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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北 | 오형근 <군인>, 우리들의 자화상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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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56

오형근 <군인>, 우리들의 자화상

오형근, Plate no.5, A corporal on red clay, 2010

오형근의 사진에 담긴 문제 의식은 한국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의 <군인> 연작은 의무로 모인 집단의 구성원인 군인을 통해 분단의 현실과 역사적 트라우마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특정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다. 케빈 아르브흐가 논한 바와 같이 역사적 트라우마는 “개인적 상처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국가 역시 그들의 역사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도미닉 라카프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직접적인 체험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하는 특정 집단 내부에서 전이되는 감염체계를 가진, 후천적이면서도 이차적인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세대 중 다수는 6·25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하나의 거대한 트라우마가 되어 지속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반도에 냉전 시대가 존립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역사적 트라우마가 지속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현재의 한국을 이해하는 주요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의 삶과 기억에 전쟁과 분단이라는 기제가 제도화·내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형근은 군인들을 화면에 담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를 겨루며 서 있는 군인들은 분단의 실체다. 오형근 작품의 공통점은 군인들의 내면에 억압된 공포감과 불안정함, 연약함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더불어 태연함과 무관심도 함께 보여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오형근, Plate no.28, A soldier with a poncho in front of camouflaged tent, 2011

오형근, Plate no.28, A soldier with a poncho in front of camouflaged tent,
2011

잠복된 역사적 트라우마의 현장, 군인 얼굴에 그대로

오형근의 사진은 어떠한 폭력성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실제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북한의 상존하는 위협 또한 부재한 듯 보인다. 대신 잠복된 역사적 트라우마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폭력을 예감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애쓰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역사적 트라우마가 한 개인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나타내는 것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올려도 국내에선 라면이나 생수 사재기 풍경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국내 매스컴의 뉴스조차 되지 않는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이 최근 “한국 괜찮아? 한국으로 여행 가려고 했는데 취소해야겠지?”라고 불안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올 때도 정작 그 속의 우리 일상은 평화롭다. 생필품 사재기가 벌어지지 않는 것은 국민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현실을 망각하고 싶은 욕망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역사적 트라우마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분노보다는 망각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형근의 <군인> 연작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전쟁의 상처가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군인’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연상되는 ‘총’, ‘적’ 등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의 화면에는 군인의 내면에 억압된 ‘공포’와 ‘불안정’, ‘연약함’이 보다 두드러지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우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오형근의 화면 속 ‘군인’은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고 형, 오빠, 동생의 모습과 겹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의 삶은 집단 망각의 기제가 작동되어 현실의 신냉전 체제 속에서 드러나는 공포와 불안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듯 느껴지지만, 우리들의 내면은 오형근이 보여주고 있는 군인들처럼 이러한 삶 속에서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그래서 오형근의 군인들은 바로 나의 자화상 같이 다가온다.

 박계리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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