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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겨레말 | 도둑질을 사촉하다? 2016년 6월호

알쏭달쏭 겨레말  

도둑질을 사촉하다?

 

1990년 어느날, 우연찮게 방범 초소에 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그 포스터에는 꽃미남의 경찰관이 해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푸르디 푸른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의무경찰 모집/업무 : 민생 치안 업무 보조’ 난 포스터의 그 아름다운 사진과 ‘민생 치안 업무 보조’라는 말에 시위 진압과는 전혀 상관 없을거라 생각을 했다. 얼마 후 난 의무경찰을 지원했다.

입대하여 논산에서 4주 군사훈련을 받고 충주 경찰학교로 이동하여 또 4주 경찰교육을 받았다. 경찰학교에 간 다음날 내 손에 주어진 건 진압복과 방패였다.

그렇게 시위 진압을 주로 하면서 군복무를 하던 어느날 중대장이 각 내무반이 너무 삭막하다며 내무반별로 만원을 줄 테니 화분을 사다 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를 받고 만원씩을 받아온 고참들은 나를 비롯한 졸병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사주했다. “만원은 내무반비로 쓸 것이니 오늘 심야에 방범 나가서 내무반별로 꽃이 있는 화분을 하나씩 슬쩍 갖고 올 것”

사주를 받은 우리는 그날 새벽 방범 근무를 마치고 각각 화분 하나씩을 슬쩍 주워와 닭장차에 싣고 왔다. 그런데 한 졸병이 도저히 만원으로는 살 수 없는 높이 150cm 정도의 어마어마한 것을 갖고 왔다. 그것을 운반하다 중대장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만원이면 꽃화분 정도여야 하는데 슬쩍 가져왔다는 티가 나도 너무 났던 것이었다.

중대장은 노발대발하며 도둑 잡으라고 내보냈더니 도둑질을 하고 왔다며 격노했다. 얼른 제자리에 도로 갖다 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중대장과 함께 우리가 화분을 가져온 곳을 일일이 다니며 화분이 원래 있던 곳에 고이 놓고 왔다.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남을 부추겨 좋지 않을 일을 시킴’의 사전 풀이를 갖고 있는 ‘사주’이다. 이 말은 남과 북 모두 있는 말이고 의미도 같지만 남과 북의 사전을 찾아보면 풀이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남은 ‘사주’에서 풀이를 주고 동의어로 ‘사촉’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북은 ‘사촉’으로 풀이를 돌리고 있다. 북에서 ‘사주’의 풀이로 돌린 ‘사촉’은 우리는 거의 쓰지 않는 매우 생소한 말이다. 이런 남과 북의 풀이 방식의 차이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남은 실생활에서 ‘사촉’은 쓰지 않고 ‘사주’를 쓰고, 북은 반대로 실생활에서 ‘사촉’을 쓰고 ‘사주’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하단의 북측 용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쪽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사주하다’라는 말을 쓰면 북쪽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로 북쪽 사람이 우리에게 ‘사촉하다’라는 말을 쓰면 우리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같은 말이지만 어떤 말을 더 많이 쓰는지에도 남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사주’와 ‘사촉’에서 알 수 있다.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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