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5월 1일

기획 | 창의적 체험활동 실험의 장 서울외고, ‘통일은 삶이다’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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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교과서 밖 통일교육, 보고 듣고 즐겨라!

창의적 체험활동 실험의 장 서울외고, ‘통일은 삶이다

서울외고 학생들에겐 ‘통일’이란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2학년 교실 시간표에는 ‘통일’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통일교육은 일상으로 통일이 파고 들게 한다. 서울외고의 통일교육은 크게 정규수업, 동아리 활동, 방과후수업, 기타 활동 등으로 나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통일을 배우기보다 체득하고 있다.

우선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시간을 활용하여 ‘통일’이 정규수업으로 편성되어 있다. ‘터노코 통일이야기’로 특색을 살린 수업시간은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임에도 통일뉴스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정치부, 경제부, 문화부, 교육부, 사회정책부, 국제부로 나누어 통일이 된 날을 가정하였다.

서울외고 2학년 5반의 통일수업 현장

통일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학생들

우와! 주말에 버스타고 베이징에 놀러가도 되겠네요

경제부 모둠을 들여다보았다. 학생들은 통일 후 발생할 문제를 떠올리며 저마다 의견을 제시했다. “통일 후 경제적 어려움, 통일세, 향후 경제전망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을까?”(학생A) / “중요한 얘길 했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북한 정권이 사라졌을 때 공무원, 판사, 교사 등은 직장을 잃는 걸까?”(교사) / “그렇네요! 북한 출신 사람들의 실업 문제도 저희가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겠어요. 실업한 사람들을 위한 직업교육이나 취업교육도 필요한 문제겠어요. 학교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지?”(학생B) / “교과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것 같아. 혁명역사를 가르친 선생님은 그대로 고용하기 쉽지 않을 텐데….”(학생C) / “그럼 통일 이후 교사 재교육 같은 실질적 직업교육이 필요하겠군.”(학생D)

한편 문화부 모둠은 통일 이후 시베리아 철도가 연결되어 중국과 러시아와의 문화교류가 활발해 질 것이라 예상했다. “남북철도 연결로 구간별 역사테마 철도가 만들어 질 것 같아. 중국까지 철도가 연결되면서 고구려 시대 우리의 역사유적지, 상해 임시정부 등을 살펴보는 다양한 역사테마 철도가 생기지 않을까?”(학생E) /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교육협력도 더 활성화되겠지. 국경도시에는 다양한 어학원, 교육센터가 생길 것 같아.”(학생F) / “중국, 러시아로 수학여행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속버스터미널에 국경을 넘나드는 버스노선도 생기지 않을까?”(교사) / “우와! 주말에 베이징행, 블라디보스토크행 버스 타고 놀러가도 되겠네요. 지금보다 관광객도 훨씬 더 많이 늘어날 것 같아요.”(학생G)

학생들은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창의적인 미래를 제시했다. 이처럼 ‘터노코 통일이야기’ 수업에는 규칙이 있다. ‘상상하자, 경청하자’ 간혹 현실 가능성 없는 이야기도 언급되지만, 정답이 없는 수업이니 만큼 모든 게 허용된다. 서울외고 통일수업은 빈칸 있는 교육을 지향한다. 수업시간에 나온 이야기는 차곡차곡 <통일은 삶이다> 교재에 기록된다. 훗날 교재 속 상상이 실현되는 날을 기약하면서.

수업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UNI-KOREA)을 통해 빈자리를 채워간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권하연(2학년) 학생은 외교관이 꿈이다. 외교와 통일이 접목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가입했지만 동아리를 통해 특별함을 경험한다.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수업도 해보고 봉사활동도 했어요. 처음에는 문화나 언어 차이가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 친구처럼 편했어요. 축제 때는 북한 장마당을 모티브로 부스를 열어 두부밥이랑 인조고기를 팔기도 했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몇몇 애들은 진로가 바뀌고, 어느새 통일을 즐기고 긍정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학생들은 동아리를 통해 주체적으로 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방과후수업에서도 통일은 계속된다. 수업시간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보다 자유롭게 나누며 모의 6자회담, 남북포럼 등을 실시했다. 수업은 교실 밖으로도 이어져 그동안 남북출입국사무소 견학, 탈북 청소년과 연탄봉사활동 등도 진행했다. 남북 친구가 함께 하는 봉사활동은 한 학생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외고 2학년 5반의 통일수업 현장

서울외고 2학년 5반의 통일수업 현장

통일을 강요하지 마라, 통일을 대비하라!

서울외고 수업에서 남북 청소년이 함께 하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북한 출신 학생들이 서울외고를 방문하기도 하고, 서울외고 학생들이 대안학교를 찾아가기도 한다. 또 교외 활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서로가 교류하며 궁금했던 점을 알아가고, 고민을 나눈다. 교감 없는 일방적 교육은 반쪽짜리 통일교육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 출신 친구들도 남한 학교에 가본 경험이 없거나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어 서로가 궁금했던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 공부도 하게 되는 부수 효과도 있다.

서울외고 통일교육은 이벤트성 활동이 아닌 정기적 교육으로 이루어져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또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학생들의 호기심이 시발점이 되어 수업을 채워가기 때문에 참여율도 높다. 통일수업은 국제문제에 관심이 많은 서울외고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한 고민도 던지는 기회가 된다. 가령 국제사회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유엔의 MDGs(새천년개발목표)나 SDGs(지속가능개발목표)를 북한 개발협력에 적용하고 통일 후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지 창의성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울외고 통일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통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통일 후 생기는 문제점, 대안 등을 말하고 있다. 이나영 통일교육 담당교사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 안에서 수업을 진행할 경우 통일에 반대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바꿔야 하는 과정이 소모돼요. 그보다 우리는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통일을 직접 대면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삶이 어떻게 바뀔지 고민하게 하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학생 스스로 통일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뀔 필요가 있어요.”라고 했다. 이와 같은 확신이 든 건 수업이 진행될수록 생각의 폭과 삶의 태도가 변화하는 학생들의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여건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 이나영 선생님은 일선의 학교에서도 통일교육 시간과 교사교육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종 통일단원이 오면 뭘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다른 학교 교사들에게 연락이 와요. 교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교육은 무리가 따르죠. 체험활동시간의 적극 확보와 실질적 교사연수 같은 방안이 절실해요.”

이수영 발전기획실장

이수영 발전기획실장

교육이 실제 삶에 반영되지 못하면 죽은 교육

서울외고 통일교육은 ‘삶’을 강조한다. 앞서 소개했던 교재명마저 ‘통일은 삶이다’이다. 이처럼 서울외고 교육과정에는 학교 측의 특별한 교육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2014년부터 시행된 통일수업 개설에는 이수영 발전기획실장의 공이 컸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의 교육현장에 돌아온 그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미국에서 바라봤던 북한이 떠올랐다. 어렵게 살던 한 핏줄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작게나마 선교단체를 후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분단국가인 조국에서 통일교육을 정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갑자기 통일이 이뤄진다면 속수무책이 되겠구나.’ 이에 통일수업을 디자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업을 준비하며 제대로 된 교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론교육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교육이 실제 삶에 반영되지 못하면 죽은 교육이라고 생각했죠. 예를 들어 학교에서 영어에 중점을 둔 교육을 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한 마디도 못하잖아요. 자칫 통일수업이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정작 통일된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건 우린데 말이죠.” 통일로 인해 나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과 그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깨우침이 필요했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삶이다’라는 전제 속에 수업의 체계를 잡아갔다. 이론 전달보다 체험활동 위주의 교육으로 대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데 방점을 뒀다. “갑자기 ‘평양지부에서 일해야 한다고 발령이 났다, 그에 따른 삶의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통일이란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한 번의 경험이 창의성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고 있는 통일 DNA를 깨워라

“역사를 배울 때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배우죠. 하지만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어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금방 검색할 수 있어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현대에서 또 다른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배우는 겁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예요. 현재의 우리 삶에서 통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닫고 어떻게 나타날지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죠.” 이미 3만여 명의 북한이탈주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듯 어느 순간 통일을 일상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정말 통일이 도래했을 때 고민을 해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마음가짐과 자세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학생들은 활동 위주의 통일교육을 즐기고 자랑스러워한다. 다른 학교에는 없는 특별한 시간임을 잘 알고 있다. 수업을 할수록 이론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이에 대한 요구가 커졌을 정도이다. 학부모들도 처음에는 특목고라는 현실과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 속에서 “웬 통일?”이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실질적 활동 위주의 수업으로 점차 학교수업에 신뢰를 갖고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게 됐다고 한다.

이수영 실장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통일 DNA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현장에서 자고 있는 통일 DNA를 깨워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통일이 삶이 됐을 때 스스럼없이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깨어있는 사람, 그들이 통일한국을 주도할 것이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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