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당번 빼고 다 모여!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51
당번 빼고 다 모여!
새 학기가 시작되자 아침 출근시간대 풍경이 달라진다. 가방을 메고 등하교하는 아이들이 여럿씩 무리지어 웃고 떠드는 소리로 길거리에 생기가 넘친다. 밝고 명랑한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참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북한의 등굣길 풍경도 떠오른다.
등하굣길 풍경에서는 남북한의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 학생들도 친구들과 서로 웃고 떠들며 학교로 향하고, 수업에 늦을까봐 교문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모습도 닮아있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장난치는 모습도 별반 다른 것 같지 같다. 언젠가 한 영화에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마구 뛰어다니며 말뚝박기도 하고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북한과 꼭 같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왁자지껄 쉬는 시간에도 당번은 열외?
매 수업 후 10분 간 주어지는 쉬는 시간 동안 북한 학생들은 서로 모여서 웃고 떠들고, 복도에서 뛰어다니다가 선생님께 걸려 지적도 당하는가 하면,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꿀잠(?)을 자기도 한다. 그나마 쉬는 시간이 조용한 경우는 다음 수업준비로 너도나도 바쁠 때다. 다음 수업이 무서운 선생님의 과목이라든지, 숙제가 많다든지, 시험이 예정되어 있으면 아이들은 분주해진다. 숙제를 다 한 모범생들은 여유 있게 앉아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남이 한 숙제를 그대로 베끼느라 정신이 없다. 이러한 모습들은 남북이 완전히 똑같다.
남북한 학교의 쉬는 시간 풍경 중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 학교는 청소당번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과 복도 청소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교실청소는 여학생 전담이고 복도청소가 남학생 전담이다 보니 쉬는 시간이면 남학생 청소당번들은 밀대를 들고 복도 청소를 한다. 왜냐하면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이 담당구역을 돌며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특히 비가 오거나 눈이 온 날이면 복도가 많이 더럽혀져 있기 때문에 청소당번들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여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칠판을 지운 후 밖에 나가 칠판지우개를 털고 교탁을 물걸레질 하느라 바쁘다. 특히 겨울철에는 여학생들의 수고가 많은데, 학교에 수도가 없고 설사 있다 해도 물이 나오지 않으니 집에서 물통에 물을 받아가지고 와야 하는 어려움까지 있다.
아이들이 오전 시간에 장난을 많이 칠 수 있는 시간은 2교시가 끝난 후다. 두 번째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이 20분인데 이 시간을 업간체조 및 대청소 시간이라 한다. 러시아의 이전 사회주의교육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이 시간에도 장난칠 여유는 별로 없지만, 날씨가 좋지 않거나 교사 회의가 있는 날이면 20분 동안 실컷 놀 수 있다. 남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공차기도 하고 말뚝박기도 하느라 학교가 떠들썩하다. 여학생들은 줄넘기를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이 제대로 뛰어놀거나 교실에서 실컷 장난칠 수 있는 시간은 대체로 점심시간이나 오후시간이다. 북한은 남한처럼 급식이 없어 점심을 집에 가서 먹고 오는데, 일찍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을 시작으로 교실은 슬슬 난장판이 된다. 물론 담임선생님에 따라 학생들의 모습도 다르겠지만 보통 이 시간에는 교실이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공을 가지고 노는 학생들, 가위바위보를 하고는 이마나 손목을 때리는 학생들 등 다양하다. 이때면 교실 안에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아이들 얼굴은 땀범벅에 옷에는 온통 석회가루가 묻어 그 몰골(?)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장난에 또 장난 … 석회가루 뒤집어 써도 신나
참고로 북한은 모든 기관기업소, 학교 등 공공건물의 내부 벽에 흰 석회석을 칠한다. 조금만 스쳐도 석회가루가 날리고 옷에 묻으니 아무리 선생님이 오기 전에 교실을 정돈한다 해도 옷에 묻은 흰 자국은 감추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런 장난은 저학년일수록 심한데 선생님에게 걸리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선생님도 선생님 나름이기는 하지만 엄한 선생님의 경우 아이들을 매질하고 경중에 따라 처벌로 청소를 시키거나 비판서(반성문)를 쓰게 한다.
쉬는 시간이나 오후 과외학습 시간에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학생들이 많으니 학교마다 제각각 통제방법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열성자(학급임원)들이 쉬는 시간과 오후 시간에 복도청소는 물론 교실정돈 상태, 규율 상태 등을 점수로 매겨 학교 학생조직에 보고한다. 여기에서 걸리는 학생들이나 학급은 공개적으로 폭로대상이 되고 비판대상이 된다.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은 학급 내부에서 통제를 강화한다. 열성자들이 숙제를 안 한 학생,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설명을 듣지 않아 지적 받은 학생, 장난친 학생들을 적어두었다가 하루 총화시간에 폭로한다. 비판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심할 경우 처벌로 교실청소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북한 학생들도 남한학생들처럼 쉬는 시간에 교실이나 복도, 운동장에서 장난도 치고 뛰어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감시를 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감시를 당한다는 사실이 남한과의 결정적인 차이다. 학교생활에 있어 규율도 필요하지만 쉬는 시간만큼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자유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쯤 4월에 시작되는 새 학기를 앞두고 학년말 시험(기말고사)을 준비 중일 북한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전히 석회가루를 뒤집어 쓴 채 헤헤 웃는 맑고 순수한 모습일 것 같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