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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 생(生)과 사(死)가 교차된 48m의 트라우마 2013년 11월호

영화리뷰 | <48미터>

생(生)과 사(死)가 교차된 48m의 트라우마

한 인간의 생사가 48m의 거리에서 결정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48m라는 물리적 거리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상 단거리 경기가 100m인 점을 감안하면 ‘짧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과 사를 결정한다는 단서를 붙인다면 48m는 1,000m 이상의 거리로 느껴질 것이다.

올해 7월에 개봉한 영화 <48미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탈북과정의 극단적인 삶과 죽음의 결정 거리를 ‘48m’로 표현했다. 48m의 장소는 북·중 국경지역 중 탈북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혜산-장백 국경지역이다. 압록강이 흐르고 있는 이 지역은 수심이 비교적 얕고 잔잔하기 때문에 탈북의 주요 루트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일전에 이 지역을 답사해 본 적이 있는데 북한 혜산시의 시민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가깝다. 강변에는 아낙들이 삼삼오오 빨래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당시 그 곳 48m를 바라보았을 때는 영화에서 전달되는 것 같은 비장함보다는 신기하다는 느낌이 우선했었다. 눈앞에서 ‘진짜’ 북한 사람들을 본다는 묘한 설레임이 앞섰던 탓이다.

목숨 걸고 48m를 건넌 사람들 이야기

동일한 장소도 여러 사람에 의해 구경되고 재구성되면서 다양한 여운을 준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48미터>는 탈북자들의 자서전적 영화다. 철저하게 48m에서 생과 사를 경험했던 그들의 생생한 ‘트라우마’다. 이미 우리 사회에 온지 몇 년이 되어 잊혀질 만도 하건만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살 떨리는 경험을 뼛속깊이 간직하고 있다.

영화 <48미터>는 지난 7월 2일 왕십리 CGV 언론시사회를 시작으로 전국 CGV에 동시 개봉됐다. 하지만 관객동원은 신통치 못했던 것 같다. 영화 <크로싱>에 비해 사회적 분위기도 잔잔한 편이었다. 영화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을 때는 이미 문을 내렸거나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시간대로 편성되었다. 유사한 주제인 영화 <크로싱>이 그나마 대중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차인표라고 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제작비와도 연관된 것이기에 소위 ‘개념’있는 연예인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해결되기 힘든 문제다.

그나마 영화 <48미터>는 지난해 9월 인권운동가 수전 솔티의 소개로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하원에서 시사회를 열기도 했으며, 스위스 제네바 UN인권위원회에서 특별시사회를 통해 상영되기도 했다. 북한의 인권문제와 연결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인권행사에는 많이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탈북이나 인권소재의 영화도 국제행사에 초청되는 수준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흥행에도 성공하고 감동도 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서 만들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재미’와 ‘감동’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제작자가 이 두 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와 플롯을 조밀하게 짜야한다. 거기서 흡입력이 생기고 보는 이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의 영화는 ‘팩트’와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기 때문에 ‘재미’와 ‘감동’을 놓친다. 영화 <48미터>는 약 300여 명의 탈북자 인터뷰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고증을 구현하는 데 많은 영상을 할애했다.

미국 하원과 UN인권이사회에서 상영되기도

잘 만들어진 영화는 ‘사실’과 ‘감동’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 반복하고 팩트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잘 재구성한다. 그래야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에 몰입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북과정에서의 ‘트라우마’를 공감하게 될 것이다. 팩트의 전달에만 주력하다보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물론 팩트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과정에 희석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48미터〉의 오프닝 신이 전달하고 있는 긴장감과 비애도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찌 보면 이 영화의 함축적 긴장감은 오프닝 신에서 아이들을 안고 48m를 건너는 모습에 다 담겨있다. 영화 <48미터>에는 북한현지의 모습도 비교적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이제 탈북 및 인권영화에서 북한 현지 모습을 구현한 리얼리티의 틀은 어느 정도 잡혔다. 남은 것은 대중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재미’와 ‘감동’을 복합적으로 엮어내는 일이다. 여기에 제작비 지원과 유명 연예인의 출연이 따른다면 금상첨화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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