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3월 1일

통통 인터뷰 | “굶어 죽어간 이들 생각하면 펜을 놓을 수 없어요”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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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인터뷰

굶어 죽어간 이들 생각하면 펜을 놓을 수 없어요

김정애 탈북소설가(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사무국장

김정애 탈북소설가(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사무국장

 

 Q. 지난 201510월 남북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발간에 이어 지난 22일 두 번째 공동 소설집인 금덩이 이야기제작에 참여하셨죠? 여기에 작가님의 단편소설 <>이 담겼고요. 북한 주민이 겪고 있는 현실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어 인권이라는 주제가 더욱 강렬하게 부각된 느낌을 받았는데요?

A. 소설 <밥>은 10년 전 북한을 탈출한 모녀가 남한에서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살면서도 북에 남겨진 남편과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내용이에요. 소설에서 딸은 밥알을 씹을 때마다 행복에 겨워 “밥이 참 맛있다.”고 감격합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쌀 한 톨도 맛있게 먹고 감사하게 여기지만, 이런 행복한 세상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한 탈북가족의 이야기예요.

어렵게 북에 있는 남편과 연락이 닿아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지만 남편은 북한으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곳이라며 남한에서 함께 살자고 탈북을 권유해 보지만 남편은 고향으로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라고 말하죠. 남한에서는 아내와 딸이, 북한에서는 남편이 서로에게 돌아오라고, 함께 살자고 목메어 울며 통화하지만 합의는 끝내 이루지 못합니다.

소설 <밥>은 먹는 문제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합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밥은 사상과 이념, 제도 따위에 감히 비길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의 삶의 원천이 된다는 내용이에요. 죽음으로 지켜내는 어떤 사상과 이념보다 살아있는 인간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탈북민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탈북을 하게 된 이유가 ‘밥’입니다. 더욱이 저의 경우는 매 시각 다가오는 자식의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결단해야 하는 어미였어요. 어느 날 딸 아이가 “엄마, 딱 한 번만 밥을 실컷 먹고 싶어.” 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저의 가슴에 비수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방법, 아이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탈북이었어요.

제가 떠나오던 그 길에 쓰러져 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남한과 한 지맥이 잇닿은 북한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는 이 현실은 김 씨 일가가 자행한 참극입니다. 유일독재로 군비를 확장시키고 핵개발을 일삼아 온 나라 인민들을 노예로 만든 범죄의 현장이고요. 저는 주변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그냥 묻어둘 수 없었어요. 수십만 명의 대량탈출과 남한에 정착한 3만 명 탈북민의 탈북 이유가 다름 아닌 인간생존의 바탕이 되는 ‘밥’에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Q. 작품 속 이야기들은 모두 작가님께서 실제 북에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나요?

A. 소설이기 때문에 주제를 중심으로 문학적 형상을 강조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주민들의 생활은 대부분 북한의 실상을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갓 아기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던 시절에 쌀이 없어서 채로 썬 삶은 무를 도시락으로 싸들고 다니다가 직장 동료들에게 들통 난 사건, 먹을 것이 없어 마을의 30~50세대들이 서로 쌀을 꾸고 갚으면서 지냈던 일 등 모두 실제 겪은 일이에요.

한 집, 한 집씩 거부당하며 느꼈던 비참한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어느 날 쌀을 꾸어달라며 겨우 문가에 들어선 저에게 동네 창길 어머니가 쌀 2컵을 싼 보자기를 저의 앞에 펴놓으며 “우리도 이것뿐이요. 어쩌겠소. 나눠먹기요.”라면서 저에게 반을 나눠줬어요. 그날 그녀가 나눠준 것은 쌀이 아니라 피였습니다.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막연한 얼굴로 저를 맞던 그 집은 어른만 다섯 식구가 사는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극심한 가난 앞에서도 인정을 간직한 고마운 창길 어머니에게 바치는 감사의 인사로 이 글을 썼어요.

Q.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소설을 집필하시는 만큼 떠올리기 힘든 기억을 계속 떠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이러한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하나같이 정 많고 순진한 사람들이었죠. 독재라는 철창에 갇혀 어쩔 수 없이 말라죽어야 했던 그들의 억울함이 저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 생의 마지막 절규를 고발하고 싶은 충동에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근 70년 넘게 유일독재를 세습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 분개합니다.

영토의 통일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같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것이에요. 지금도 그 땅에서 독재자의 폭압 속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침묵은 공범이라는 생각에 글 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Q. 북한에서도 글을 쓰는 작가셨나요? 한국에서 작가로 등단하기까지 걸어오신 작가님의 그간 여정이 궁금합니다.

A. 북한에서 다년간 문학창작 수업을 들었고, 한때 함경북도 작가동맹 문학소조원이었습니다. 북한의 문학창작은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칭송하는 내용으로만 쓰이는데, ‘문학창작공모전’이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응모’가 전국에서 열립니다. 200여 명 정도가 정해진 곳(구락부)에서 정해진 시간(90분) 내에 주어진 주제에 맞는 작품을 써내는 대회죠. 각 단체에서 추천받은 노동자, 농민, 사무원, 대학생, 군인들, 저와 같은 학생대표가 출전합니다.

시와 소설, 수기, 수필, 기행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은 김정일의 위대성과 우상화로 종결되어야 하죠. 이러한 규칙(?)에 불만이 있었던 저는 문학창작을 가르쳐주시던 작가 선생님께 “선생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고향이 백두산 맞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보시던 작가님은 많은 생각이 담긴 눈으로 저를 보시면서 “그냥 맞다고 생각하고 쓰시오.”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작가님의 표정에서 생각과 입이 따로 대답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이런 억지스러운 글을 계속 써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그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한 후 활동을 접었죠. 하지만 배운 것이 글쓰기여서 그런지 출가 후에도, 탈북 후 중국에서도 계속 시와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탈북 과정에 대해서 쓴 시와 글을 눈물로 본 한국분이 중국에서 헤매는 우리 식구 4명의 브로커 비용을 전부 부담해주셔서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어요. 결국 글에 의해 한국까지 올 수 있게 된 거죠. 그때부터 글로 북한의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남한에 입국했을 때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국제PEN망명북한작가펜센터가 설립되던 2012년에 합류하여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작품인 소설 <밥>이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진행하는 제41회 소설공모전에서 ‘한국소설신인상’에 수상되면서 탈북민 1호 작가로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Q. 북한 인권을 알리는 활동을 직접 해오시면서 국내 혹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A. 저의 작품은 북한의 현실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북한인권 활동에 속합니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포악한 독재체제인 동시에 가장 화려하게 포장된 북한의 실상은 인권활동가들의 공분을 자아냅니다.

국제사회가 북한내부 실태를 그린 단편소설집 <고발>, 탈북시인 장진성의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경애하는 지도자>

등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북한의 인권침해 실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제82차 국제PEN 총회에 참석하여 북한 실상을 담은 망명북한작가PEN문학지 배포와 사진전시회를 열었는데요, 전시장에 비치된 문학지와 문학지를 담은 USB, 북한 실상 사진북이 순식간에 동이 났습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작가들은 탈북문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침해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하지만 슬프게도 인권의 불모지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남한에서 북한의 실상은 대부분 외면당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가운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과 일부 남한의 작가들이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작품창작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북한주민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작품 활동을 포함해 작가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A.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까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권문학 창작은 고향 사람들을 위한 탈북작가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는 날까지 펜을 놓지 않고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전 세계에 전할 계획입니다.

성시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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