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순수 전력생산용? 2011년 9월호
<편집자 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재개의 길목에서 멈칫거리고 있다. 멈칫거리는 것을 넘어 자칫 재개 자체가 불투명해 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일부 나오고 있다. 이유는 미국과 북한의 회담에서 제기된 북한의 입장에 대한 미국과 한국 등의 평가가 여전히 긍정적이지 못한 때문이다. 지난 7월 22일 발리에서 열린 남북회담에 이어 7월 28~29일 간 뉴욕에서 미국과 북한이 마주앉아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재개 등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와 미·북 간 (최)고위급 회담을 통한 통 큰 해결을 주장한 북한에 대해 현재의 핵활동 동결과 감시수용, 특히 우라늄농축시설의 가동 중단 등을 회담 재개의 선제적 조치로 요구한 미국의 입장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6자회담 재개 자체가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8월 말 러시아를 방문하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조건 없이 6자회담이 재개되면 그 과정에서 핵물질 생산과 추가 핵실험을 유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상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미국은 북한의 추가적인 핵물질 생산과 핵실험 유예 의사 표명이 여전히 6자회담 재개에 불충분하다며 북한에 추가적인 선(先)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무엇이 6자회담 재개와 북핵문제 협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그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특집 | 한반도 정세 5대 쟁점 해부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순수 전력생산용?

북한이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 중이라고 주장한 영변 현장에 공사가 더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위성사진이 입수됐다고 미국 핵군축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4월 27일 밝혔다. ISIS가 공개한 위성사진은 지난 3월 8일 촬영된 것으로 1개의 원통형 구조물이 보이며 직경이 약 21m 크기이다. ⓒ연합뉴스
2002년 이후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실체가 2010년 밝혀졌다. 2010년 11월 9~13일 방북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 일행은 북한의 우라늄농축 시설과 건설 중에 있는 경수로 실험로를 목격하고 미국으로 귀국 후 이를 공개하였다.
헤커 박사의 목격담은 그간 북한의 UEP 수준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미국과 우리나라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추가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다소 조심스런 평가를 내놓긴 했지만, 헤커 박사의 UEP 관련 진술 내용은 한·미 당국이 예상했던 기술 수준을 크게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11월 12일 헤커 박사 일행은 평양에서 90km 떨어진 영변 핵과학단지를 방문하여 경수로 실험로와 우라늄농축 시설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경수로 실험로는 열출력이 100MWt로서 5MWe 원자로 근처 부지에서 건설 중이었으며, 당시 이 실험로의 격납건물은 약 1m 높이까지 공사가 진척되고 있었다고 한다.
북측 인사는 이 실험로에 핵연료를 완전히 장전할 경우 총 4t의 우라늄(평균 농축도 3.5%)이 소요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헤커 박사는 우라늄농축 시설은 과거 금속핵연료 제조공장을 개조한 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1,000대 이상의 최신 원심분리기가 가지런히 정렬된 상태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북측 인사는 헤커 박사에게 이 우라늄농축 시설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총 농축능력은 8,000kg-SWU/year라고 하였다고 한다. 헤커 박사는 이 농축능력이라면 북한은 매년 2t의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캐스케이드 구조를 변경하면, 고농축우라늄(HEU)을 40kg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연간 핵무기 1~2개 제조 HEU 생산 가능
북한은 경수로 실험로와 우라늄농축 시설이 전력생산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북측 인사가 헤커 박사에게 언급한 경수로 실험로와 우라늄농축 시설의 설계변수 값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즉, 우라늄농축 시설의 저농축우라늄 연간 생산량은 경수로 실험로의 연간 수요량과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
헤커 박사가 언급한 경수로 실험로의 주요 설계변수와 우리나라 표준원전인 OPR-1000의 해당 설계변수를 비교분석해 보면, 북한의 경수로 실험로는 OPR-1000에 비해 핵연료를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만 원자로에서 연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생산이 목적이라면, 가능한 오랫동안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태우면서 전력 생산을 극대화하는 것이 관례인데, 북한의 경수로 실험로는 이 관례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또한 북한은 경수로 실험로 가동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양의 우라늄을 원자로에 장전한다. 즉, 3t 정도의 우라늄을 장전하면 100MWt의 열출력을 발생하는데 충분하지만, 4t의 우라늄을 장전한다.
북한의 핵연료 제조기술이 부족하여 원하는 수준의 열출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량보다 많은 양의 우라늄을 장전할 수 있으나, 노심설계 기술이 공개된 기술인 점 등을 감안할 때 그럴 가능성은 떨어진다. 이렇게 우라늄을 많이 장전할 경우, 사용후핵연료가 더 많이 방출되어 이를 처리·처분하는 부담이 증가한다.
북한이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필요 이상의 우라늄을 연소시키려 하는 것은 전력생산 이외의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수로가 고품질의 플루토늄 생산에는 불리하지만, 원자로에서의 연소기간을 짧게 하여 배출한 사용후핵연료부터 추출한 플루토늄을 고성능 기폭장치와 결합할 경우, 핵무기로서의 위력과 폭발효율은 다소 떨어지지만 어떠한 재래식 무기보다 위력이 큰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
북한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과 관련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수로 실험로에서 배출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과거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기폭장치 제작 및 제어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은 경수로 실험로의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여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기술적 장애가 존재하지 않는다.
경수로 실험로, 플루토늄 생산 목적?
우라늄농축 시설의 경우 실제 안정적으로 가동이 되는지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북한이 우라늄농축 시설을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전용할 경우 고농축우라늄을 매년 약 40kg씩 생산할 수 있다.
북한이 천연우라늄이나 베릴륨 반사체를 적용할 경우 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하여 1~2개의 우라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 우라늄농축 시설의 경우, 경수로 실험로의 핵연료 공급을 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지만, 시설변경을 하면 언제든 고농축우라늄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경수로 실험로와 우라늄농축 시설을 포함한 북한의 UEP는 순수한 민수용(전력생산) 프로그램이라고 믿기 어렵다. 북한 당국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쉽게 전환이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 UEP 프로그램의 진전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과 압박이 필요하다.
특히 우라늄농축 시설의 가동이 본격화되어 고농축우라늄이 대량 생산되고 내·외부 요인으로 인해 북한의 정권이 불안정해질 경우, 핵물질이 외부 세계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의 허술한 안전기준과 부실한 안전설비로 인해 원자력사고 발생 가능성도 잠재하고 있다. 따라서 방사선방출 사고 시 북한이 인접국에 조기 통보하고, 사고가 확대될 경우 적절한 시점에 인접국이 사고 진압 및 대응에 공동 참여할 수 있는 방사선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북한 UEP의 기술적 진전을 막고 잠재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6자회담 또는 2012년 개최 예정인 핵안보정상회의 등에서 북한의 UEP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문주현 / 동국대 원자력에너지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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