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0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 北 | 백두대간이 품은 바위에서 분단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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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北 58

백두대간이 품은 바위에서 분단을 보다

로저 세퍼드, , 백두대간 시리즈, 함경남도 부전군 옥련산, 사진, 2012.

로저 세퍼드, <돌강>, 백두대간 시리즈, 함경남도 부전군 옥련산, 사진, 2012.

일본 교토에 있는 오타니(大谷) 대학교에서는 2016년 9월 20일부터 30일까지 뉴질랜드인 사진작가 로저 세퍼드(Roger Shephered)를 초정하여 <Just Korea – 코리아의 산은 이어지다> 전시를 열고 있다. 현재 전남 구례 지리산 근처에 살고 있다는 로저 세퍼드가 한반도의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2007년부터 남한 소재의 산맥을 훑으며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했고 지난 2011년과 2012년 에는 북한으로 이어진 산맥을 답사했다. 그는 분단 이후 남북한의 백두대간을 등반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지리산 종주에 나선 지난 1월 5일 새벽 5시 로저 세퍼드는 말했다. “저는 여전히 결단을 못 내렸어요. 막걸리 몇 병을 챙겨갈 것인지가 문제였어요. 결국 깊은 한숨을 쉬며 한 병을 뺐죠. 두 병만 가지고 가기로 했어요. 남한 사람만 산에서 술을 마시는 줄 알았는데, 북한 사람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북한은 더 심해요. 물은 안 챙겨도 술은 꼭 챙기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젠 저도 술 없인 산에 못 가겠어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새삼 우리의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파란 눈의 그가 찍은 백두대간을 보았을 때 시선에 꽂힌 것은 바로 작품의 물성(物性)이었다. 그가 바라다 본 백두대간의 모습은 ‘이어진 산’의 장대한 스케일이었고 따라서 함경북도 무산군의 대노은산 정상에서 백두고원을 바라보며 제주도의 오름을 떠올렸다는 감상은 매우 실감나게 다가왔다.

로저 세퍼드,  백두대간 시리즈, 사진, 2015.

로저 세퍼드, <백아산> 백두대간 시리즈, 사진, 2015.

로저 세퍼드 <돌강>, 그 물성이 분단의 현실 같아

그의 작품 중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문 작품은 바로 <돌강>이었다. 함경남도 부전군의 옥련산에 있다는 일명 <돌강>을 찍은 사진이다. 너럭바위는 어른 4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크기인데 이런 돌이 2km 넘게 이어져 강을 이루듯 펼쳐져 있었다.

로저 세퍼드는 말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둘러봐도 강물이 보이지 않는데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그 곳이 돌무더기만 가득한 <돌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대한 바위틈으로 아무리 내려다보아도 강물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큰 바위들이 집적되어 있는 <돌강>의 풍경은 거대한 무게를 갖는 바위의 물성이 여과 없이 전달되어 오는 사진이었다. 그래서 더욱 강렬했다.

물이 흘러야 할 곳에 거대한 바위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돌강>의 풍경은 어느 틈엔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현실을 응축해내고 있는 듯 다가왔다. 하나하나 굴러온 바위가 강을 이루듯 쌓여 서로가 서로의 무게 때문에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형국. 그 끝이 보이지도 않아서 이 돌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빼내야 다시 강물이 흐르게 될지 엄두가 나지도 않는 이곳.

그런데 로저 세퍼드는 이곳에서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물리적 상식을 벗어난 그 역설이 다시금 이 공간에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들었다는 소리는 아마도 이곳이 원래 강물이 흐르던 곳이었다는 시간의 역사가 전해주는 환청일지 모른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지만, 어느 틈에 우리는 순간적인 낭만적 회고에 익숙해져 그것이 어떠한 에너지를 생성해내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소리’의 현존은 회고적인 낭만에서 나아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저 깊숙한 어느 곳에서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동시대성을 표상하고 있다. 그래서 ‘소리’의 현존은 저 돌무더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과 눈을 아리도록 흔들리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분단이라는 현실은 <돌강>의 물성을 닮아있다. 그래서일까? 한반도의 허리를 종주하는 로저 세퍼드는 백두대간의 답사가 왜 ‘순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발견해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물론 그의 사진에는 ‘외국인의 눈’이라는 타자적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타자적 시선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민감하게 살펴봐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로저 세퍼드의 전시회가 오타니 대학교의 일본인 키다 에미코 교수와 재일동포인 정우종 교수의 공동기획으로 교토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층적인 타자의 시선이 우리의 분단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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