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3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이웃을 모르고 살아가는 생활 2011년 3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21

이웃을 모르고 살아가는 생활

 

남쪽에 와 살면서 처음 들은 말이 있다. “사람냄새 나는 생활”이라는 말인데 북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사람들 사이에 살뜰한 정이 오가는 생활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남쪽에 와서 살아보니 이웃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게 살게 된다. 4년째나 살아오는 아파트에서 아직 옆집 식구들의 얼굴도 모른다. 그 집 할머니 얼굴밖에 모른다. 그것도 대화가 오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도 서로 눈 마주치기 어색하여 각자 돌아서 거울만 본다.

같은 아파트에 탈북자도 여럿 되지만 두 집밖에 모른다. 물론 사람의 성격에 따라 이웃과 잘 어울려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교적인 성격이 아닐지라도 무려 4년씩이나 사는 동네에서 문을 열고 두 걸음만 걸어도 들어갈 수 있는 같은 옆집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성격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 냄새 나는 생활?

살펴보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탈북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고 일반주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어디 가서 누구네 집을 찾으려면 같은 동네 사람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만약 핸드폰만 없으면 말 그대로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가 될 일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 자기 집 식구끼리도 교제가 적다. 특히 부모 자녀 사이에도 밥 먹는 시간을 내놓고는 남처럼 산다. 어느 집에나 가보면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자녀들이 인사말 한마디만 남기고는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일단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컴퓨터에 마주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식구들보다 컴퓨터가 더 가까운 사이다. 직장에서 돌아 온 가장들도 직장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이 많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도전의 연속 등이 첨단기술 발전과 경제성장을 가져 오긴 했지만 그만큼 사람의 정은 사라져 가고 있다. 기쁘나 슬프나 온 동네가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 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쩌다 한번 시골마을에 가보아야 그 시절의 생활이 흔적처럼 잔존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 역시 이웃 간의 정이 사라져 가는 현상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한에서 이런 현상은 남한과는 정반대 이유에서 생겨난다. 독재정치, 정보정치가 자리 잡은 북한에서는 이웃이 제일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서로가 감시하도록 되어 있는 세상에서 이웃과의 관계는 정상적일 수 없다.

아이들, 집집 연계 역할 톡톡히 해

큰 도시일수록 이웃과 잘 상대하지 않는다. 지방 도시에서는 그래도 같은 층이나 아래, 윗집 정도는 알고 살지만 평양 같은 곳에는 벌써 두, 세 집 건너 사이도 잘 모르고 지낸다. 인민반이 조직되어 있지만 않다면 한 동네 사람들의 얼굴도 익힐 기회가 없다.

새 동네에 이사 가면 인민반 회의나 노력동원에 참가하는 기회에 동네 사람들의 얼굴을 익힐 수 있다. 그런데 인민반 생활은 주로 주부들의 몫이다. 남자들은 누구나 직장이 다르기 때문에 동네 사람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집집을 연계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이들은 새 동네에 이사해 가도 금방 친해지기 때문이다. 학교도 같은 학교에 다니므로 부모들은 학부모 회의에 가는 기회에 서로 익힐 수 있다. 아이들로부터 누구 아빠는 무슨 일을 하고 어느 집은 자녀가 몇인지 등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 중에 어느 집에 보위원이나 보안원(경찰)이 사는 지, 당 간부가 사는 지 등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알면 자연히 그런 집은 경계대상이다.

서로 가까이 지내는 이웃끼리도 늘 경계의 끈을 놓지 않으며 자기 집 일을 자세하게 알게 될까봐 꺼려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법과 편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서 검열이라도 붙으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결국 겉보기엔 북한이 남한보다 이웃 간 교제가 더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제도적 구조가 그렇게 되어서이지, 결코 진실한 정으로부터 자연스레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들 사이 관계와 같다.

남한은 치열한 경쟁으로 바쁜 일상 때문에, 북한은 독재정치 때문에 ‘이웃사촌’이 사라진다. 과연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세상 섭리일까. 남북이 다 함께 조상전래의 미풍양속이 꽃피는 동네, ‘사람 사는 동네’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방도가 무엇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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