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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 “밥 다 됐어요” … 부의 상징, 말하는 쿠쿠 밥솥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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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5

밥 다 됐어요” … 부의 상징, 말하는 쿠쿠 밥솥

지난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북한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종전에는 ‘5장 6기(옷장·이불장·찬장·신발장·책장, 텔레비전·세탁기·녹음기·냉동기(냉장고)·재봉기·선풍기)’가 집에 있으면 잘 사는 집에 속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토바이, 냉장고, 노트텔, 노트북, 전기밥솥, 태양광판이 있어야만 잘 사는 부류에 속하며, 이러한 것들이 결혼예물이 되고 있다. 심지어 18k 금반지나 목걸이, 귀걸이를 패물로 교환할 정도로 개방적이다. 이와 동시에 외국산에 대한 열망도 매우 높게 표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삼성(SAMSUNG)’과 ‘엘지(LG)’ 등 한국산 가전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고위급 간부와 신흥부유층 돈주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다. 적어도 액정TV, 제습기, 냉동기 정도는 삼성과 LG로 갖춰야만 이른바 ‘꽤 괜찮게 사는 집’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 쿠쿠 밥솥, 제일 우선구매 순위

특히 ‘쿠쿠 밥솥’은 북한에서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 중 하나다. 얼마 전 중국 단둥 주재 평양무역 일꾼은 “요즘 웬만한 가정에서는 한국산 전자제품 두세 가지 정도를 장만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이며, 그 중에서도 한국산 쿠쿠 밥솥이 구매 우선순위로 꼽힐 정도로 간부집 사모님들과 일반 주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사실 북한도 외국산 가전제품을 사용한 역사가 짧지 않다. 일본과 무역거래가 왕성했던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의 대북제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산 중고제품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강원도 원산항에 정박하고 있던 ‘삼지연호’와 ‘만경봉 92호’를 시작으로 점차 함경북도 나진 및 청진항으로 통로가 확산되면서 일본산 중고자전거, 라디오녹음기, 텔레비전, 냉장고는 물론 전기밥솥 등이 대량 반입되면서 장사꾼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식량과 전력사정이 어려운 ‘고난의 행군’ 시기라 가전제품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산 가전제품은 110V의 전압에서만 사용가능하여 일반 가정에서는 반드시 변압기를 갖춰야만 했는데, 무의식중에라도 전선을 잘못 꽂으면 가전제품이 순식간에 망가져버렸다. 이렇듯 항상 주의를 필요로 하는 일본 제품은 안전과 편의의 측면에서 매우 불편했다.

반면에 한국산 가전제품은 북한과 동일한 220v에서 사용할 수 있어 안전과 편의를 보장할 수 있다. 사용설명서도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 작동이 편리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산 가전제품은 무역선을 통해 매우 제한적으로 반입되어 구매도 어렵지만 한국산은 중국 단둥과 신의주 세관 또는 밀수를 통해 매일 반입되고 있어 시중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평양-베이징행 국제열차의 보안원과 보위원은 물론 승무원(열차원, 검차원)까지 물자운송업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어 구입이 매우 용이하다. 단둥-평양행 국제열차의 평양역 도착시간만 되면 마중 나온 간부들의 승용차와 장사꾼의 행렬로 역전은 ‘홍콩시장’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히 붐비고 혼잡스럽다. 또한 평안북도 내 밀수꾼들의 활약으로 압록강변에서의 밀수가 가능해져 평양시뿐 아니라 일반 국경지역(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의 주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일본산이 점차 밀려나고 한국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 도시의 수매상점에서조차 한국산 삼성·엘지 텔레비전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지만 상표가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어 통제를 덜 받는다. 최근에는 북한 무역회사를 통해 중국에서 신제품을 대량으로 들어와 쿠쿠 밥솥 한 대 가격이 한시적으로 미화 170달러로 떨어졌었지만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다시 200달러로 상승하고 있다. 일반 주민조차 텔레비전과 냉장고는 중국산을 쓰더라도 전기밥솥만은 반드시 한국산으로 갖추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서울 말투의 안내음성 불티나게 팔린다

특히 음성안내 메뉴가 장착되어 있는 쿠쿠 밥솥은 북한 주민들의 호기심을 발동시켜 너도나도 구입하기에 여념이 없다. 쿠쿠 밥솥의 음성안내가 서울 말투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아 평양시에서는 꽃보자기를 덮어 가려 놓는 경우가 많지만, 설사 검열원에게 발각되어도 일단 사용하고 있는 밥솥이라 회수는 어렵고 “조심하라.”는 식의 말만 듣는다. 웬만한 가정에서도 다 사용하는 물건으로 보위원이나 보안원들조차 사용하고 있어 서로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또한 쿠쿠 밥솥은 서울 말투 안내음성이 나올 뿐 밥솥 어디에도 ‘Made in Korea’라는 상표가 없어 남조선 상품이 아니라고 우겨도 된다. 청진 시내의 어느 한 가정에서는 검열원의 단속에 걸려들자 ‘중국 연변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품인데 그들도 이런 말투를 쓴다.’고 우겨 단속요원도 어쩔 수없이 물러섰다고 한다.

사실 남한도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개방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1980년대 부산항에 적발되는 밀수품 대부분은 일본산 전자제품이었으며, 한때 세관창고에는 일본산 전자제품이 쌓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코끼리표(ZOZIRUSH) 밥통은 일본을 오가는 사람들 손에 저마다 하나씩 들려와 급기야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남한은 세계 최고수준의 밥솥을 개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제품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더 나아가 남한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쿠쿠 밥솥을 전문 취급하는 상인들은 ‘우리 민족이 생산한 훌륭한 제품은 못쓰게 하면서 왜 일본 오물만 끌어 들이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부 주민들은 ‘밥솥 하나만 놓고 봐도 남조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민족으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정은이 /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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