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 아랍 시민혁명 끝은 북한 2011년 3월호
집중분석
아랍 시민혁명 끝은 북한
니지와 이집트 혁명이 아랍의 정치변화에 국한될 것이라는 예측은 잘못된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전 세계 권위주의체제 하에 사는 억압받는 민중의 심리구조(mentality)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로 확산할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것만은 틀림없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발표된 2월 12일 존스홉킨스 대학 중동학과 푸아드 아자미 교수는 이번 민주화혁명의 성격과 파장을 이렇게 규정했다.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아랍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치역학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랍판 프랑스 시민혁명
실제로 민주화 시민혁명의 물결은 황량한 사막을 넘어 많은 아랍 국가로 밀려가고 있다. 요르단, 알제리, 바레인, 팔레스타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타 아랍국가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간헐적이지만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예멘과 중동국가 이란에서도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중동을 넘어 이탈리아에서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외면상으로 아랍의 현 시민혁명 현상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간 지속된 독재 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 더 가깝다. ‘아랍판 프랑스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단순한 독재타도 혁명이 아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단순한 서민혁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혁명은 신권왕정의 절대주의체제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한 ‘사상혁명’이었다. 한 나라 내의 계급혁명이 아니라 사상혁명이었기에 유럽을 거쳐 전 인류의 가치관과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랍의 시민혁명도 ‘사상혁명’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는, 특히 아랍권의 중요한 전통 그리고 아랍인의 심리구조에 자리 잡았다.
따라서 유목민 출신인 아랍인은 물리력에 약한 속성을 보인다.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무장을 해야 했던 유목민들은 자신 보다 강력한 무력을 가진 집단에 약할 수밖에 없다.
지배 가문의 수장이 아버지로 여겨지는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부족을 수천 년 동안 지배해 왔다. 근대에 와서도 무력을 기반으로 한 쿠데타 군부세력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국민들은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과 심리구조를 떨쳐버리고 아랍인들의 마음속에 ‘자신감’을 넣어준 것이 이번 시민혁명이다.
21세기 혁명의 틀 제시
인식체계 혹은 심리구조가 바뀌면서 발생한 시민봉기이기에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아랍권 최대 정치, 문화 강국 이집트가 무너진 날, 22개 아랍국가 대다수 수도 중심가에 모여든 인파는 자국의 일인 양 환호했다. 압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심리구조의 변화가 이처럼 아랍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는 데는 위성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뉴미디어 역할이 지대했다. “리더가 없는 혁명이었다. 시민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역할이 없다. 나는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혁명의 불길이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옮아 붙을 지는 페이스북에 물어보면 알 것이다.” 구글의 직원이자 이집트 혁명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와일 구님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밝혔다.
큰 틀로 보면 20세기와 21세기의 통신기술 발달이 아랍의 시민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위성방송, 인터넷, SNS 등 뉴미디어가 확산되면서 가부장적 권력을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결집할 수 있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랍 국가는 50여 년 동안 독재와 부패, 미진한 경제발전과 부의 불공평한 분배, 높은 실업률 하에서 살아왔다. TV와 신문은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대부분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해 왔다.
불만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결집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었다. 왕정국가를 제외하고 공화정 체제 하에서 뉴미디어가 가장 발달한 튀니지와 이집트가 다른 국가보다 빠른 변화를 달성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결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시민 간 소통수단의 발달은 아랍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아직도 권위주의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의 시민들의 주권의식을 고무시킬 것이다. 그 파장은 21세기 유일한 3대 세습 공화정체제인 북한에까지 이를 것이다. 물론 인터넷, 이동통신 등의 확산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혁명의 전파 속도와 민주화 작업의 향방을 판단하는 근거로 이집트가 자주 언급된다. 59년 간의 군부 통치,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집권과 부자세습 시도는 북한의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부자세습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런 시도를 감행할 수 있었던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정도만 다를 뿐이다. 카이로 소재 수니파 이슬람학의 본산 알-아즈하르 대학 법학과 후삼 이사 교수는 “향후 아랍권과 전 세계의 민주화 여정에 있어 현재 이집트의 상황이 리트머스(Litmus Test)”라고 언급했다.
이집트가 아랍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권위주의의 변화에 대한 지표가 되는 이유는, 군부독재의 틀이 붕괴하는 배경과 과정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군부는 프레토리안 레짐(praetorian regime), 즉 집정관 통치의 형태라고 분류할 수 있다.
단순한 권력과 이권을 차지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통치가 가장 이상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이데올로기다. 북한을 포함한 21세기 독재형태가 장기집권 가능한 것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통해 지배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국민을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체제도 이 틀에서 설명될 수 있다.

지난 2월 11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반정부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사퇴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오마르 술래이만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 온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북한까지 간다!
리트머스 테스트 이집트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중동의 정세는 장기적으로 요동칠 것이다. 중단기적으로는 아랍의 최대 정치 강국 이집트의 공백이 아랍정세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이-팔 분쟁의 가장 중요한 중재자인 이집트의 역할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주도 테러와의 전쟁에 전면에 나섰던 무바라크의 모습도 한동안 볼 수 없다. 사우디와 더불어 수니파 이슬람의 주축인 이집트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이라크 전쟁 이후 확대되고 있는 시아파 초승달의 주축 국가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게 될 것이다.
이란을 축으로 서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남쪽으로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까지 연결되는 초승달 모양의 시아파 블록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 큰 틀에서 세계정치역학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일당독재 혹은 집정관 통치 등의 권위주의 체제가 빠르게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 서방 그리고 한국도 과거처럼 민주화나 인권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는 이제 버려야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랍권은 물론, 다른 지역의 권위주의 정부도 정당정치에 기반을 둔 다원화 사회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끝이 북한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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