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0월 1일

Uni – Movie | 맥아더와 잊혀진 영웅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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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 – Movie  <인천상륙작전>

맥아더와 잊혀진 영웅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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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자유공원에 가면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한때 동상 철거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인천’하면 여전히 우리는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를 떠올린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에서 반전의 한 획을 그은 인천상륙작전과 그 전초전이 된 ‘X-RAY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인 X-RAY 작전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 분)의 활약과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인 ‘림계진’(이범수 분)과의 대립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의 유명 배우인 리암 니슨이 맥아더 역을 흔쾌히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맥아더는 미국이 1900년대를 통틀어 전 세계의 모든 전장을 통해 배출한 유명한 장군 가운데 한 명으로 특히 아시아 전선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맥아더는 일본의 패망부터 한국전쟁까지 아시아 전선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훗날 군 전역 이후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는 실패했지만 군인으로서의 인생으로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말은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과의 불화 이후 퇴임식 연설에서 남긴 명언으로 그를 대표한다.

실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이 북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리암 니슨 분)는 많은 반대 속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다. 대부분의 미국 군인과 정치인들은 불가능한 작전이라고 혹평하면서 계획 수정을 요구했지만 맥아더는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을 패전으로 이끈 적장이자 총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맥아더 사랑은 남달랐다. 일본 총독으로 근무한 맥아더에게 일본인들의 선물과 팬레터가 44만 통이나 배달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도 있었다. 맥아더는 오늘날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이미 1950년대에 실천한 인물이다.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목숨 건 활약 실존 인물 모티브로!

그동안 인천상륙작전의 전모가 맥아더에 의해 가려져 왔지만 영화를 통해 우리 군의 목숨 건 활약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영화의 제목은 ‘인천상륙작전’이지만 주 초점은 ‘X-RAY 작전’이다. 이 부분은 실화를 모티브로 했으며, 실제 작전에 해군 특수첩보대 임병래 중위 등 17명이 투입됐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장학수(이정재 분)는 사실상 실존 인물인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의 영웅담을 섞어 놓은 가공의 인물이다. 이 두 명의 실존 인물을 장학수라는 가상의 인물로 합쳐 놓은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으로 잘 녹여냈고 배우 이정재는 그 부분을 잘 소화했다.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전 연령대가 극장을 찾아야 한다. 대체로 영화관을 찾는 세대가 젊은 층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시니어 관객의 동원 여부가 흥행의 성패를 좌우한다. 맥아더가 정치인과 군부의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 평단의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둔 것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감상 포인트

리암 니슨의 맥아더 역 수락으로 유명세를 탔던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지난 8월 개봉 이후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직전에 전문가, 기자단의 혹평으로 인해 흥행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역시 영화 흥행은 전문가 집단의 평가와 무관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영화의 비난 행렬에는 북한도 한 몫 거들었다. 북한은 “남한에서 망신스러운 전투를 영화까지 제작했다.”면서 인천상륙작전을 폄하했다. 사실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김일성으로서는 뼈아픈 전략상의 실수였고 ‘조국해방전쟁’이 실패한 원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2년 제작한 영화 <월미도>를 통해 월미도에 주둔한 100여 명의 해안포 중대가 3일 동안 상륙작전을 저지하면서 북한군의 후퇴를 도왔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치욕스러운 전투였다고 폄하하고 있다. 북한식 역사 왜곡의 일면이다.

생각해 볼 문제

  •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켈로부대 등 한국인 부대 활동을 조사해 보자.
  •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갈등에 대해 알아보고 이들의 갈등이 한반도 정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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