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8월 1일 0

Zoom In | 두 바퀴 자전거로 북한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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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자전거로 북한을 보다

북한에서 계획경제가 무너지고 자생적으로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장터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장사꾼들에게 장사더미를 실어 나를 교통수단은 긴요했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국가의 교통망은 형편없었다. 철도가 주 운송수단이었던 사회주의 교통망 체계에서 전력이 돌지 않자 장사꾼들이 대체 교통편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이 바로 자전거였다. 평성 출신의 한 탈북자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로 북한에 자전거와 중고차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이러한 운송수단들마저 막아버렸다면 생계수단이 막힌 주민들의 저항은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장사로 생계를 연명하는 장사꾼들에게 자전거는 결국 생명줄일 수밖에 없으며 경쟁에서 이겨나갈 소중한 수단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북한에서 자전거는 남한의 고급 승용차 정도의 가치를 갖는 고가품의 대우를 받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 2010년 탈북자 면담을 통해 조사한 북한의 자전거 이용 실태에 따르면 자전거 한 대의 가격은 장마당 가격을 기준으로 북한 주민의 월급 수개월에서 수년 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한 때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일본산 중고 자전거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함흥 출신의 한 탈북자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자전거 ‘데끼’라고 있었어요. 일반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인데 북한에서는 6천~7천원 했죠. 당시 짐 자전거로 사용한 ‘야마하’는 1만원 정도 했어요. 그때 월급이 50원 정도니까 6천원이면 어마어마한 돈이죠.”

자전거, 최고의 장사 밑천이자 가보(家寶)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윳돈이 넉넉하지 않은 일반 주민들은 자전거는 꿈도 꾸지 못하고 걸어서 행상을 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고리의 빚을 내 자전거를 구입한 뒤 장사를 하면서 갚아나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북한 주민들에게 자전거는 최고의 장사 밑천이자 ‘가보(家寶)’였던 것이다.

이처럼 달라진 사회·경제적 풍경에 따라 귀한 대접을 받은 자전거는 중국 및 일본과 교역 또는 밀무역을 통해 북한으로 쉼 없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북한에서도 자체적으로 자전거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제품이 ‘제비’와 ‘모란봉’이었다. 그러나 디자인이 조잡하고 무엇보다 내구성이 떨어져 짐을 싣고 장삿길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에게는 그저 있으나 마나한 고철이었다. 평성 출신의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산으로 알려진 자전거들은 대체로 중국산을 가져다 덧입힌 제품들이라고 한다.

“중국 자전거를 가져다가 북한말로 변형을 해서 팔거든요. 북한에서 제일 유명한 자전거 ‘모란봉’이 다 중국산이에요.”

이런 이유로 ‘미야다’ 같은 일본산 중고 자전거들이 화물수송 수단으로 적합하여 많은 장사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지난 2005년 북한은 중국과 합작을 통해 대량으로 자전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자전거에 대한 폭발적인 대중적 수요에 따라 북한 당국도 자전거 시장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북한 자전거 시장이 날로 발전해 세분화되는 가운데 제품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체 유통망과 수리 및 부속품 공급 등 서비스를 담당하는 하부 시장까지 생성된 가운데 자전거 등록과 면허 제도가 시작되고 자전거 전용 도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 북한에서 자전거는 고가의 장사 밑천이자 빈부 격차를 드러내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던 평성 출신 탈북자의 말은 자전거가 가진 이러한 다양한 맥락을 표현한다.

“일반 주민들은 논에서 허리 구부려 모 심고 있는데, 자동차가 가끔씩 다니는 큰 도로로 여자들이 스카프 날리면서 외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얼마나 부러웠겠어요.”

또한 가부장질서를 못마땅해 하는 풍속의 출현이자 균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한의 자전거에 관한 상당수의 기사는 여성들에게 자전거를 금지했다거나, 이를 다시 풀어줬다거나 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이야기겠으나 북한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조선의 민족적 미풍양속’을 해치는 옳지 못한 품행으로서 당국의 단속 대상이었다.

자전거 타는 여성, 미풍양속 해쳐? 한가로운 궤변일 뿐

그러나 북한에서 장사를 통해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이 주로 여성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미풍양속’ 타령은 당장의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북한의 여성들에게는 너무도 한가로운 궤변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평양 등지의 수많은 여성들이 자전거를 통근과 산책, 유희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단속이 지닌 이중성과 자의성이 어떤 맥락과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지는 너무도 자명하게 다가온다.

북한의 자전거만 놓고 볼 때도 하나의 사물이 주민 각자의 처지에 따라 얼마나 다층적인 맥락 속에서 해석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는 거꾸로 북한 사회를 특정 사물과 기호를 통해 바라볼 때 뻔해 보이는 북한 주민의 삶이 보다 풍부하고 복잡한 면모로 다가올 여지가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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