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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독재, 내전 그리고 인권유린 … 요원한 우간다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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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28

독재, 내전 그리고 인권유린 … 요원한 우간다 민주화

지난 2011년 9월 8일(현지시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한 시민이 장기 독재자 축출 기념 집회에 맞춰 걸린 현수막 앞을 지나고 있다. 왼쪽부터 벤 알리(튀니지), 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가장 오른쪽은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연합

지난 2011년 9월 8일(현지시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한 시민이 장기 독재자 축출 기념 집회에 맞춰 걸린 현수막 앞을 지나고 있다. 왼쪽부터 벤 알리(튀니지), 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가장 오른쪽은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연합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리는 우간다는 빅토리아 호수의 풍부한 수자원과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여러 곳을 지정할 정도이며, 영화 <타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 환경도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우간다는 아프리카 대륙 중동부에 위치하며 국토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한 23만㎢의 내륙국가로 동쪽으로는 케냐, 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 남쪽으로는 르완다, 탄자니아, 북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간다의 인구는 2015년 기준 3,710만명이며, 1인당 GDP는 696달러로 저소득국가에 속한다.

1962년 독립 이후 5차례 쿠데타와 3차례 정변 거쳐

우간다는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약 20년간 다섯 차례의 쿠데타와 세 차례의 정변을 거쳤다. 독립 이후 정부의 구성을 둘러싸고 다양한 그룹들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1966년 오보테(Apollo Milton Obote) 총리가 헌법을 중지시키고 대통령과 부통령을 축출하면서 정국 불안이 본격화 되었다. 오보테는 1967년 9월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신헌법을 선포하고 부족 왕국을 없애 버렸다.

1971년 1월 25일 오보테는 아민(Idi Amin)이 이끄는 군사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아민이 통치한 8년 동안 경제는 피폐되었으며, 극심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1978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아민의 집권 기간 동안 적어도 10만명 이상의 우간다인들이 살해되었다고 추정했다. 우간다 망명 세력인 우간다민족해방전선(UNLF)이 1979년 4월 탄자니아의 도움을 받아 수도 캄팔라를 비롯한 전 국토를 장악하면서 아민 통치는 막을 내렸다. 1980년 12월 실시된 선거에서 전직 대통령인 오보테가 이끄는 우간다인민회의(UPC)가 승리해 오보테가 대통령에, 무완가(Paulo Muwanga)가 부통령에 취임했다.

오보테 타도를 목적으로 무세비니는 국민저항군(NRA)을 조직해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오보테는 NRA를 토벌하기 위한 전국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도 캄팔라 북부의 루웨로 등 주요 지역이 파괴되었고, 일반 주민을 포함해 약 20만명이 사망하는 등 오보테 정권은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을 자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985년 7월 아콜리족이 중심이 된 쿠데타에 의해 오보테 정권은 붕괴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오켈로(Okello) 장군을 국가수반으로 추대했다. 초기에 오켈로는 NRA와 연정을 구상하는 등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1985년 가을 케냐 대통령 모이(Moi)의 중재 하에 만들어진 정전 및 연립정부 구성안을 NRA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오켈로 대통령은 NRA에 대한 군사적 진압을 실시했다. 양측은 1985년 말 정전에 합의하지만 NRA 측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1986년 1월에 군사정권은 무너지고, 오켈로 대통령은 이웃국인 수단으로 도주했다.

이후 NRA의 지도자인 무세베니(Museveni)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무세베니는 취임 후 국민저항운동(NRM)의 일당체제를 구축했다. 무세베니와 여당인 NRM은 인권 상황의 대폭적인 개선, 언론 자유 등을 통한 민주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과의 협의를 거친 경제개혁을 약속했다. 민주화를 위해 새로운 헌법을 도입하고, 1995년 7월 자유선거를 통해 제헌의원이 선출되어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으며, 동년 10월 8일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후 무세베니는 4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무세베니는 집권 기간이 길어지면서 초반의 긍정적 이미지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아콜리족에 대한 잔인한 학살 행위를 일삼았다. 이로 인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장조직 ‘신의 저항군(LRA)’이 조직되어 중앙정부와 무력충돌을 벌였다. LRA의 조셉 코니(Joseph Kony)는 우간다인민민주군(UPDA)과 합세해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무세베니 정부는 1991년부터 이들을 진압하기 위한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정부군의 진압작전으로 종전까지 종교적 근본주의 입장에서 소수부족 보호를 추구했던 LRA는 무세베니를 타도하고 우간다 북부 지역에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조직을 강화했다. 또한 LRA는 인접 국가인 수단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무기를 지원 받아 정부군에 대항했다. 이를 문제 삼은 우간다는 수단과 1995년부터 4년간 외교관계를 단절하기도 했다. 20여 년간 우간다 정부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수행하던 LRA의 조셉 코니는 2005년부터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8년 이후 지도자의 부재로 LRA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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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주도권 위한 내전의 연속 수십만명 목숨 잃어

2014년에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LRA의 우간다 전투원 20%가 정부에 투항했다고 한다. 조셉 코니가 은신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직도 LRA 전투원들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조셉 코니를 체포하기 위해 특수부대원을 우간다에 보내기도 했다. 우간다 내전은 부족 및 정치 세력들이 정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시작된 정쟁으로 이 과정에서 아민과 오보테 같은 최악의 독재자들이 집권, 사상 유례없는 인권유린을 자행해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간다의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이 내전은 국제 및 지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수단,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의 최대 분쟁 국가들로 둘러싸인 우간다에서 내전이 확대됨에 따라 인접국들과의 긴장도 고조된 바 있다.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압박으로 조셉 코니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우간다 내의 LRA 세력도 거의 와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접 국가에 남아있는 LRA 잔존 세력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를 위해 우간다 정부의 인접 국가들과 공조를 비롯해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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