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3월 1일

기획| 미국, 북한과의 대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2011년 3월호

기획 | 미국 대북정책 방향 전환?

미국, 북한과의 대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우탁 / <연합뉴스>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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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1월 2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를 방문, 김성환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26일 서울에 온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그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만난 뒤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제사회는 어떤 형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도 유엔 안보리 결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위배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정부가 고위급 군사 예비회담을 제안한 것을 비롯해 북한과의 대화노력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직접적 전제조건은 아니다”라고 브리핑했다. 이는 스타인버그 부장관 방한 전인 1월 14일,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해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하기 전에는 공식적인 남북대화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한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갑작스런 한국정부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의 대북 정책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이후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미국정부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북한과의 대좌를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명제를 정리한 것이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표현돼온 대북 정책의 흐름이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미국의 발걸음을 재촉했을까. 특히 재선가도에 나설 오바마 대통령의 시선을 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농축 우라늄 망령 8년 만에 현실화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이 지난해 11월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포드대 교수를 초청해 눈앞에서 과시하듯 보여준 우라늄 농축시설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 분야에 누구보다도 높은 전문적 식견을 가진 헤커 박사가 원심분리기의 정교함에 “매우 놀랐다(stunned)”고 말할 정도였으니 워싱턴에 퍼진 후폭풍은 대단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특사가 평양에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에게 들었다는 ‘고농축우라늄(HEU) 망령’이 8년 만에 현실화된 것이다. 미국에게 사활적 이해가 걸린 이스라엘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는 우라늄농축 문제의 악화를 방지해야 할 절박함이 워싱턴을 강타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즈음 외교가에 회자된 얘기가 ‘미국에 대한 직접적 안보위협’론이었다. 워싱턴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 1월 11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한정된 능력을 5년 이내에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틀 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 방송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위협이 될 경우에 한미동맹은 그것을 폭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의해 ‘미국 본토’가 위협받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 핵심소식통은 “더이상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북한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미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 핵은 이란과 함께 전 세계 비확산 체제 유지에 핵심적 이슈로 미국이 다루고 있다.

플루토늄에 이어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려고 대드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전략적 인내를 하면서 방치할 것인가, 북한이 우라늄 핵무기를 손에 쥔다면 어떻게 될까.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고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가 아닌가. 결국 ‘지겹도록 미운’ 북한이지만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북·미 직접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스타인버그 부장관을 정점으로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차관보, 그리고 게리 세모어 미국 백악관 핵 비확산 담당 보좌관 등 핵심 라인들은 헤커 박사에 이어 12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지사의 방북 등 일련의 이벤트를 거치면서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대체할 새로운 전략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워싱턴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G2(주요 2개국) 컨센서스’ 차원에서 한국과 관련된 변수(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와 분리해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중국과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008년 12월 이후 개점휴업 상태인 북핵 6자회담은 이르면 4월 이후 적어도 올 상반기에는 재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전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 북핵 협상을 주도하는 한 당국자는 “1990년대 클린턴 정부 시절이나 부시 행정부 후반부에 펼쳐졌던 협상과 맥락이 매우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최대한 배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20년에 걸친 북한 핵문제의 역사적 맥락, 제네바 합의 이행과정과 6자회담의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북한에 대한 충분한 학습효과가 축적돼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 “한번 산 말을 다시 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도 북한의 협상 전술·전략을 관통한 미국의 교훈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미, 새 전략 마련…절제된 행보 예상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가도를 위해 이란은 물론 북한 문제에 있어 ‘업적’을 이끌어내려 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절제된 행보’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이 재개되거나 6자회담이 다시 열리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페이스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6자회담은 지난 2003년부터 2008년 말까지 진행돼온 ‘지루한 협상형태’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게 한국정부는 물론 미국정부의 확고한 인식이라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북한을 향해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실천으로 옮길 것을 강요하면서 기싸움을 펼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가 향후 국면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도발→관심끌기→협상→보상→재도발로 이어지는 과거의 행동패턴을 재연할 경우, 북한에 대한 학습효과에 익숙한 국제사회의 외교시간표는 다시 한 번 지연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이 실시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또 다시 핵실험 준비 징후를 보이는 것은 심상찮은 신호로 여겨진다. 바야흐로 미국과 북한 간 새로운 외교전선이 조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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