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김정은의 경제, 3개 축이 바뀌고 있다 2016년 5월호
특집 | 7차 노동당 대회 … ‘마이 웨이’ 김정은, 어디로?
김정은의 경제, 3개 축이 바뀌고 있다
북한이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만에 당 대회를 개최한다. 북한 내에서 노동당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5년여 만에 개최되는 것이라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 이목이 집중된다. 북한 역시 2월 말부터 ‘70일 전투’라는 이름으로 제7차 당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당 대회 준비에 동원되고 있을 듯하다. 특히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5년여 동안 달성한 성과를 재점검하고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념이 없을 것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번 당 대회가 36년 만에 열리는 것인 만큼 획기적인 정책전환, 예를 들면 개혁·개방의 선언과 같은 노선을 채택할 가능성도 조심히 점치는 상황이다. 과연 북한은 외부 세계가 기대하는 바대로 전면적인 정책전환을 선언할 것인가? 아니라면 어느 수준에서 경제 문제를 다룰 것인가?
북한의 당 대회는 대략 5년에서 10년 주기로 개최됐다. 당 대회에서는 지난 대회에서 제시했던 당의 전략 방향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5~10년의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따라서 이번 제7차 당 대회는 지난 제6차 대회 이후 36년을 평가할 것이다. 이 기간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김정일 시대 32년과 김정은 시대의 지난 4년이다. 김정일 시대의 경제 문제는 평가할 만한 내용이 별로 없다. 제6차 당 대회 이후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김정은 시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제1축 사회주의 계획경제, 농업 부문에서 변화 시작
북한 경제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째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다. 김정일은 1979년 북한이 사회주의 완성단계에 진입했음을 선포하면서 농민들에게도 월 생활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 인민의 노동자화를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협동농장의 생산성은 급격히 하락하면서 농업부문의 쇄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협동적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은 생산물량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모든 생산물을 국가가 거둬들이고 월 생활비 명목의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었다. 굳이 농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개별 농민들의 소득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텃밭 경작에 힘을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농장의 생산성은 떨어졌고,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식량배급이 중단되는 충격에 빠지는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 연쇄적으로 계획경제는 무너지고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인 경제 부문에 의존해서는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이를 극복해 냈다. 시장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면서 생존해 냈으며, 급기야 시장이 배급을 대체하는 일을 해냈다. 김정일 시대에는 강제적 수단을 동원하면서 시장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시장의 힘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면서 농업 부문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 1970년대와 같이 협동농장에서 생산된 농작물의 처분권을 농민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포전담당제의 운영방식을 변경했다. 과거에는 1년에 한 번씩 농지를 바꿔가며 경작을 했는데, 이제는 농지를 바꾸지 않는 포전담당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농장원들은 사실상 자기 땅이 생긴 것이며, 생산한 만큼 자기 소득으로 귀결되고 있다.
대략적으로 생산물의 30%는 국가에 바치며, 나머지 70%는 농장원들이 처분권을 행사한다. 이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시장의 곡물가격이 1kg 당
5천원 전후로 안정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부터는 경공업 부문에도 이러한 방식을 도입했다. 김정은 시대에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문에서 변화를 주었고, 일정 정도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 북한 경제의 기본 축 하나를 변경한 것이다.
제2축 중공업 우선 국산복합체, 농·경공업과 핵무력 병진으로
두 번째는 중공업 우선의 군산복합체다. 1962년 북한은 당의 경제정책 노선으로 국방경제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일제는 강점기 당시 한반도를 대륙진출의 병참기지로 만들려고 했다. 남한은 곡물공급기지, 북한은 기계공급기지 역할을 했다. 자연히 북한에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기반으로 중화학공업 공장들이 들어섰다. 전후 북한은 경제발전의 기본을 중화학공업 발전에 두면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것이 국방경제병진노선이었다.
김정일 시대에도 1990년대 중반에는 경공업, 농업, 무역 등 3대 제일주의를 주창하며 변화를 도모했지만 여전히 국방경제병진노선에는 변함이 없었고, 중화학 공업을 되살리려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결과는 없었다. 대부분의 중화학공업 생산기반은 노후화되고, 국방경제병진노선에 따라 많은 중공업 공장들을 지하에 배치함으로써 ‘전력과소비형’ 구조가 불가피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중화학 공장들은 가동이 중단됐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여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2013년 3월 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50년 만에 당의 경제정책 노선을 변경했다. ‘핵무력·경제건설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이는 국방경제병진노선과는 달리 국방 부문과 경제 부문의 분리를 예고했다. 국방 부문은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데 예산을 집중하는 한편, 경제 부문에서는 농업 및 경공업 부문의 정상화를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김정은은 2009년에 쓰라린 경험을 했다.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김정일이 쓰러진 이후 김정은의 활동은 2009년부터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이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150일 전투’였다. 북한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동원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비해 보자는 의미였다. ‘150일 전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추가적으로 ‘100일 전투’를 한 직후 전격적인 화폐교환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보고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중화학공업 부문이 정상화됐다는 보고는 거짓이었으며, 화폐교환으로 인한 주민들의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급기야 이듬해 4월 화폐교환 조치를 추진했던 박남기 당 재정부장이 책임을 지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김정일은 농업 및 경공업 분야의 정상화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성과에 대한 허위보고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연일 중화학공업 분야가 정상화됐다고 일면에 보도하던 <노동신문>에서 중화학공업 부문의 기사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농업생산성이 향상됐다느니, 경공업 부문의 공장이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국방경제병진노선을 핵무력·경제건설병진 노선으로 변경하면서 북한 경제의 두 번째 축을 바꾼 것이다.
제3축 자력갱생 노선, 점·선·면 중심 외자유치 전략으로
세 번째 축은 자력갱생이다. 제6차 당 대회 당시 북한은 이미 1970년대의 뼈아픈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1970년대 북한은 노후화된 중공업 설비를 대대적으로 교체하기 위해 자원을 내다 팔기로 했다. 그런데 사회주의권에서 설비를 들여오지 않고 서방 자본을 유치했다. 구소련이 시도했던 사회주의권의 단일화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했지만, 독불장군으로 남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국제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고 원리금을 갚기 어려워졌다. 당시 들여왔던 서방권의 외자는 여전히 북한의 채무로 남아있다.
따라서 제6차 당 대회에서는 다시 자력갱생으로 돌아갔다.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최소화함에 따라 북한의 대외의존도는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 역시 1990년대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원인을 제공했지만 역설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낮은 자력갱생을 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권 붕괴 당시에도 북한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일 당시에 대외의존도를 높였다면 지금과 같은 북한 체제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1990년대 중반 계속된 자연재해로 인해 북한의 지하자원 광산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오랜 기간 방치됨에 따라 거의 폐허가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중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자원 수요가 급증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은 중국 자본을 이용하여 석탄광산 등을 정상화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북한의 석탄 수출이 현저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거의 10년에 걸친 복구 작업의 결과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석탄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북한의 대외무역이 이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무역 증가를 주도한 수출품목은 석탄 등 지하자원이었다. 이와 더불어 남한 기업들이 투자하여 설비를 교체해 놓았던 북한 의류 부문 공장들이 2010년 5·24조치 이후 남북교역의 중단에 따라 중국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수출이 급증했다. 석탄을 수출하는 대가로 외자를 받아들여 경공업 부문 공장들의 정상화를 도모한 셈이 됐다. 무역의 증가는 대외의존도의 증가를 의미한다. 북한은 여전히 무역 부문에서는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석탄 수출이 급증한 점은 무역 계획을 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 시내에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체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만큼 차량이 증가했기 때문인데, 대부분이 북한에 투자한 중국 기업들이 가지고 들어간 차량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차량 증가를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중국 자본이 들어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여기에 경제특구 이외에 20여 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 이른바 점·선·면으로 확대하기 위한 외자유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평양 시내를 중심으로 대형 건축물과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최근에 완공된 과학자거리를 비롯하여 마식령 스키장, 원산시 개발, 러시아와의 철도 개발 등도 대부분 외국 자본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 경제의 세 번째 축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제7차 당 대회에서는 이런 점들을 부각시킬 것이다. 김정은이 직접 보고하는 당 대회 보고에는 경제 부문에서 앞으로의 방향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시대는 어려운 대내외적 환경 속에서도 경제 체제를 지켜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 것이며, 김정은 시대의 수많은 성과를 부각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5~10년의 개발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개혁과 개방이라고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경제 건설을 위한 방도는 개혁과 개방을 도외시하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지난 4년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동용승 / 오리엔탈링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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