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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 | 기회의 땅 시베리아를 가다 2011년 9월호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 1

기회의 땅 시베리아를 가다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와 한겨레 평화연구소의 공동주관으로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가 진행됐다. 6박8일 동안 이어진 대장정에서 69명의 참가자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4,100km를 꼬박 60여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 글은 대장정에 직접 참가했던 필자의 참관기로, 시베리아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자원 공동개발을 통한 동북아 상생모델 개척에 관한 이야기까지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지난 5월 중순 한겨레 평화연구소 측의 한국-시베리아센터 방문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이르쿠츠크 남·북·러 협력 포럼’의 공동주관에 관한 제안이 있었다. 1996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베리아 지역 연구소인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는 같은 해에 이르쿠츠크 국립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그동안 북극을 포함한 시베리아 지역 연구를 왕성하게 전개해 오며 동지역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확산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을 미래 한국사회의 성장동력 공간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해당지역의 개발을 포함한 적극적 활용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센터로서는 긍정적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며, 이렇게 해서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와 바이칼까지’와 ‘분단을 넘어 시베리아로’라는 소제의 이르쿠츠크 남·북·러 협력 포럼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은 그 크기나 인류사적 의미 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유도하기에 충분했지만, 러시아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 아래 그 의미가 축소되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시베리아 지역의 지정학적·경제적(자원, 물류 등) 가치의 새로운 인식과 지방자치 움직임과 함께 동일 지역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 지구 온난화와 무분별한 개발의 환경 생태적 위협 속에 지구상 몇 안 되는 산소공급지인 유라시아 북방-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 세계 삼림의 약 20%, 세계 최대의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를 비롯한 청정한 수자원, 그러나 개발의 위협 속에 지하에 매장된 엄청난 화석연료 자원을 보유한 시베리아 지역의 환경보존과 파괴된 환경복구 문제는 지구촌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시베리아, 미래 한국의 성장동력 공간

국제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관계가 있는 한국 사회의 시베리아 공간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 사항이라 생각된다.

시베리아 공간은 한국 사회에 에너지와 자원의 확보 및 수입원·공급처의 다변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의 확장, 생활공간의 확대, 해외 식량기지의 확보(농업·목축업·수산업), 환경과 생태에 대한 글로벌 이슈의 충족, 녹색성장의 토대, 남북한 통합 촉진과 북한 경제의 연착륙 유도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미래 한국사회의 ‘기회의 공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민족의 시원과 정체성 탐색 및 한반도의 통일과 통일한국의 대륙 문화권으로의 복귀 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의 수행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하에 준비되어 약 8일 간에 걸쳐 이루어진 이번 행사의 주된 일정은 이르쿠츠크에서의 국제포럼 개최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약 4,100㎞ 구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그리고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담고 있는 지구 최대의 담수호인 바이칼 탐방 등으로 구성되었다.

4,100km 횡단열차 시발점, 블라디보스토크

2011년 7월 31일 드디어 ‘동해에서 바이칼까지’ 대장정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 9시 5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2시간40분을 비행하여 현지시각 오후 2시30분경(한국과 시차 2시간)에 블라디보스토크국제공항에 안착했다. 한반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에서의 출발은 대장정의 주된 모토인 ‘동해’와 합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행사의 일정의 진정한 시작은 고조선을 비롯한 고구려, 발해 그리고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는 역사적 장소, 동해의 연장선 상에 있는 극동지역의 중심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러시아연방 태평양함대의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의 주요 항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연방 내에서도 유동인구가 유달리 많은 지역이다.

소비에트 시대의 말기인 1991년부터 약 8년 간 러시아 유학생활을 경험한 필자는 이번을 포함해 총 4회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매번의 방문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주는 인상은 색달랐다. 처음 방문은 소비에트 시기인 1991년 초겨울인 11월에 이루어졌으며, 그 때의 이 도시는 ‘경직성’이라는 단어를 필자에게 안겨주었다.

필자의 관심이 고려인에 집중되어 있었던 두 번째인 한·러수교 10주년 기념 국제포럼 참가 차 2000년에 있었던 방문은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회한’과 ‘약간의 분주함’이라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올해 있었던 두 번의 방문은 ‘번잡함’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2012년 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전역에서 도로 건설 및 확장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에 이르는 도로 역시 건설 중인 상태였으며, 우리 일행은 평시 약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약 한 시간 동안 비포장도로에 몸을 맡겨야만 했다. 이렇게 ‘동해’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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