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and the City | 평양, 파스텔 빛 신기루 속으로
N.K and the City 5
평양, 파스텔 빛 신기루 속으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대를 상징하는 거대하고 군사적인 기념물 대신 여가와 즐거움을 특징으로 한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폭이 15ha에 달하는 워터파크는 김정은이 시작한 건설 붐의 일각에 불과하다. 밖으로는 핵 위협을, 안으로는 전근대적인 숙청을 가하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평양과 대도시의 중산층들을 겨냥한 건축물로 지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공식 구호 중 하나였던 “건설의 황금기를 마중 나가자!”는 야망은 이미 스카이라인에 펼쳐진 수많은 크레인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백두산건축연구원’은 북한의 건축 프로젝트 대부분을 설계한 곳이다. 이곳의 로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스카이라인에 나타날 때마다 평양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식이 되어 있다. 그들은 ‘평양속도’와 ‘마식령속도’를 언급하며 지도자들이 빠른 속도로 건설을 촉구하는 ‘속도전’의 전통을 설명한다. 평양의 도시 주변을 둘러본 해외 방문객들의 기사를 엿보면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인들은 지난해 10월 당 창립 70주년을 맞아 김정은의 최대 치적 프로젝트인 미래과학자거리의 새로운 탑을 완성하기 위해 경주를 벌였고, 다른 곳에서는 갓 포장된 자전거 도로가 강둑을 따라 펼쳐졌다. 개인 소유의 자동차는 대부분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도로는 여전히 한산한 듯 보이지만 신호등과 등을 켠 신규 택시들도 종종 눈에 띤다.
동화 같은 조망과 웅장한 건축물에 둘러싸인 수도
전체적으로 보면 평양이라는 장소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도시를 휘감는 확성기에는 ‘온 사회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자’는 공식 구호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주체 타워라는 평양의 거대한 오벨리스크에서 내려다 보는 수도 평양의 전체 조망은 마치 동화 같다. 파스텔 톤의 아파트 블록과 분홍빛의 바다, 청색과 청록색이 어우러진 유원지와 공원들이 지평선을 따라 뻗어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전체주의적 혹은 국가주의적 키치(kitsch)라 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란봉 지구의 중심부에 있는 원형 교차로에서 파리 개선문을 본 뜬 거대한 아치를 마주하게 되는데, 김일성의 70번째 생일에 2만5,500개 블록의 화강암을 들여 지었다는 개선문의 3층 지붕은 무려 10m나 되는 파리 개선문보다 더 높다. 김정일이 말한 것처럼 ‘웅장함’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와 방대한 수량으로 결정된다.
이 거대한 국가주의 키치 건축의 대부분은 권력자의 야망이 특출났던 1980년대에 지어졌다. 고난의 행군을 예감해가던 그 시기의 야망은 로켓처럼 도시를 감싼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류경호텔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2012년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장한 회전식 식당 다섯 곳을 모아 놓았으나 아직도 미완성인 채로 흉물스런 꿈의 껍데기를 벗지 못하고 있다. 평양에서 수도의 주요 거리에 대한 디자인 전략 개발에 초점을 맞춘 일주일 간의 워크숍에 참여한 한 해외 건축가는 “북한 건축가들이 기술적으로 숙련되어있어 디지털 모델을 빠르게 만들 수 있었고 꽤 잘 표현할 수 있었지만, 건물의 외형에만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도시 내부에 숨겨진 사회주의 속살의 진상은?
그들은 웅대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평양은 쌍둥이 자녀를 둔 어머니 모양으로 계획된 산원에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포옹을 상징하는 반원형 모양의 만경대학생궁전에 이르기까지 매우 대표적인 건물의 역사를 보여준다. 청춘거리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해 지어졌으며, 한 쌍의 덤벨 모양의 역도 운동기구부터 비행 셔틀콕의 호를 모델로 한 배드민턴 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NBA 스타 데니스 로드맨이 김정은 옆에 앉아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소비에트적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국가주의의 키치는 평온한 번영의 이미지를 투사하려는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표상한다. 이 키치의 세계를 벗어나면 유쾌한 번영의 이미지가 대체로 환상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버려진 공장들은 흐릿한 색채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콘크리트 아파트 옆으로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유희의 돔 밖,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사회주의 속살의 대부분은 여전히 전력 부족, 만성적인 식량 불안, 의료 및 교육의 전반적 악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평양에 펼쳐진 파스텔 컬러의 신기루와 국가주의적 키치 문화와의 대비 속에서 그 회색의 톤이 더욱 짙게 드리운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