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 리뷰…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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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평양>리뷰…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에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굿바이 평양>을 봤다. 양영희 감독의 전작 <디어 평양> 이후 5년 만이다. 감독과 감독의 가족을 온전히 담아낸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 후 일주일동안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애잔하였다.
양영희 감독은 1964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 뒤에 고향인 제주도에서 4·3항쟁이 터지면서 귀국하지 못한 재일교포이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북한 국적을 취득했고, 막내딸만 남겨놓고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냈다.
기다림에 배반당한 부모
‘북한 밖의 북한사회’인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가입한 조선인들 각자의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감독의 아버지는 딸의 캠코더 앞에서 그때는 다 그러했노라고 담담히 소회한다. 집안 곳곳에 있는 북한의 서적과 부모님이 열심히 조총련 활동을 했을 때의 사진을 보면, 청년인 아버지의 설레임이 전해진다.
나라가 없던 서러움과 해방 이후에도 여전한 차별. 아버지가 젊음과 인생 그리고 세 아들을 바쳐 소속되고 싶었던 것은 이데올로기나, 옳고 그름이 아닌 든든한 울타리에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아들들을 보내놓고 어머니는 우편물 포장의 달인이 되었다. 아이들의 학용품, 옷, 식료품, 식기들. 손주가 난방이 안 된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동상에 걸렸다는 소식에 당장 상자 가득 손난로를 보냈다는 어머니. 감독이 본 어머니는 눈물 많은 애통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만 영화 속의 어머니는 계속 웃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서먹한 것 같아도 웃고,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에도 다시 평양에 가야하지 않으냐며 격려하느라 웃었다. 먼데에 있어도 살뜰히 살펴야 하는 자식 때문에 내가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웃음이었다.
영화는 평양에 사는 둘째 오빠의 딸 선화가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 오빠들 가운데 외동딸인 본인, 그리고 유독 남자 조카만 있는 중에 태어난 선화가 감독에게는 꼭 본인을 보는 것 같았던 듯,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선화, 또 하나의 나(Sona, Another Myself)이다.
조총련 교육과 일본이라는 이중적 환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던 감독과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일제 옷이나 연필, 가방 등을 쓰며 자란, 그리고 어느 덧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10대 후반이 된 선화는 감독의 눈에 자신과 오버랩 되었을 것이다.
커피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큰 오빠의 오랜 우울증. 이런 저런 질문에도 웃는 것밖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빠들이 살고 있는 평양에 대한 답답함과 자식들이 다 장성했음에도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늙은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왜 자식들을 평양으로 보냈는가에 대한 원망은 이 기이한 초국적 가족을 과연 무엇이 지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한다.
아버지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인 “북·일관계 정상화”에 희망을 걸고 세 아들을 귀국시켰고,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3년이 지난 오늘에도 요원하다. 부모는 자식을 걸고 온 인생을 조국에 바쳤지만, 기다림에 배반당한 것이다.
“영광스럽게도 정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큰 오빠도 죽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른다. 클래식을 사랑하던 큰 오빠의 아들은 장성해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고, 선화는 미래를 꿈꾼다. 그곳에도 결혼과 진갑잔치가 있고 생일 케이크, 제사, 피아노, 피자와 아이스크림이 존재한다.
전력난으로 전기밥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2시간 밖에 없고, 야간에는 정전이 엄습하지만 아이들은 “영광스럽게도 정전이 되었습니다.”라고 폭소를 터트리며 장난을 한다. 굴곡진 세월동안 하 많은 사연들이 그렇게 세월을 견뎌왔을 것이다.
2006년 <디어 평양>으로 양영희 감독은 방북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2006년 이후의 선화를 볼 수 없다. 감독이 2년 전 사진으로 본 선화는 운동은 못하고, 공부만 해서 살이 조금 찌는 바람에 다이어트를 하고 싶고, 또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서 고모를 따라 외국 영화제에 따라다니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버지에게 어떤 생각이 드시느냐 여쭤보았더니,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해가 가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부터 하신다. 평소 정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아버지와 스무 살 때부터 북한을 공부한 내가 나눈 북한에 관한 대화 중 몇 안 되는 공감이 가는 순간이었다.
이데올로기나 세계관, 정치관에 대한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한 걱정, 남한인 우리 집에 딸 셋 아들 하나, 아버지에게 살같이 애틋하고 소중한 ‘가족’이 있듯이 북한에도 핏줄과 가족이 있다는 것. 북한에 살고 있는 인민들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이다.
양영희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선화를 비롯한 평양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걱정되지만 선화의 아버지인 둘째 오빠가 영화를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 주었으며, 감독은 <굿바이 평양>을 통해 오히려 선화와 가족들을 유명하게 만들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오늘도 감독의 어머니는 우편물을 포장하고 계시겠지. 그녀의 바람대로 평양의 가족이 꼭 평안하기를, 그리고 선화의 꿈이 꼭 예쁘게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윤보영 /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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