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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 스위스 사업가가 그린 내밀한 나라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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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스위스 사업가가 그린 내밀한 나라

스위스 전력회사인 ABB그룹의 대표 자격으로 북한에 머물며 지낸 7년 동안 저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인상 깊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저자처럼 평범한 북한 주민들 곁에서 그들과 일하고 대화하는 이와 같은 기회를 얻기란 매우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그러한 흔치 않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은둔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들을 담아낸다.

북한의 실상에 관한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시선들 중에 유럽의 투자자들과 북한 간의 합작회사인 ‘평수제약회사’의 사장으로 근무하던 기간에 관한 설명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2005년에 평수제약에 참여하자마자 그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짜야했다. 즉 저가이면서 동시에 품질을 예측할 수 없는 국영회사의 제품들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평수제약회사의 시장조사에 따르면 평양과 여타 도시의 부유한 소비계층들에게는 억눌린 수요가 존재하고 있었다. 평수합작회사는 이미 국유병원이 아닌 개인병원과 약국에 판매 역량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익힌 바가 있다. 국유병원의 책임자들은 사적으로 운영되는 제약회사를 사회주의 보건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수제약회사는 자신들의 제품에 대한 예상고객들을 대상으로 수요를 촉발시키기 위한 전략을 고안해 냈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성에 따라 저자는 의과대학 졸업생인 한 박사와 인터뷰를 나누고 그를 고용하기도 했다. 국영기업과 합작회사, 사유화된 기업 상호 간에 벌어지는 이 같은 ‘판매 전략’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전자상거래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북한의 가정과 사무실에서 어떻게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는지는 북한의 현재에 대한 궁금증 중에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인터넷 사용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북한의 전자상거래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러한 외부의 궁금증을 일정 정도 해소시켜 주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에 컴퓨터가 얼마나 보급되어 있는지를 판독할 수 있는 보다 많은 단서들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 책은 폐쇄되고 정체되어 있는 이미지의 북한에서 벌어지는 동적인 움직임, 남녀 및 세대 간의 관계, 공적인 분배체계,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태도, 시장의 작동방식, 회사가 사무실을 구하는 방식과 주민들이 직업을 구하는 방식 등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북한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결론 내리면서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하고,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오직 그것만이 답이라고 확신한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사업파트너로서 자신을 대했던 북한 정권에 대한 특권적 경험에 따른 소박한 인식이 품어낸 기대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모든 걸 제껴두고 이 책에서 보여주는 보다 내밀하고 구체적이며 밀도가 높은 설명 사례들의 축적은 그 자체로 북한의 변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경로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출간이 갖는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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