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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북한엔 함흥냉면이 없다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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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1

북한엔 함흥냉면이 없다

남북한 음식에 대해 말한다면 한식이라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같다. 주식인 밥과 된장, 간장, 김치, 떡, 찌개, 튀김 등을 먹는 것은 동일하지만 지역마다 조리법이나 음식명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분단이 지속된 결과, 같은 음식을 두고도 이름이 달라 착오가 생기거나 완전히 다른 음식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사투리에 비유하자면, 자주 접하는 사투리는 알아듣지만 처음 듣는 사투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한 생활 초기에 식당에 가면 메뉴를 고르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내장탕, 순대국 같은 것은 알겠는데, 느낌은 오지만 아리송한 음식들이 꽤 있었다. 매번 물어보기도 쑥스럽고 해서 뭘 먹겠느냐고 물으면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라고 했다. 차라리 ‘아무거나’라는 음식이 있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예로 보신탕, 삼계탕, 한방오리, 감자탕 등을 들 수 있는데 보신탕이 북한에서 부르는 ‘단고기국’, ‘개장국’인 줄 몰랐고, 삼계탕도 ‘닭곰’과 비슷한 음식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한방오리’라는 간판을 보면 ‘오리’는 알겠는데 ‘한방’은 뭘까 하고 생각했다. ‘혹시 한약방에서 약에 쓸 오리 고기를 파는 건가?’ 해서 들어가 보니 그냥 약초를 넣고 끓인 ‘오리탕’이었다. 또 ‘감자탕’은 감자탕이라기보다 큼직한 뼈를 고기가 좀 붙은 채로 넣고 끓인, 실은 “고기탕”이었다. 순대도 북에서는 돼지 내장에 쌀과 채소를 넣어 만드는데 남한에서는 당면을 넣은 것이다.

드디어 갈매기 고기를 먹어보는가?’

이름이 내용과 전혀 다른 음식도 있었다. 누군가가 ‘갈매기살’을 먹자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다. 살면서 한 번도 갈매기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가 아니라 돼지 배의 가름막 부위였다. ‘곰탕’도 마찬가지였다. 간판을 보면서 이 좁은 남한 땅에 무슨 곰이 그렇게 많아서 곰탕으로 영업까지 할까 생각했다. 먹어보니 그것은 소뼈를 푹 고아 우려낸 국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조리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다 북한에서 먹던 것들이었다. 음료로 마시는 ‘식혜’도 북한에서 먹던 ‘가자미식회’, ‘명태식회’와 발음이 비슷해 혼돈했다.

한편 북에서 ‘낙지’라고 부르던 것을 남한에서는 ‘오징어’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서해에서 잡히는 몸통이 작고 다리가 긴 것이 낙지다. 북에서는 그것을 동해에서 잡히는 낙지, 즉 남한의 오징어와 구분해 ‘서해 낙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갑오징어만 오징어라고 부른다. ‘돼지국밥’이라는 이름도 남한에서는 미완성이다. 문자대로라면 돼지가 먹을 국밥이 아닌가. 북에서는 ‘돼지고기국밥’이라고 한다. ‘함흥냉면’도 북에서는 쓰지 않는 이름이며 ‘농마국수’라고 부른다. 또한 북한에 ‘평양냉면’이란 말은 있어도 ‘함흥냉면’이라는 메뉴는 없다. 알고 보니 남한에 ‘함흥냉면’이라는 메뉴가 생긴 건 6·25 전쟁 시기 함흥 지역에서 내려온 실향민들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함흥 농마냉면이 유명한 것은 맞다. 함흥에 있는 ‘신흥관’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평양에도 농마국수를 잘하는 식당이 있고 함경남도와 양강도에서도 잘하기 때문에 서로 자기 고장이 더 잘한다고 뻐긴다.

그런데 사실 농마국수가 제일 발달한 곳은 양강도다. 함경남도는 장진호, 부전호 일대에서만 감자가 생산된다. 그러나 양강도는 모든 지역에서 감자농사가 잘되는 북한 최대의 감자 생산지이고, 쌀이 부족해 감자가 주식이 되다시피 한 곳이다. 그만큼 감자를 재료로 한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했다. 남한에서는 북한에 ‘농마냉면’ 즉 ‘함흥냉면’만 있는 줄 알지만 양강도에서는 냉면은 물론이고 온면도 한다. 따끈한 농마온면 맛은 겨울에 별미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 따끈한 온돌방에 모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농마온면 곱빼기 먹기 경쟁을 할 정도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재미와 맛은 겪어보지 못하면 모른다.

토끼 먹이를 왜 사람이 먹고 있나?’

남한에는 완전히 낯선 음식도 있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반찬으로 먹는 ‘콩잎장아찌’를 보고 놀랐다. 콩잎은 토끼나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각김치’는 총각들이 좋아하는 김치라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더니 고작 손가락만한 무가 달랑 매달린 잎사귀로 담근 김치였다. 무 잎사귀도 식량난 때문에 사람이 먹었지 그전에는 짐승의 먹이로만 알았다. 그리고 남한에 갓김치가 있을 줄은 몰랐다. 북한은 고지대인 양강도에만 갓김치가 있다. 다른 지역은 갓 자체를 모를 정도다. 그런데 해발이 낮고 따뜻한 남한에 갓이 있다니 놀랐다. 그것도 양강도의 것에 비교도 할 수 없이 큼직했다. 얼마나 반갑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먹어보니 갓 특유의 향이 양강도의 갓에 절반도 미치지 않아 실망했다. 역시 갓은 일교차가 큰 곳에서 키워야 향이 세고 구수한 맛이 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예를 들자면 많지만, 어쨌거나 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한 사람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이 맛은 어떻고 저것은 무엇으로 만들었고 하면서 가끔은 자기 고장 음식이 더 맛있다고 즐거운 다툼을 벌이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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