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 세종대왕, 세계에 자랑합시다 2011년 5월호
해외칼럼
세종대왕, 세계에 자랑합시다

지난 12월 23일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학생인 삼실, 비드리아나(오른쪽부터)가 서울 광화문광장 아래 세종이야기 전시실을 찾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시카고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세종문화회(회장 김호범)가 주관하고 시카고 한국일보가 협찬하여 매년 음악경연대회, 작문, 시조경연대회를 열어왔고 금년부터는 작곡경연대회를 추가하여 세종대왕이 그의 백성을 위해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음악, 글, 천문, 지리, 군사 등 훌륭한 전통문화를 연결, 미국 내 각급 학교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세종대왕이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목표가 있었듯이 세종문화회도 동포사회와 주류사회의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선양하는 훌륭한 일을 발전적이고 창의적으로 잘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글은 2011년 2월 26일 150여 명의 한·미 후원자들이 모인 세종문화회 기금모금 만찬에 올린 필자의 인사말을 발취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하면 링컨을 떠 올리듯, 한국에서는 세종대왕을 떠 올린다. 세종은 1397년에 태어나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신생 조선의 왕위에 있으면서 31년 간 국민을 위한 위대한 정치를 하였다.
‘대왕’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은 “국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안다.”며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농산물 증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농사계절을 서울(경복궁)을 중심으로 계측하도록 장영실, 이천 등 과학자를 기용, 최고의 해시계와 혼천의, 측우기 같은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어 농사 때를 잘 맞추게 하였으며 민생을 어렵게 하고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적을 막기 위해 장군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왜구를 발본(拔本)한 후 잘못을 뉘우치고 애원하는 대마도주에게 왜관을 열어 통상을 하도록 허가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여진을 정벌해 육진을 개척, 북방의 국경을 안정시켰고 박연으로 하여금 악기, 악곡, 악보 등을 다듬어 전통 아악뿐 아니라 일반 백성을 위한 향악을 정리하게 하였다.
성삼문 같은 총명한 학자와 최만리 같은 중후한 학자를 집현전에 모아 학문을 연구하도록 하는 한편,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기 29년 전인 1421년에 활자공방인 주자소를 두어 책을 출판하였다.
왜 세종대왕인가?
1443년에는 집현학사들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고려 시기 개설되었으나 유명무실하던 것을 1450년에 궁중으로 옮기고 확대 개편하여 세계적 모범으로 왕립 싱크 탱크인 집현전을 설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도록 하여 마침내 1443년 12월 “임금께서 몸소 28자를 고전(古篆)을 본떠” 한글을 만들었다.
이는 동 시대를 거쳐 산, 생육신 김시습이 그의 저서 <징심록 추기>에서 신라 박재상 저 <징심록> 고본 정음(正音)중에서 채자한 것이라고 하였다.
세종은 이렇게 옛부터 내려오는 민족 정통의 국문을 연구해서 모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새 것으로 발전시켰다는데 큰 위대함이 있다.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조정 중신들과 사대하던 일부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위해 이를 뿌리친 의지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집현전 영재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을 거쳐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을 만들고 많은 고전 진서를 정음으로 번역 반포하여 서민문화를 크게 진화 발전시킨다.
특히 훈민정음 28자의 제정은 우리나라 역사상 세 번째 글자로 오늘까지 남해의 바위에 새겨져 전해지고 있으나 역사에 남아있을 뿐 이미 사라져버린 녹도문(BC 38C 신지-현덕문자)과 이야기와 흔적만 남아있는 가림다문자(BC 2181 삼랑 을보록의 38자)를 다듬은 것이다.(저자가 다르고 저작 년대가 수백 년 식 다른 역사서에 동일한 사실이 기재되고 또 바위 등에 유적으로 남는 이상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공자 내세운 중국 문화원에 맞서
현재 한글이라는 이름은 1928년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 28자를 24자로 고치면서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과학적이고 쓰기 편한 글로, IT시대의 제1의 표기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글이 되었다.
이러한 세종의 전통과 업적을 기리고 이 시대에 알맞고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지식과 문화영역을 넓혀 주는데 필요한 문화적 봉사를 펼쳐가는 세종문화회는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너무도 크고 벅찬 사업이다.
세종문화회가 하는 일은 우리 정통문화를 외국에 널리 알리고, 같이 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 동포 후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 인식과 스스로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국제친선과 다문화 협력을 경쟁적으로 늘려가는 마당에 중국이 공자 이름만 내세운 중국문화원을 세계 곳곳에 세우고 있는데 우리 세종문화회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조국의 문화원 역할까지 하도록 동포 사회와 한국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림관헌 / 미국 환태평양문화재단 이사장
“시카고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세종문화회(회장 김호범)가 주관하고 시카고 한국일보가 협찬하여 매년 음악경연대회, 작문, 시조경연대회를 열어왔고 금년부터는 작곡경연대회를 추가하여 세종대왕이 그의 백성을 위해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음악, 글, 천문, 지리, 군사 등 훌륭한 전통문화를 연결, 미국 내 각급 학교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세종대왕이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목표가 있었듯이 세종문화회도 동포사회와 주류사회의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선양하는 훌륭한 일을 발전적이고 창의적으로 잘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글은 2011년 2월 26일 150여 명의 한·미 후원자들이 모인 세종문화회 기금모금 만찬에 올린 필자의 인사말을 발취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하면 링컨을 떠 올리듯, 한국에서는 세종대왕을 떠 올린다. 세종은 1397년에 태어나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신생 조선의 왕위에 있으면서 31년 간 국민을 위한 위대한 정치를 하였다.
‘대왕’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은 “국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안다.”며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농산물 증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농사계절을 서울(경복궁)을 중심으로 계측하도록 장영실, 이천 등 과학자를 기용, 최고의 해시계와 혼천의, 측우기 같은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어 농사 때를 잘 맞추게 하였으며 민생을 어렵게 하고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적을 막기 위해 장군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왜구를 발본(拔本)한 후 잘못을 뉘우치고 애원하는 대마도주에게 왜관을 열어 통상을 하도록 허가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여진을 정벌해 육진을 개척, 북방의 국경을 안정시켰고 박연으로 하여금 악기, 악곡, 악보 등을 다듬어 전통 아악뿐 아니라 일반 백성을 위한 향악을 정리하게 하였다.
성삼문 같은 총명한 학자와 최만리 같은 중후한 학자를 집현전에 모아 학문을 연구하도록 하는 한편,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기 29년 전인 1421년에 활자공방인 주자소를 두어 책을 출판하였다.
왜 세종대왕인가?
1443년에는 집현학사들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고려 시기 개설되었으나 유명무실하던 것을 1450년에 궁중으로 옮기고 확대 개편하여 세계적 모범으로 왕립 싱크 탱크인 집현전을 설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도록 하여 마침내 1443년 12월 “임금께서 몸소 28자를 고전(古篆)을 본떠” 한글을 만들었다.
이는 동 시대를 거쳐 산, 생육신 김시습이 그의 저서 <징심록 추기>에서 신라 박재상 저 <징심록> 고본 정음(正音)중에서 채자한 것이라고 하였다.
세종은 이렇게 옛부터 내려오는 민족 정통의 국문을 연구해서 모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새 것으로 발전시켰다는데 큰 위대함이 있다.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조정 중신들과 사대하던 일부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위해 이를 뿌리친 의지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집현전 영재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을 거쳐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을 만들고 많은 고전 진서를 정음으로 번역 반포하여 서민문화를 크게 진화 발전시킨다.
특히 훈민정음 28자의 제정은 우리나라 역사상 세 번째 글자로 오늘까지 남해의 바위에 새겨져 전해지고 있으나 역사에 남아있을 뿐 이미 사라져버린 녹도문(BC 38C 신지-현덕문자)과 이야기와 흔적만 남아있는 가림다문자(BC 2181 삼랑 을보록의 38자)를 다듬은 것이다.(저자가 다르고 저작 년대가 수백 년 식 다른 역사서에 동일한 사실이 기재되고 또 바위 등에 유적으로 남는 이상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공자 내세운 중국 문화원에 맞서
현재 한글이라는 이름은 1928년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 28자를 24자로 고치면서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과학적이고 쓰기 편한 글로, IT시대의 제1의 표기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글이 되었다.
이러한 세종의 전통과 업적을 기리고 이 시대에 알맞고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지식과 문화영역을 넓혀 주는데 필요한 문화적 봉사를 펼쳐가는 세종문화회는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너무도 크고 벅찬 사업이다.
세종문화회가 하는 일은 우리 정통문화를 외국에 널리 알리고, 같이 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 동포 후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 인식과 스스로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국제친선과 다문화 협력을 경쟁적으로 늘려가는 마당에 중국이 공자 이름만 내세운 중국문화원을 세계 곳곳에 세우고 있는데 우리 세종문화회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조국의 문화원 역할까지 하도록 동포 사회와 한국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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