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초점 | 북핵 6자회담 시동 걸리나? 2011년 5월호
시사초점
북핵 6자회담 시동 걸리나?

지난 4월 12일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길에 오르는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위 왼쪽)과 같은 날 워싱턴 미 국무부에서 커트 캠벨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을 면담한 뒤, 기자회견을 갖는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위 오른쪽). 아래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4월 16일 서울 외교통상부자장관 공관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4월 초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미국의 대북 전문가를 만났다. 워싱턴 기류를 알고 싶어서였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미국 정부의 핵심 당국자들과 ‘속 깊은 토론’을 자주 한다는 그는 향후 6자회담의 전망을 놓고 열띤 이야기들이 오가자, 목소리를 낮추더니 “오바마 정부가 ‘동맹 우선’ 원칙을 고수하면서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의 정신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모색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 “주요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남북 → 북·미 → 6자회담 수순
그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뒤인 4월 7일 갑자기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베이징에 도착했고, 곧이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일정도 공개됐다.
먼저 베이징 소식이 눈에 확 들어왔다.
6자회담 의장이기도 한 중국의 우다웨이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는 4월 11일 이른바 ‘3단계 방안’을 소개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운을 뗀 그는 “첫 번째는 남북 수석대표 회담이며, 두 번째 단계는 북한과 미국 간의 회담, 그리고 6자회담 재개”라고 말했다.
나흘 전부터 베이징에 갑자기 나타난 김계관 부상을 만난 뒤에 나온 발언이었다. 김계관이 나흘 간이나 베이징에 체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북 협의’를 1단계로 제시한 중국의 제안에 대해 평양의 훈령을 기다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계관이 베이징에 나타난 4월 7일 커트 캠벨 미국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중국을 방문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뭔가 교감을 갖고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우다웨이의 3단계 제안을 들은 직후 정부 고위 소식통한테 저간의 사정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남북 비핵화 회담은 우리가 요구한 것이고, 이것이 미국을 통해 중국에 전달됐으며, 중국이 북한을 설득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곧이어 한국의 6자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는 4월 12일 워싱턴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비핵화 문제에 대해 남북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난 1~2년 간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협의가 끝난 뒤 귀국한 그는 4월 16일 서울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의 반응에 따라 성사여부가 달렸다.”고 말했다.
이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찬회동에 이어 4월 17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도 만났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미 외교장관회담의 결과를 담은 공식 발표문에 ‘북한의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라는 추상적 표현 외에 ‘천안함’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이었다.물론 클린턴 장관은 “대북정책은 한국이 리드하고 미국은 지원하는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인 그림을 종합해보면, 미국 정부는 그동안 견지해 온 이른바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 북한과 ‘전략적 협의’를 하기로 했으며,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도 교감했음을 알 수 있다.
대신 천안함과 연평도 변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동맹국을 최대한 배려하는 모양새를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동맹우선’과 자국의 외교시간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려는 이명박 정부를 외교 쪽으로 유도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북한을, 미국은 한국을 견인해 다시 한 번 북한 문제를 외교적 해법과 접목하려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동맹우선’을 깨지 않으려는 미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이명박 정부의 선택이 외교시간표를 앞당길 수도, 아니면 지연시킬 수 있는 핵심변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북한이 ‘선(先) 남북협의’를 수용한 만큼 3단계 재개방안의 첫 단추인 남북 6자 수석대표회담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열릴 가능성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조만간 전통문 등의 형태로 남북회담을 정식 제안할 경우 남북회담은 성사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도발에 책임 있는 태도 보여야”
하지만 회담이 열린다고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한국 당국자들의 거듭된 설명이다. 이른바 ‘책임 있는 조치’를 놓고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가 포함돼 있는 지를 놓고 정부 내에서 혼선은 여전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의 사과를 받아야 6자회담이 가능하다.’고 한 상황이다. 따라서 비핵화 남북회담이 열리더라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 간에 의제의 불일치 현상이 노정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이 원하는 ‘사과’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우회로를 찾을 수 있다. 클린턴 장관이 서울을 다녀간 뒤 한국 당국자들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전제조건’이라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미국의 의중이 매우 강하게 투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처 여부는 우리의 모든 행보에 영향을 준다.”면서도 6자회담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인 “비핵화 남북회담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논의할지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비핵화 남북회담과 별도로 남북 간에 군사회담을 열 경우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비핵화 논의를 분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진정성 있는 비핵화’ 문제가 현안이 된다. 당국자들은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행동 리스트’에는 과거 알려진 대로 ▲핵무기 생산과 실험, 로켓발사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우라늄농축시설 현장조사와 우라늄농축 중단 ▲IAEA 조사단의 영변 복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남북회담이 성사되고 나면 북·미 회담이 어느 단계에서 열릴 지도 관심사다. 정부 당국자들은 남북회담을 통해 가시적인 비핵화의 진전이 있어야 북·미 회담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재선 도전을 선언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과의 ‘전략적 협상’을 선택했을 경우 언제까지 남북협의를 고리로 시간을 끌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협의가 초기에 결렬되지 않을 경우 남북과 북·미 협의는 병행해 진행될 가능성을 상정하는 이유이다.
특히 북한이나 중국이 남북협의가 열린 이후 북·미 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려할 경우 한국과 미국 간에 속도를 높고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미국의 전략적 방향설정이 풍향계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한 성격 규정도 생각해 볼 문제다. 한국은 남북협의 등을 통해 UEP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 위반’이라는 성격규정을 받으려 하고 있지만 북한은 물론 중국도 이 문제는 차제에 6자회담에서 논의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천안함·연평도 문제가 분리되더라도 남북 비핵화 회담이 서로 일방적 주장만 오간 채 성과 없이 결렬될 경우가 문제이다. 회담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매우 미묘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적 방향설정이 중요한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G2(주요 2개국) 컨센서스’ 차원에서 중국과의 교감을 마친 미국이 ‘한·미 동맹’의 테두리에 얽매어 갈 길을 포기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특히 미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UEP 문제를 방치할 경우, 추후 외교적·정치적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외교가에서는 남북대화가 교착국면을 보이는 상황에서 북·미 간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며, 그 계기는 오마바 행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매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4월 26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도 한반도 정세를 크게 바꿀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과감한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고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와 평화협정 등을 추진하는 등 한국을 압박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럴수록 이명박 정부의 고민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무리수를 둘 경우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외교적 레버리지를 놓치고, 향후 6자회담 재개 논의과정에서 주도력이 약화되는 딜레마적 국면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이래저래 한국의 선택이 주목되는 순간이다.
이우탁 / <연합뉴스>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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