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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 스탈린 시대, 평범했던 가족들 이야기를 듣다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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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스탈린 시대, 평범했던 가족들 이야기를 듣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노동자상’으로 대표되는 소비에트 주체성의 전형적인 모습에 이의를 제기한다. 대신에 그는 수치심 혹은 공포라는 차원으로 재의미화 된 신념과 가치들을 제시한다. 즉 그들의 ‘신념’이라는 것에서 생존과 기회주의의 면모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소비에트 주체성’의 주된 면모는 정권에 의한 희생자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기존의 구도에서는 오직 두 개의 표준적인 소비에트 서사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리디아 긴즈버그의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준적인 소비에트 전쟁 승리 서사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소비에트 주민들의 기억을 주조하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구조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례들에서 이러한 면모들이 발견되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또 다른 사례들은 동시에 보다 복합적이고 미묘한 차이를 그려낸다. 대표적으로 굴락(Gulag, 강제수용소)의 생존자들 혹은 대규모로 국외 추방 된 종족집단의 생존자들을 이 두 가지의 범주 안으로 끼워 맞추기는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탈린의 폭정 하에서 살아간 평범한 소비에트 주민들의 내면세계를 들춰낸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저자는 기존의 연구들이 테러의 외적 면모들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작업은 우선 그러한 통치 메커니즘이 주민 개개인과 가족사에 미친 심연의 영향력을 탐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즉, 스탈린 통치 하에서 주민들은 어떻게 사적인 삶의 영역을 영위해 갔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요컨대 책의 부제 그대로, 스탈린 시기 러시아의 사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해석하고 해명해내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동료 연구팀과 더불어 십여 년간의 방대한 구술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동시에 개인적인 문서들, 인가, 수기, 노트, 편지 등을 포함하는 가족기록물들을 수집하였다. 이러한 기록물과 구술 속에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방식들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가족과 사적인 삶의 지속과 안전을 희구했다. 저자가 표현하듯이 이는 온 사회를 금욕과 수동성으로 규범화 한 스탈린의 지속적인 성취이기도 했다. 스탈린 독재가 생산한 이러한 침묵은 희생과 굴복을 양산하고 영속화시켰다. 주민들은 속삭이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자녀에게 침묵의 규칙을 가르쳤다. 즉 1930년대 테러의 시기에 그들은 이중적인 삶을 살았으며 비밀과 은폐는 모든 소련 인민의 필수적인 생존전략이 되었고 소비에트 이상에 순응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도록 독려 받았다.

결국 이 책은 ‘가족사’라는 형식을 채택하여 개인적이고 사적인 생의 ‘지속과 보존’이라는 과제 앞에서 주민들이 보여준 내면과 생존의 전략들을 다양하게 드러내고, 그 심연의 내면세계를 치밀하게 추적하고 아름답게 짜고 들어간 기념비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작을 통해 우리는 공포와 테러의 ‘외양,’ 억압과 순응이라는 ‘이분법’ 너머, 소비에트를 이해할 새로운 해석지평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는 북한의 지금, 즉 너무나 모순적인 차원들의 혼재된 양상들을 해석할 훌륭한 참조점 혹은 길잡이를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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