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2월 1일 1

북에서 온 내친구 | “지금은 사랑보다 공부가 우선이에요”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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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12

지금은 사랑보다 공부가 우선이에요

최근 전국이 ‘응답하라 1988’ 열풍으로 들썩였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응팔’을 이야기하며 개개인의 향수를 털어놓느라 바빴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현실이 각박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 가장 큰 문제점은 청년 실업과 취업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돈이 없어 사랑마저 포기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에서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청취자의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리만족일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북에서 넘어 온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고향 오빠, 하늘이 보내 준 수호천사 같았어요

미나는 스물 세 살의 꽃다운 나이지만 다소 늦깎이 학생으로 탈북 학교에 들어왔다.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누구에게나 호감을 갖는 아이였다. 청진이 고향인 미나는 집안 형편상 북에서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하고 중국을 통해 남한에 온 케이스다. 부모님은 미나만이라도 남한에 가 공부하라고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한다. 미나는 혼자 고향을 떠나오면서 힘든 과정을 많이 겪었다. 그 때 받은 상처로 약간 공격적인 성격이 형성된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무뚝뚝하던 미나가 어느 날부터인가 표정이 변했다. 경직되어 있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조용한 시간에 미나의 근황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예상했던 대로 미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요즘 고향 오빠를 만나고 있어요. 그 오빠하고는 라오스를 향해 가는 배 안에서 만나 여기까지 왔어요. 남한에 와서 소식이 끊겼는데 얼마 전 탈북 단체에서 하는 행사에 갔다가 다시 만났어요.” 그 후로도 미나는 나를 만날 때마다 묻지도 않은 ‘고향 오빠’에 대해 즐겨 말했다. 아마도 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나는 기꺼이 미나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접경 지역에서 오빠를 만났을 때는 하늘이 보내 준 수호천사 같았어요. 북에 두고 온 부모님이 보고 싶어 많이 힘들 때였거든요. 나 혼자 잘 살자고 부모님만 두고 도망친 것 같아 죄스럽기도 했고요. 그 때 오빠가 내게 참 많은 힘을 주었어요. 날씨가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오빠도 추우면서 내게 잠바를 벗어 주기도 하고, 내게 자신에게 주어진 빵까지 주는 등. 정말 눈물겹게 잘 해주었어요.”

그 고향 오빠는 대학에 가지 않고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취직을 한 상태라고 했다. “남한에 내려와서 고향이 그립거나 공부가 잘 안 돼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오빠를 만나 털어 놓으면 정말 위로가 많이 되고 좋아요. 오빠는 내가 맨 밑바닥부터 공부를 시작한 것이 대단하다며 책도 사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곤 했어요.”

미나는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내게 자랑하듯 털어놓았다. 그 때 미나의 얼굴은 더없이 평안해 보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보기에 좋았다. 남한에 내려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못 만나 허기진 하이에나처럼 방황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미나의 고향 오빠는 미나를 ‘첫사랑이자 인생의 로또 복권’이라고 생각한다니, 바랄 것이 더 없을 듯 싶었다.

솔직히 오빠를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미나는 오빠를 만나면서도 무섭게 공부에 매진했다. 짧은 기간에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과정에서부터 대입 졸업까지 초고속으로 취득을 할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 미나는 자기 성취욕이 강한 아이였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촌음을 다퉈가며 공부하다보면 자신만의 길이 나타날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영어 단어도 열심히 외우고 외부 자원봉사자가 제공하는 원어민 회화도 열심히 하는 등 예비 대학생으로 갖춰야 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미나는 고향 오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마침 수업 준비때문에 상담을 할 일이 있어 미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요즘도 고향 오빠 자주 만나니?” 나는 일부러 근황을 물었다. 내 질문에 미나는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공부할 시간을 너무 뺏겨서 제가 오빠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어요.” 내게 고향 오빠때문에 위로받아 좋다고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갑자기 미나의 고향 오빠라는 청년의 절망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싶어 짠했다.

“지금까지 그 오빠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았어? 혹 너 대학에 간다고 오빠에 대한 마음이 변한 거 아니니?” 나는 미나가 너무 성급히 결정을 한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나는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대학에 합격하고 준비하면서 오빠를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앞으로 할 일이 창창하거든요. 근데 오빠는 은근히 내게 스킨십도 요구하고…. 아무튼 지금 전 제대로 대학 공부를 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서요. 사랑보다 공부가 우선인 것 같아요. 지금 제게는요.”

미나가 갈등을 겪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안타까웠다. 미나는 사랑보다는 현실을 택한 셈이다. 그렇다고 미나에게 무작정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미나의 사랑 이야기를 적으면서도 못내 씁쓸하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며, 그 어떤 장애물도 두려울 게 없다.’는 말은 소설 속의 한 장면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Q.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어요. 이성교제, 괜찮을까요?

A.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다더군요. 이성교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척이나 설레고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고민스러운 문제가 아닐까요?

가족 없이 홀로 탈북해 이곳에 정착한 친구들은 외로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이성친구에게 의지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북에서 온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탈북과 정착과정에서 도움의 손을 내밀어주고,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준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일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듯 이성교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성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정서적으로 위로받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성친구와의 관계를 중시한 나머지 많은 친구들을 폭넓게 사귀는 데에는 서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청소년 시기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어떤 꿈을 꾸고 이뤄나갈지 깊이 있는 고민과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자칫하다간 이성교제로 시간을 낭비하기 쉽습니다. 특히나 북에서 온 친구들은 더 많은 경험과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꿈을 위한 준비에 매진하는 것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 같네요.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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