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4월 1일

만나고 싶었어요| “기립박수 보니 예술단 하길 참 잘했네요” 김영남 평양예술단 대표 2012년 4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기립박수 보니 예술단 하길 참 잘했네요” 김영남 평양예술단 대표

지난 3월 22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평양예술단 사무실. 어깨에 메고 있던 아코디언을 살짝 풀어내리며 중년의 예술가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 북한에서 청년예술단장으로 활동하다 입국했고 제대로 된 북한 예술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지난 2005년 직접 평양예술단을 세웠다고 한다. 창단한 지 7년째 되는 현재 800회 공연기록을 세우며 탈북인 문화예술 사업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평양예술단 김영남 대표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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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예술단을 운영할 생각을 하셨나요?

탈북해서 입국하자마자 예술단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건 아니었어요. 일단 잘 정착해서 생활해 나가는 게 중요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 ‘고려예술단’이라고 조그마한 단체가 하나 있었어요. 탈북자들이 모여 공연하고 그런 곳이라고는 하는데 사업자도 없고, 쉽게 말해서 ‘유령’ 단체였던 셈이죠.

2003년도 초 쯤이었나? 그 단체 소속이라면서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 온 거에요. 제가 북한에서 작곡도 좀 했고, 예술단을 운영한 경험도 있다는 것을 어디서 들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저보고 같이 예술단 활동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당시가 노무현 정부 초반이었고 남북관계 분위기가 썩 괜찮으니 여기저기 통일운동 관련 행사들이 많았거든요. 북한 출신들로 예술단을 꾸려놓고 팜플렛 좀 뿌리면 장사 좀 되겠다 생각 한 거죠. 그런데 그때는 입국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물론 북쪽에 있을 때 예술단을 운영하면서 직접적으로 활동은 했었지만, 당장에 심적으로 남한에서 바로 뭘 한다는 게 도통 내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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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예술단의 공연프로그램 중 하나인 손북춤

거절하셨네요?

네. 그런데 그때부터 탈북자들이 예술단이랍시고 조직해서 활동하는 거 보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예술단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예술적으로 자질이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활동해야 그게 예술단 아니겠어요? 탈북자 예술단이라고 하면 그 구성원인 탈북자가 예술적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엔 탈북자들 기껏해야 5천명 정도 입국해 있던 시기였단 말이에요. 그 중에서 정말 예술적으로 자질 있고 뛰어나서, 제대로 북한의 문화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인력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게 많지 않단 말이죠. 그 수준이라는 건 실제로 공연 한 번 보면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마추어 같이 어디서 노래 좀 부른다 했다는 수준의 탈북자들 데려다놓고 북한 예술단이랍시고 만들어서 행사를 뛰었던 거죠. 그렇게 머리 굴려서 조직하려 했던 사람들이 거의 남한 사람들이었고요.

비전문가 탈북자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물론 예술단이라는 게 상업적인 행사를 하지 않을 수 없죠. 비전문가요? 고용할 수도 있어요. 대신 충분히 교육을 해서 수준급의 공연을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그게 관객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오래 갈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이잖아요.

근데 문제는 그 상업적인 운영 틀이 아주 단발적인 이익을 쫓는 구조였다는 거예요. 북한이라는 희소성을 가지고 소위 예술을 팔아서 장사해보려는 일부 남한 기획자들에겐, 애초부터 그런 제대로 된 북한 문화예술을 남한에 소개하는 건 안중에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탈북자들 중에서 어느 정도 노래하고, 춤만 조금 출 줄 안다 하면 바로 데려다가 유령 예술단처럼 만들어서 돌아다닌 거죠.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말이죠. 처음엔 그거 뭐죠? 건강식품 팔고 그럴 때 시선 끌려고 엿장수 공연하듯이 하는 거 있잖아요. 그렇게 다녔던 거예요.

공연은 뭐 매일같이 있답니까? 띄엄띄엄 하는 공연이라 들어오는 돈도 한계가 있고, 그러다 배고프면 또 뿔뿔이 흩어지는 거죠. 흩어지면 그 탈북자 단원들, 누가 책임지는 거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겼다 없어진 예술단이 한 두 개가 아니었죠. 심각했어요.

마음이 좋지 않으셨겠네요.

그럼요. 북한에서도 정말 제대로 된 예술단들 공연하는 거 보면 수준이 정말 굉장하거든요. 그런데 약장사 행사용으로 모인 아마추어들 공연이 판치고 있고, 또 그런 것을 보고 여기저기서 ‘춤이 어떻네, 노래가 어떻네’ 하면서 비꼬는 소리들이 들리니 계속 거슬리더라고요. 아예 이쪽 분야에 발을 담그지 않았더라면 모를까, 북한에서 내가 한 예술은 이게 아닌데, 자꾸만 싸잡아서 ‘도매급’ 취급받게 되는 것 같아 자존심 많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점점 마음으로 ‘언젠가는 직접 예술단을 데리고 어떤 게 북한 예술의 진수인지 한 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게 2005년 평화통일예술단이 발족된 겁니다. 지금 평양예술단의 전신이죠.

잘 되었나요?

우선 첫 번째 문제는 인력을 채용해서 키우는 것이었죠. 가능성이 보이는 몇몇을 데리고 교육을 시키며 시작했어요. 알음알음 아는 사람 통해 수소문 해보기도 하고요, 탈북자동지회 같은 네트워크에 채용공고를 내기도 했죠. 2005년 10월부터 그렇게 뽑아 데려다 놓고 정말 노래부터 시작해서 무용까지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쏟아 부어서 연습을 시켰죠.

공연 프로그램 구성도 제가 직접 다 짰고요. 2006년 봄부터는 공연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죠. 공연하러 다니려면 차도 있어야 되니까 조그만 승합차도 중고로 사야 했고요. 단원들 무대 위에서 입을 의상도 필요하고요. 또 연습할 공간도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여기저기 돈이 많이 들어가야 했거든요.

역시 자금 문제가 제일 힘들었겠네요.

그렇죠. 북한 예술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이 일을 완전히 직업으로 삼아서 공연할 수 있는 인력들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문적으로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죠. 그런데 초기엔 홍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행사가 잡히지 않잖아요.

정착금에다가 그때까지 모았던 종잣돈 합쳐서 총 5천만원 전부 털어 넣고 난 뒤라 행사가 없으면 단원들에게 제대로 된 월급을 줄 수 없었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게 아니라 공연날 하루 벌어 며칠을 먹어야 했던 시절이었는데, 처음에는 공연비도 정말 턱없이 짰거든요.

10명 데리고 몇 시간 공연해서 45만원 받은 적도 있었어요. 공연 알선해준 기획업자에게 공연비를 받지 못하고 사기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요. 특히나 한겨울 한여름 비수기 때는 그마저도 공연이 없어서 다들 집에서 쉴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결국 각자 자기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준 그대로 보여주면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거죠. 발전이 없어요. 아마추어 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제가 비판해왔던 다른 예술단들 문제를 똑같이 따라가게 된단 말입니다. 정말 막막하고 답답했죠. 그런데 단원들 월급 문제로 한참 고민하던 그 때, 노동부의 사회적 기업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북한이탈주민을 일정 부분 채용하면 임금을 지원 해준다는 제도가 있다는 거예요.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가치생산에 대한 보상으로 말이죠. 제게는 정말 큰 기회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탈북문화예술인총연합회라는 사단법인체를 만들어서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어요. 단원들에게 정식으로 월급을 줄 수 있게 되었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손익분기점 넘겼습니다. 그것도 창단한 지 3년 만에요. 기적이죠. 2012년인 지금 총 직원은 공연직 직원 20명 사무직 5명으로 총 25명이고요. 모두 정규직입니다. 입국하는 탈북자들 정부에서 합동신문절차 거치잖아요. 그럼 북한에서 예술 분야 경력이 있다 싶으면 정부 직원이 평양예술단을 알려주면서 나중에 취업할 때 찾아가보라고 한대요.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 듣고 오디션 보러 왔다는 친구들도 꽤 돼요. 제가 생각해도 우리 평양예술단 참 많이 성장했습니다. 공연만 해도 지금까지 800회 넘게 했으니까요.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국악관현악단과 같이 공연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그 넓은 관객석이 꽉 차 있는 것 보면서 ‘아, 이제 우리 예술단이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생각했죠.

또 최근에는 강원도 속초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었는데요. 실향민들이 참 많더라고요. 공연 보시면서 고향 생각이 나는지 울컥하는 어르신들 보면 마음이 덩달아 아리고, 마지막에 수고했다고 기립박수 쳐 주실 땐 예술단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그간 고생이 한 번에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벅찼어요.

이동훈/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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