상 이맘때면 찾아오는 귀한 손님 때문이다. 조류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모를 멸종위기종 2급인 비둘기조롱이의 방문은 한반도의 여름과 가을의 생태적 변화를 목도할 수 있어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기다린다.

필자는 10여 년을 DMZ일원의 생태가 왜 중요하고, 왜 생물종이 다양한지를 규명하기 위해 매주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를 하면서 다양한 생물을 만났고, 그들을 기록하면서도 단순히 군사지역으로 사람의 출입이 적어서 생태계가 안정되고 보호되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출입이 적어서 생태계가 보존되었다는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성을 발견하였다. DMZ의 생태는 온대성 생태계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다양함과 깊이 모를 생물들의 서식공간이 존재하며, 남방계와 북방계 생물들이 혼재하여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DMZ 생태계, 다양한 상상 가능케 해

비둘기조롱이는 우리나라를 1개월 정도 거쳐 가는 희귀한 나그네새이다. 비둘기조롱이의 암컷은 새호리기와 비슷하여 구별이 쉽지 않지만 한국 주남저수지와 공릉천하구에서는 9월말~10월중순, 서부DMZ 남방한계선 근처에서는 10월중순~11월초까지 머물다 이동한다.

비둘기조롱이는 잠자리를 무척 좋아한다. 황금들녘의 평원에서 잠자리를 사냥하는 모습은 정말 일품이다. 조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비둘기조롱이는 비슷한 이름의 멧비둘기와 섞여 있다가 잠자리가 나타나면 공중에서 낚아채서 바로 잠자리 머리를 먼저 먹어치운 다음 한쪽발로 움켜쥔 채 전기줄에 앉아서 천천히 식사를 즐긴다. 건강한 습지의 물속에는 생태계가 정교할 정도로 섬세하게 유지되는데, 잘 보존된 습지에는 다양한 잠자리가 관찰되고, 그 개체수도 많다. 비둘기조롱이가 선택한 지역은 잠자리 개체수가 아주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보이는 생태계와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절묘한 조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서부DMZ는 백두대간의 한남정맥, 한북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의 3개 정맥이 만나고, 한강, 임진강, 서해의 큰물 3개가 만나는 최고의 생태적 기반을 갖고 있는,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생태적인 혜택이 집중된 곳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이유로 한강과 임진강 하구인근은 대규모 습지가 잘 발달하고 배후 습지인 넓은 농경지가 있다. 서부DMZ일원에 많은 농경지에서는 ‘둠벙’이라는 작은 연못들이 있다. 임진강 하구는 기수역으로 임진강물을 직접 끌어다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염분이 있다. 그래서 곳곳에 농사를 위한 둠벙을 만들었고, 농사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존재했던 둠벙은 인공적인 환경을 넘어선 천연적인 소습지로 생태계의 중요한 한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 둠벙은 DMZ생물의 다양성을 읽는 비밀 코드이다.

2013년 가을도 비둘기조롱이는 어김없이 서부DMZ를 찾았다. 9월말쯤부터 한강하구 공릉천에 머물던 비둘기조롱이들이 10월중순부터 도라산 인근의 농경지에서 발견되었다. 해마다 변함없이 남방한계선 이남지역에 대규모 무리를 지었다가, 서리가 내리고 신나무 잎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면 새들 중에 최고의 아이돌인 두루미에게 교차하듯 자리를 내어주고 북쪽으로 더 이동을 한다. 재두루미가 남하하는 시기는 비둘기조롱이가 도라산 주변에 대규모로 모여 있는 시기와 맞닥뜨린다.

비둘기조롱이 중 일부 무리는 봄철에도 한반도의 남북을 이동하면서 살고 있다. 북한의 만경강과 동진강 등지에서도 발견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비둘기조롱이는 남북을 넘나드는 가을의 평화전령사라고 할 수 있다.

비둘기조롱이, 절묘한 조화의 생태지역 선택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잠자리의 발생수보다 비둘기조롱이의 도래수가 더 많다. 예년 공릉천 하구에서 20여 마리가 보이더니 올해는 최고 50여 마리까지 보이고, 남방한계선 인근의 도라산 주변 농경지에도 같은 수의 무리가 관찰되었다.

생태적으로 건강해진 탓일까? 우리국민들이 평화와 생태를 위해 개인의 불편을 감수한 덕분에 나타난 현상일까? 서부DMZ지역이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로 거듭나서일까?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기후변화의 한 모습이 아닐까 긴장하면서 내년을 또 기다린다.

비둘기조롱이는 요란하지도 않게, 화려하지도 않게, 모두에게 관심을 받지 않아도 늘 변함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생태계의 질서 속에서 그 자리를 겸손히 지키고 있다. 이미 떠나버린 비둘기조롱이가 벌써 그리워지는 늦가을. 남하하는 또 다른 귀한 손님인 재두루미를 맞이하며 허전한 가슴을 달래본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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