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5월 1일

기획 | 대북 식량지원 논쟁 대상으로 삼지 말자 2011년 5월호

기획 | 대북 식량지원, 어떻게 볼 것인가?

대북 식량지원 논쟁 대상으로 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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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 모임’ 소속 종교인들이 대북 인도적지원 재개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2월 4일 북한 청진 수남구역 추목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난한 딸은 홀로 남은 친정아버지를 평소 찾아뵙지 못하다가 올해 설에는 꼭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큰마음을 먹고 집에 다녀갔다. 따뜻한 옥수수밥 한 그릇이라도 지어드려야겠기에 없는 살림에도 옥수수쌀을 한 봉지 사들고 갔다.

“아버지” 부르며 방문을 열었더니 코끝이 얼 정도로 쌩하고 찬 기운이 느껴졌다. 사방이 얼어버릴 것 같은 냉동고처럼 냉기가 서린 방속에 아버지가 미동도 없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모양이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려드리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돌아가시게 했다는 죄책감에 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면 군량미로 전용되거나 간부들이 빼돌리니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식량지원을 하면 체제를 유지시킬 뿐, 실제 필요한 계층에는 안 돌아간다고도 한다. 2012년 강성대국 선포를 앞두고 북한 정부가 그때 생색을 내기 위해 일부러 식량을 비축하려고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을 내세워서 식량을 구걸하고 있다는 비난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한다. “지원된 식량이 군량미로나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빼돌리더라도, 그 사람들이 하루 3끼 먹고 사는 이상 남은 식량은 어떻게든 시장에 풀리게 되어 있다. 그러면 쌀값은 떨어질 것이고, 일반 주민들은 구매가 더 쉬워질 것이니, 결국 주민들에게도 이득이 된다.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이 잘 안 되더라도 간접 지원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또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일은 남한의 농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쌀 재고량이 100만t이 넘으면 관리비용만 3천억 원이 넘고, 쌀값 폭락으로 우리 농민들도 고통 받기 때문에 대북 식량지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실제 작년 국내 쌀 재고량은 150만t이 넘었고 농민들은 대북지원을 법제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밥 한 끼 못 해드려 너무 송구스러워”

위의 상반된 두 주장을 듣다보면 대북 식량지원이 적어도 남한 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 같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북한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 부족한지를 따지자면 견해가 또 갈라지겠지만 다양한 매체들의 소식을 비교해보면,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데 동의할 만큼은 식량이 부족한 것 같다. 얼마 전 실태조사를 직접 하고 돌아온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주민 610만명이 식량위기에 처해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2011년의 남한 사회에서 굶주림, 기아, 아사 등의 말들을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해도 실은 그것의 비극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지원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당장 자신의 배가 고프지 않으니 배고픈 이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많은 이들을 고통 받게 하는 나쁜 정부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원된 식량이 가장 필요한 계층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나쁜 정부를 혼내주려고, 혹은 취약계층에게 직접 전달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대북 식량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원성과 높일 전략 짜자

현재 북한 주민들에게는, 특히 시장에서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주민들에게는 어떻게든 식량이 공급돼야 한다. 명절이라고 큰마음 먹고 찾아간 딸이 오랜 굶주림 끝에 동사한 아버지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밥 한 끼 못 해드린 자신이 너무 송구스러워 큰 소리로 울지도 못했던 그 마음은 어땠을까.

이들에게 “체제가 붕괴되면 자연히 식량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니, 붕괴될 때까지 식량지원이 없더라도 좀 기다려 달라.”는 주장은 공허할 것이다.

차라리 “분배가 잘 될 것인지도 살펴야 하고, 식량이 얼마나 부족한지 어디가 더 많이 부족한지도 따지다 보니 지원이 늦었다, 이렇게 지체되는 동안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니 정말 죄송하다, 조금만 더 일찍 보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하다.”라는 위로의 한 마디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아프면 아픈 줄 알고, 가족 중에 누가 굶어죽거나 약 한 첩 못 쓰고 병들어 죽으면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들에게 ‘나쁜 정부’를 핑계 삼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오랜 기간 우리를 식민지로 악독하게 지배했던 일본 사람들에게도 지진 피해로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데, 어째서 우리 핏줄에게는 그리 냉담한지 모르겠다.

정부에 바란다. 북한 핵문제나 연평도 사건, 천안함 사건 등 정치적 사안들은 철저히 정치적·외교적으로 풀어 가더라도,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생존 문제만큼은 논란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조속히 단행해 주길 바란다.

또한 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 주길 바란다. TV 화면에 잡힌 꽃제비 여성이 얼마 후 죽었다는 소식에 가슴 아파하던 우리 국민들이다. 정부만 결단을 내려준다면 우리 남한 국민들은 북녘 이웃들의 고통에 결코 남몰라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바란다. “무엇 때문에 지원을 못 하겠다.”는 태도에서 “그러니 이렇게 지원하면 좋겠다.”는 제안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 좋겠다. 지원을 못하는 이유를 찾지 말고 지원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 즉 인도주의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인도주의적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짜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새롭 / (사)좋은벗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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