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2월 1일 0

장용훈의 취재수첩 | 고개 숙인 김정은, 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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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고개 숙인 김정은, 의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새해를 맞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는 이날 12시(한국시간 낮 12시30분)부터 28분 동안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 발표를 중계했다. ⓒ연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새해를 맞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12시(한국시간 낮 12시30분)부터 28분 동안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 발표를 중계했다. ⓒ연합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다.” 한해를 보내며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이 발언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1월 1일 정오 육성 신년사를 마무리하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은 수령을 정점으로 노동당과 대중으로 이어지는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해 전체주의적 통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사회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수령의 ‘무오류성’을 중시한다. 그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북한 사회가 작동하는 기본원리를 벗어나 있다. 스스로 수령으로서의 부족함을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 따라서지 못해 안타까워김정은식 애민 정치?

국내 정착한 탈북민들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는 이러한 발언을 본 적이 없다.”며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가진 권위로 통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책임을 시인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권위에 훼손이 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우상화와 신격화 등을 통해 권위를 한껏 끌어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지도자의 고민 등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낮춤으로써 ‘애민’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제스처가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나를 굳게 믿어주고 한마음으로 지지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자책성 발언을 내놓았다. 또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새해의 이 아침에 엄숙히 맹약한다.”고도 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월 10일 신년사 발언을 거론하며 “인민대중 제일주의의 위대한 모범을 보았다.”며 김 위원장이 새해 평양가방공장과 김정숙제사공장을 시찰한 사실을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최고지도자까지 직접 나서 민심을 잡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랐지만, 이제는 정치에 대한 불평과 반감도 표시하고 있어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탈북민은 “중국 등과 교류가 확대되고 휴대전화 보유가 늘면서 주민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사회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며 “김정은 정권도 이런 면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김 위원장이 잇달아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5일 제1차 전당초급당위원장대회에 직접 참석해 육성으로 연설한 결론에서 “전당적으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한 대책을 강하게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당 사업에서 행정관료화를 지적하면서 “군중을 업수이 여기는 그릇된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요령주의와 공명주의, 세도와 전횡, 부정부패를 비롯한 온갖 그릇된 사업방법과 작풍을 파생시키는 근원”이라고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어 지난 1월 1일 육성 신년사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하며 일심단결의 화원을 어지럽히는 독초인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뿌리뽑기 위한 투쟁을 드세게 벌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잇단 부정부패 척결 발언은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발언은 김정은 시대 들어 빠르게 진행되는 시장화의 경향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북한 관료들이 시장 세력과 결탁해 부를 축적하는 현상이 생기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자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고려해 민심을 중시하는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는 여러 차례 포착되어 왔다. 지난 2014년 5월 평양 도심인 평천구역의 고층 아파트 붕괴사고 대응이 대표적이다. 완공을 앞둔 평양 도심의 고층 아파트가 붕괴되는 대형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아파트 시공사 소속 책임자인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지역 주민들 앞에서 사과했고 북한 매체는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우리의 경찰청장격인 그는 피해가족과 평양 시민들을 만나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민심잡기에 안간힘 취약한 정통성 때문에?

김 위원장이 후계자 시절이었던 지난 2010년 2월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2009년 12월 전격 실시한 화폐개혁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경제난이 가중돼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당시 김영일 내각 총리가 주민 달래기에 나섰던 것이다. 김 총리는 평양 시내 인민반장 수천 명을 모아놓고 화폐개혁과 시장폐쇄 조치의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 사과하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처럼 김정은 체제에서 민심잡기에 안간힘을 쏟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취약한 정통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9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되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3년만인 2012년 권력을 이어받았다. 김 위원장은 후계자에서 최고지도자가 되는 정치적 훈련과정을 거의 생략한 채 갑작스레 출범했기 때문에 바닥 민심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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