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0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북한의 민족 최대 명절, 학교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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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46

북한의 민족 최대 명절, 학교 분위기?

지난 4월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청년학생들의 무도회가 평양 등지에서 진행되었다. ⓒ연합

지난 4월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청년학생들의 무도회가 평양 등지에서 진행되었다. ⓒ연합

남한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면 설날과 추석을 떠올린다. TV에서 방영되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과 명절 대목을 노리고 개봉한 극장가의 영화들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명절 하나에 온 나라가 이렇게 분주한 모습을 보면 북한에서의 명절이 떠오른다.

북한은 워낙 거주와 이동의 자유가 없다 보니 먼 고향에 벌초하러 간다든지 고속도로가 정체된다든지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대신 명절을 계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기로는 세상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기관이나 학생들이라고 예외가 없다.

북한에는 9개의 국가적 명절과 4개의 민속 명절이 있다. 월별 순으로 보면 신정인 1월 1일, 김정일 생일 2월 16일, 김일성 생일 4월 15일, 건군절 4월 25일, 국제노동자절 5월 1일, 광복절 8월 15일, 국경절 9월 9일, 당 창건절 10월 10일, 헌법절 12월 27일이 9대 국가 명절이고 음력 설, 한식, 단오, 추석 이렇게 4대 민속 명절이 있다.

김일성·김정일 생일 진땀 빼는 교사·학생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 자칭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이날 학교에서는 학생이든 교사든 여간 들볶이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행사는 교직원과 학생들의 ‘충성의 노래모임’이다. 쉽게 설명하면 노래와 춤을 통해 지도자께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다. 충성의 노래모임은 교육기관뿐 아니라 기관, 기업, 동사무소 등 사회 전반적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행사다. 학교별로 김 부자의 생일을 보름, 많게는 20일 정도 앞두고 노래, 춤이나 악기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간다. 음악 소조(음악 동아리 혹은 밴드)가 있는 학교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연습한다. 감독은 음악 교사가 맡고 총지휘는 학교 초급 당 비서, 혹은 직속 세포 비서가 맡는다.

문제는 교사들이다. 수업하랴, 학급 관리하랴 할 일이 이만저만 아닌데도 오후 4시부터는 충성의 노래모임에 동원되어 진땀을 빼야 한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으면 충성심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어 1년 내내 보고서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나이도 상관없다. 교단에 오래 선 머리 희끗희끗한 노(老) 교사들도 대열을 맞춰 노래 부르고 동작을 맞추느라 애를 먹는데, 이걸 지켜보는 학생들은 좋다고 킥킥 거린다.

이 외에도 ‘문답식 경연’이란 게 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위주로 그들의 혁명 사상과 영도 업적에 대한 학습 자료를 가지고 교사들이 하는 학습 경연이다. 이것도 문제다. 제시된 김일성, 김정일의 노작들을 공부해야 하고 노래 가사도 암송해야 한다. 최근엔 노동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이 무조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치학습, 강연회, 혁명영화학습 등이 수시로 열려 2월과 4월에 교사들이 제대로 교수안을 쓸 시간도 없다.

이 시기에 학생들도 고생은 마찬가지다. 소년단 및 청년동맹을 주축으로 한 학급별 문답식 경연, 도록 경연(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도록판 내용들을 암송하는 경연), 당에서 지정해준 학생 소년들이 반드시 불러야 할 시와 노래 경연, 학생춤(‘항일아동단가’라는 노래에 맞춰 학급이 집체적으로 원을 그리고 추는 춤) 등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김일성의 생일은 봄 계절이라 도, 시, 군 연합 단체대회를 매우 크게 여는데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사열식이다. 학생들이 학급별로 열을 맞춰 발을 높이 들고 행진하는 것인데 TV에서 보는 북한군 열병식과 똑같다.

또한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거리와 마을 꾸리기 캠페인이 벌어지는데 학생들이라고 편할 새가 없다. 교실 꾸리기, 담당 구역 꾸리기 등으로 인해 학생들은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진땀을 뺀다. 국가적 후원이 없는 북한의 교육 실상에서 필요한 자재는 모두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오다 보니 금전적으로 고민이 많고, 석회 칠, 바닥 도색, 복도와 마당 등 담당 구역 꾸리기 및 청소 등을 학생들이 직접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한다. 그래서 북한의 교사들은 이 시기엔 대체로 숙제 검사도 대충 하고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들을 크게 혼내지도 않는다.

군대처럼 사열식에 각종 꾸리기의 연속?

시기적으로 봐도, 기말고사가 다가오는 학년의 막바지 시기인 김정일의 생일에 비하면 김일성의 생일은 새 학년이 막 시작되어 정신없이 바쁠 때다. 안 그래도 봄을 맞으면서 새로 교실을 꾸미고 겨우내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 시기인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니 모두가 더 긴장하게 된다.

이렇게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 들볶이다 보니 다른 명절들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민속 명절은 조상께 제사를 잘 지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미신이 팽배하면서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어려운 집들은 돈을 꿔서라도 제사상에 사과 한 알, 물고기 한 마리라도 놓으려 한다.

9·9절, 즉 북한 정권 창립일이나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일은 학교나 사회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수도 평양에서나 행사를 하고 이것을 TV에 방영하며 체제 선전에 이용할 뿐, 지방에서는 전날에 기념보고대회, 당일 저녁엔 청년학생무도회가 있는 것이 전부다.

한 사람을 위한 나라, 한 가문을 위한 나라라는 인식이 어릴 때부터 뇌리에 박혀있으니 북한 사람들은 민족 최대의 명절을 제외한 다른 명절들에는 요란하게 떠들지 않고 긴장감을 늦춘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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